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교육이 왜 중요한가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5/14 [16:55]

눈높이 교육이 왜 중요한가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5/14 [16:55]



인성교육과 학력신장은 중요한 교육과제다. 그러나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반드시 눈높이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동식 눈높이 교육 등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눈높이란 실제 우리 몸에서 눈이 달려있는 물리적 높이가 아니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상황을 인식하는 안목의 수준을 말한다. 흔히 눈이 높다, 눈이 낮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데 까다롭게 구느냐 그렇지 않고 털털히 받아들이느냐 하는 마음 자세를 말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는 교육방법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수준에 맞춰주면서 교육을 한다는 말이다. 핀란드는 세계 제일의 학력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 아키타 현은 일본 학력평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비결은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습관에 있었다.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길러주는 새로운 형태의 학습관의 정착이 절실하다. 학습 동기가 부족하고 학습 방법을 몰라 학습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만 못하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공부의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하여, 좋은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선결 과제다. 학생 눈높이에 맞는 교육은 동기를 유발하는 일이다. 눈높이는 상대방 기준에 맞추어 준다는 뜻이다. 수준을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눈높이를 맞춘다고 표현한다.

눈높이 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가까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개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발견해야 한다. 자신만이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21세기의 경쟁력은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다.

이탈리아의 여성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의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교육방식을 발전시킨 아동교육학자다. 1900년대 로마에는 인근의 노동자들이 모여든 빈민촌이 있었다. 범죄가 가득한 마을의 골칫거리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돌보는 부모 없이 방치됐다. 당시 어느 건축회사가 노동자 부모들이 일하는 동안 시끄럽고 말썽 피우는 아이들을 한데 모아 돌봐줄 시설을 만들었다. 이 어린이 보호 시설을 위해 로마대학의 한 여성 교수가 초빙된다.

바로 마리아 몬테소리였다. 그녀는 다소 파격적인 조건들을 요구했다. 집처럼 따뜻한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교실에 햇볕이 잘 들어오고, 창문과 방은 꽃으로 장식하고, 가구들은 모두 아이들의 신체 크기에 맞춰 제작해 달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은 '아이들이 자기 일에 몰입하면 교사는 간섭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1907년 빈민가에 세워진 새로운 시설에는 3~6세인 50여명의 아이가 맡겨졌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관점과 방법을 시도해 보려는 마리아 몬테소리의 실험장이 펼쳐졌다.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이뤄지고 아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의 집이란 의미의 '카사 데이 밤비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도 점차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은 주변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남을 도울 줄 알고, 글자를 스스로 쓸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 여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러나 마리아 몬테소리는 단지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진정한 아이들의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어린이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잠재력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체임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론을 연구하고 직접 교육법을 실천하며, 현대 유아 교육의 기반을 닦았다.

다산(茶山) 정약용의 '눈높이 교육법'도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다산은 경세가(經世家)이자 '조선의 다빈치'를 넘어서는 인물이다. 특히 다산은 학습 동기 유발 교수법의 전문가이다. 그는 제자의 신분과 성향, 자질 및 상황에 따라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다산이 제자들에게 준 증언(贈言)은 매우 많다. '증언(贈言)'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침의 목적으로 내려주는 훈계다. 보통 한 단락씩으로 이뤄진 짧은 글 모음이다. 제자의 학습 동기를 고취시키고 공부에 대한 자세를 알려주기 위한 가르침이다.

어떻게 아이를 공부하도록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대의 부모들이 귀 기울일 만한 내용들이다. 다산의 교육법에 매뉴얼은 없다. 제자의 신분과 성향, 자질 및 상황에 따라 그가 명심해야 할 가르침을 정문일침(頂門一鍼) 격으로 내려주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바로 '눈높이 교육'인 셈이다.

'초의선사'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초의(艸衣) 의순은 머리는 대단히 총명한데 좀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려 하지 않고 주춤대며 머뭇거렸다. 1813년 다산은 초의에게 "공부에 느긋함은 없다"며 재촉하는 성미 급한 스승이었다. 반면 다른 제자 순암(淳菴) 윤종진에게는 꾸준함과 느림의 미덕을 강조했다. 윤종진은 열여섯 살에 형들과 함께 글공부를 시작했다. 체격이 왜소한데 마음마저 여렸다. 건성으로 읽어 뜻도 새기지 못하면서 형들에게 안 지려고 자꾸 소리로 기세를 올리려 들었다. 다산은 그의 목소리에서 허세와 조급함을 읽어내 다독인다. 제자의 성정에 따라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당시 제자 윤종심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제 처지를 비관했다. 이 때 다산이 윤종심에게 주문한 마음의 자세는 '안빈낙업(安貧樂業)' 즉 가난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윤종심은 다산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글씨를 잘 썼던 그는 이후 다산의 모든 저술을 정리한다. 다산은 종이나 천을 오리고 그 위에 증언을 직접 써서 제자들에게 서첩으로 꾸며 주는 것을 즐겼다. 제자들은 서첩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또 읽어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새겼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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