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主體思想)의 종말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2/07 [11:07]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종말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2/07 [11:07]

 

1997년 베이징에서 황장엽은 김덕홍과 함께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하였다. 그의 망명은 조국(북조선)의 체제에 의분(義憤)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했는데, 소련의 붕괴와 맞물려 자신이 담당하던 당 국제사업의 실패가 주원인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그의 주장은 사장되어, 10년간 활동제한조치를 당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해제되었다. 1급 비밀 폭로라 했지만 김정일 정권 타도와 북한의 인권상황을 말한 것이 다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황장엽을 “개만도 못하다”고 욕을 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01044일자에 보도한바 있다. 황장엽은‘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무한할 수 있다’는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관을 김 부자 ‘수령 절대주의’로 삼은 것이다. 자유북한방송 ‘황장엽의 민주주의 강좌’에서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합니다’라고 강조하는 등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정치철학을 중시했다. 황장엽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상식인데, 지난 85년 소련 측이 핵개발을 문제 삼자 김일성은 독자적인 핵 개발이라며 이를 묵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음을 밝혔다. 1994년 러시아 국가안보 연구소 블라디미르 쿠마초프 고문에 의하면 북한은 그들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 독자적으로 완성한 발사 차량을 가지고 있으며 소련도 85년부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음을 알았고, 그로 인해서 북한에 있던 핵전문가들을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붉은 색만 봐도 깜짝 놀라는 요즘 광화문집회 기독단체와 보수우익과 그 당시 MB 정부 측은 황장엽을 1등급 국민훈장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 것은 이해가 안 간다. 원한 서린 수많은 영령들이 잠든 국립묘지에 안장한 황장엽의 주검은 편히 잠 못들 가시방석에 묻힌 꼴로, 국가의 상훈 법질서를 어지럽힌 일이라 하겠다. 김일성이 사망(94.7.8) 하기 직전 경제정책에 실패한 김영삼 정부는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북한에 쌀400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보낸바 있고 김일성주석과 만나자는 말에 흥분한 김일성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설이 있다. 황장엽은 김일성이 가장 신임한 오른팔로 주체사상을 정립하여 충성한 자였으며 6.25와 적화통일을 사주한 석고대죄 해야 할 민족의 반역자였다. 주체사상(主体思想)의 과정 중에 김정일의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19306월 김일성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장춘현(長春縣) 카툰(佧倫)에서 열린 ‘반제청년동맹지도자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원리를 처음으로 말한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을 밝혔다고 전한다. 主体는 하나의 사상과 철학으로 제기 된 것뿐만 아니라 1950년 김일성이 대외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내부적으로 1인 독제체제를 구축하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논리에 근원을 둔, 스탈린 사망이후 흐루시초프 등장과 함께 스탈린 격하운동과 평화공존노선 채택과 모택동 영향력 증대에 따른 국제공산주의 운동으로 197212월에 채택된 공식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황장엽의 주체사상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요, 결정권자며, 모든 것을 인간이 주장한다는 인본주의사상을 편 것으로, 인간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의 창조를 기본 이념으로 내 세우고 있다. 김일성을 신격화 시켜 수령을 절대화로 인민대중과는 주종관계로 예속적인 김일성 우상주의다. 김일성의 모 강반석의 동생 강양욱목사를 끌어들여 기독교 특유의 점조직을 이용했으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성경-사도행전245)’라는 성경을 인용한, 공동체 분배 평등원칙을 이론으로 한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이다. 황장엽은 김일성대학총장과 모스크바 국립대 철학박사로  김정일의 스승이며 김일성의 오른팔로 승승장구한 당의장을 여러 번 지낸 거물급 인사로 주체사상의 일인자다. 망명 당시 북쪽의 부인 박승옥과 두 딸과 아들은 두고 왔는데, 부인은 자살을 했고 자녀들은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황장엽은 77세의 노령에 30억대의 호화주택에 살면서 38세의 젊은 딸 같은 여인사이에 호적에도 없는 21세 된 아들 모자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일 20101010일에 자택 욕조에서 알몸으로 죽었다. 황장엽은 ‘벌써 떠나야 할 시간! 내가 죽거든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라고 쪽지에 유언 아닌 독백으로, 죽기 전에 가족과 민족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가 신봉하는 주체사상은 죽은 영혼까지 찾아 갈 곳은 평양밖에 없는 소인배에 불과했다. 지금 북조선 김정은은 사방팔방 봉쇄되어 나라경제가 말이 아니고 인민은 굶주려 반기를 들 위험수위를 넘어선 본인의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는 판에 3대 세습의 할아버지의 낡은 주체사상은 여기서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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