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완산전씨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6/10/12 [00:49]

전두환과 완산전씨

새만금일보 | 입력 : 2016/10/12 [00:49]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선대 고향은 당초 전라도였다. 이는 그의 전기《황강에서 북악까지》에 잘 나와 있다. 그의 조상은 완산 즉 전주에서 살다가 조선초 경상도로 이주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전북 정읍의 고부(古阜)에 뿌리내렸다. 그러다가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진원지는 바로 고부였다. 천안전씨 후손이었던 전봉준(全琫準)이 앞장을 섰다. 씨족사회였던 당시의 관습에서 전씨들은 동학에 적극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윗대는 전봉준과 같은 집안이었다. 증조부나 조부가 전봉준의 참모를 했는지도 모른다.
동학이 실패한 후 처절한 보복이 뒤따랐다. 일본군과 관군이 합동으로 동학 가담자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참혹하게 살육하였다.‘일본군이 동학 집안 사람을 죽여 창자를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어 놓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동학 후유증으로 전라도의 뿌리가 해체된 것이다.
천안전씨 전두환 집안은 고부에서 살 수가 없었다. 일단 20리쯤 떨어진 전북 부안군의 줄포(茁浦)로 피신했다. 그러나 여기도 안전하지 않았다. 결국 섬진강을 건너 경상도 합천(陜川) 산골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동학의 중심지인 전북 고창(高敞)에는 고려 말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70여 개의 성씨(姓氏)가 있었다. 그러나 동학 이후에 상당수 성씨가 사라져 버렸다. 멸문(滅門)이 되거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상도로 도망가거나 성씨를 바꿔 버렸던 것이다.
전씨 일가는 동학혁명 때 경북 고령(高靈)으로 피신했다. 고령 고을 황강 너머 쌍책면 하신리로 옮겼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경북 고령에 살고 있는 고창오씨들도 이때 피신한 것이다. 지금도 상주에서 천도교를 신봉하는 서묵개(徐墨价) 집안은 고창의 미당 서정주 집안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동학 때 경상도로 이주하였다.
동학의 김개남(金開南) 장군은 정읍의 도강김씨(道康金氏) 후손이다. 24명이나 되는 이 집안 동학 접주들도 몰살당했다. 후손 중에는 성씨를 바꿔 박씨로 살다가 1955년에야 다시 김씨로 복귀하기도 했다.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정읍시장 김생기 등이 겨우 살아남은‘도강김씨’들의 후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 동학군의 첫 전승지인 정읍 이평면(梨坪面)에다‘황토현기념관’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완산전씨 시조 전집(全潗,시호는 충정)은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으로 두 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완산백에 봉해지고 문하시중평장사에 추증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완산을 본관으로 했다. 완산은 전주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전주를 본관으로 삼는 전주전씨가 있다. 따라서 전주전씨와 완산전씨는 본관을 다르게 사용할 뿐 뿌리가 같다. 2000년 현재 전주전씨는 16,434명으로 완산전씨 7,568명에 비해 많다. 합치면 24,002명에 이른다.
완산전씨는 조선시대에 여러 관직자를 배출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시조 전집의 아들 지경(之慶)은 사헌부의 감찰을 지냈다. 지경(之慶)의 아들 3형제도 모두 벼슬에 오른다. 맏아들 사흠은 목사(牧使), 둘째 아들 사일(思一)은 도사(都事), 막내 아들 사경은 예조판서를 지냈다.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한 전치원(全致遠)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 39년(서기 1606년) 사헌부감찰에 이르렀다. 서예와 성리학에 능통했고 저서 임제난이록(壬祭亂離錄)이 전한다.
전제(全霽)는 1585년(선조 18) 첨정(僉正)을 거쳐 영산 현감(靈山縣監)에 재임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박진(泊津), 정암(鼎巖)등지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도산(島山)에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우(全雨)도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다. 전형은 서예로 일가를 이루었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통신사 임광을 수행, 일본에 건너가서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 "해사일기"가 있다.
전만희(全萬禧)는 1728년(영조 4) 무신난(戊申亂)이 일어나 합천군(陜川郡)이 함락되자 아우 만정(萬禎)과 함께 향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녹권(祿券)을 하사받고 양무원종공신(楊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완산전씨는 1985년 6,811명, 2000년 7,568명이다. 15년 만에 757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경남과 부산에 전체의 절반가량이 살았으며 대구에도 많았다. 본관이 있는 전북은 극히 적었다. 2000년 현재도 경남, 대구, 부산에 많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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