철학적인 태도와 철학함의 자세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5/11/03 [00:36]

철학적인 태도와 철학함의 자세

새만금일보 | 입력 : 2015/11/03 [00:36]

 어린아이가 엄마 자궁에서 나올 때 울면서 나온다. 왜, 울면서 나오는 것일까? 대다수 어린애들이 울면서 태어나는 것은 장래 살아갈 인생이 고(苦)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인생 삶이 낙(樂)으로 채워졌다면 웃으면서 태어나야 옳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아이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면 인간은 모두 불안하다. 존재의 본질은 불안이다. 그 이유는 삶도 모를뿐더러 죽음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최대 관건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생사관을 아주 쉽게 단정 짓는다. 해답은 성경에 있다. 성경 하나면 삶도, 죽음도, 영혼의 문제도 다 만사형통이다. 쉽게 말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끝이다. 난해한 인생문제를 이처럼 간단하게 해결한 모범정답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인간과 신(神)과, 사후(死後)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다. 이 문제에 접근하면 논란만 커질 뿐 정답 찾기가 쉽지 않다. 사는 것도 힘든데 왜 굳이 영적인 문제까지 접근하려고 발광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 죽음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이 있기에 종교가 생겨났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이 세상 종교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은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면서 형이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내 인생의 철학은 말이지~!”라는 말들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의 인생, 업무, 인간관계 등등, 삶에서 겪는 일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 그 철학은 때론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느끼고 생각해 온 지혜들을 쌓아 자신의 철학을 만든다. 여기서 철학은 무슨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그 사람의 주관과 좌우명, 삶의 마인드를 말함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누구와 대화를 할 때 “당신의 인생철학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살다 보면 언젠간 잘 되겠지요.” “돈만 있으면 좋은 세상 아닙니까?”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사전적인 의미는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철학은 좋게 말해서 심오하며 따라서 난해한 학문이고, 나쁘게 말해서 허황된 언어의 장난, 혹은 쉬운 이야기를 어려운 말로 표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철학에서만 볼 수 있는 ‘선험적先驗的’, ‘필연적’, ‘범주範疇’, ‘초월적’, ‘본질’, ‘현상’, ‘현존재現存存’ 등과 같은 개념들은 확실히 보통 상식으로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 난해하고 애매한 개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철학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된말로 약간 ‘똘아이’끼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럴까? 아마 괴팍한 성격 탓이다. 혼자 잘난 체 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철학이 옳다는 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경계하여 장자(莊子)는 말했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를 품지 못한다. 나의 판단이라는 것은 실상은 상대적이다. 그것을 뛰어넘어라!” 장자의 이 말은 자신이 정립한 철학이 아무리 옳아도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가로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간다. 제물에 떨어진 은행잎은 거리에 흩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구른다. 조금 있으면 가을이 절정을 넘어 황량한 조락의 모습이 될 것이다. 나무들 역시, 오래지 않아 겨울이 닥칠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괜히 처처하고 처연하다. 이게 나이 탓이라기 보단 인생이 무력해 짐을 느낄 때 오는 쓸쓸함이나 허허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인간의 심성을 철학적으로 내몬다.
사람들에게 철학적 삶이란 일상적 삶과 다른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철학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 철학적인 태도와 철학함의 자세를 가져보자. 태어나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등등….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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