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하시중 두경승 장군 사적비 건립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7/03 [09:05]

고려 문하시중 두경승 장군 사적비 건립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7/03 [09:05]



김제시 만경읍 만경공원에서 지난 6월 22일 전북 김제 출신으로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지낸 두경승(杜景升,?∼1197) 장군의 위국충절(爲國忠節)과 무인정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을 기리기 위한“두경승장군 사적비”제막식이 있었다.

두 장군의 출생지 이자 고향인 만경읍 만경리 336번지에 세워진 사적비는 기단이 0,6m, 비석 3.4m 총 높이 4m로 올해 3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날 완료 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김종진 전 문화재청장, 두세훈 도의원, 유진우 김제시의원, 두릉두씨(杜陵杜氏) 종인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두진천 사적비 추진위원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두봉신 두릉두씨 종친회장의 기념사가 있었으며, 김종진 전 문화재청장, 두세훈 전라북도의원, 유진우 김제시의원의 축사가 있었다.

두 장군은 전라도 만경현 (현 김제시 만경읍) 출신이다. 1173년(고려 명종3) 김보당 난과 1174년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난에 뛰어난 무공(武功)을 발휘하여 진압하였다. 여진족의 침입 때는 회유로써 물리쳤다. 무인시대에 대표적인 문신들과 함께 유교정치 이념에 입각하여 개혁 시책을 추진한 중요 인물로 알려졌다. 국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백성을 사랑한 애민(愛民)정신과 무인의 정도를 걸은 표상(表象)은 후세 무장(武將)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고려사』,『고려사절요』,『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사료에 따르면 장군은 만경현(萬頃縣)에서 평장사(平章事) 벼슬을 지낸 두방(杜邦)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용이 출중하여 의종(毅宗) 때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고, 명종 초에 내순검지유(內巡檢指諭)를 거쳐 낭장(郞將)이 되었다. 1173년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로 김보당(金甫當)의 난을 평정한 후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가 되었다. 이듬해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로가발(東路加發) 병마부사로 후군총관(後軍摠管)으로 난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된 뒤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1197년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자연도(紫燕島)에 유배되자 울분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장군은 최충헌의 독재 체제 수립 과정에서는 불의(不義)에 굴하지 않고 임금에게 충의(忠義)을 다 바친 무장이다. 최근에“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방영(放映)으로 장군의 애국충절(忠節)과 용맹한 상무정신(尙武精神)이 널리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알려졌다.

두릉두씨 종친회 두봉신 회장은“장군의 탄생지인 김제시 만경읍에 종친들의 정성스런 성금을 통해, 오랜 숙원(宿願) 사업인 사적비를 세우게 되어 후손으로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종진 전 문화재청장은 축사에서“충효사상이 상실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역사에 명장인 두경승 장군의 위국충절(爲國忠節)과 애민정신(愛民精神), 투철한 군인정신(軍人精神)을 이어받고 높이 기리기 위해 장군의 고향에 사적비를 세우게 되어, 반갑고 기쁜 마음이다 ”고 소감을 말했다.

유진우 김제시의원은 축사에서“우리 고장 김제시 출신의 명장인 두경승 장군의 사적비가 고향인 만경읍에 세워진 것을 지역 의원으로서 환영하며 후세인들이 장군의 위국충절과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愛民精神)을 이어받기 바란다“ 고 말했다.

후손인 두재균 전 전북대학교 총장, 두세훈 도의원, 두하영 전북과학대학교 교수는“우리 민족사에 명장인 두경승 장군의 사적비를 장군의 고향에 세우게 되어 기쁘며, 추후에도 사업을 통해 공(公)의 위국충절의 정신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두릉두씨(杜陵杜氏)의 본관 두릉(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 장안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산서성에 속해 있다.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한다. 두경령은 고려 목종 때 우사관(右司官)을 지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올 때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앞 바다로 들어왔기 때문에 만경두씨(萬頃杜氏)라고도 한다. 두경령은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의 후손이다. 두보의 자는 자미(子美). 이백(李白)과 더불어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부른다. 두경령의 6세손이 두경승(杜景升)이다.

(사진은 만경읍에 세워진 두경승 장군 사적비)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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