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황산분맥의 남원 운봉의 화수산(462m)과 황산(697m)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2/13 [14:31]

백두대간 황산분맥의 남원 운봉의 화수산(462m)과 황산(697m)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2/13 [14:31]

▲ 점촌 앞서 본 황산     ©새만금일보

 
<개요와 자연경관> 
  화수산(花山水, 반달산)과 황산荒山은 별개의 산이다. 화수산은 운봉읍 화수리의 들 가운데 반달처럼 솟아 있는 작은 조산造山으로 반달산으로도 부른다. 황산대첩비지와 화수산 서각이 있다. 황산은 화수산의 북쪽 운봉읍 화수리와 가산리, 아영면 봉대리, 인월면 인월리 등 3개 읍.면의 경계에 위치하며 정상석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전라북고 전도>, <남원시행정지도>, <남원시 전도> 등에는 황산은 표기되었으나 화수산은 표기되지 않았다.      
  황산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면 이렇다.

 

▲ 비전교서 본 황산     ©새만금일보

 
  <<운성지>>에는 “황산은 운봉고을의 동쪽 10리에 있는 산으로 이태조가 왜구를 물리친 곳이다. 이 경계는 주위가 10리이며, 높이가 수백 척이며, 정상에 바위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아 있다. 동쪽에는 유명한 샘물이 있고, 그 곁에 옛 사찰의 유허지가 있다. 한발이 들면 고을의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가 기우제를 지내어 많은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 비전교서 본 황산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유래집>>에는 “황산은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 서무리, 가산리, 인월면 인월리에 경계를 이룬다.”고 나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동쪽 16리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여지도서>>에는 경상도 함양 백운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동쪽 10리에 있다. 곧 태조대왕이 왜구에게 승리를 거둔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이성계가 왜적과의 싸움에서 대승한 황산荒山은 운봉 동쪽 10리에 있는데 높이가 수백 장이나 되는 석산으로 정상에 높은 바위가 있다고 했다. <<남원지>>에는 “황산은 고려 말엽 이성계 장군이 왜적을 섬멸한 황산대첩으로 이름난 역사적 유적지다.”고 나와 있다.

 

▲ 비전교서 본 화수산     ©새만금일보

 
  <<신운성지>>에는 황산(697m)은 운봉읍 화수리, 아영면 봉대리, 동면 서무리 경계에 있다. 운봉분지와 동면·아영분지를 구분하면서, 운봉분지의 좁은 출구를 이룬다. 고려 32대 무왕 6년(1380) 함양, 운봉을 노략질하며 인월면에 주둔하고 있던 왜구의 장수 아지발도를 이성계가 변안열, 배극렴, 이두란 등과 함께 섬멸하였다. 8부 능선에 바위에서 나오는 맑은 샘이 있는데, 운봉 10경 중의 하나인 황산석정(荒山石井)으로 기록하고 있다.

 

▲ 비전교서 본 20화수산(반월산)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유래집>>에는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 서무리, 가산리, 인월면 인월리에 경계를 이룬다. 산자락에는 양지골, 서무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해동지도>> (운봉)에 읍치 위편에 황산이 그려져 있고 왼편에 명저치가 기재되어 있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지자 우왕은 이성계를 남원 운봉에 급파하였다. 남해안으로 상륙한 아지발도가 진주를 거쳐 팔량치를 넘어오다가 황산에 이르러 대패하였다. 인월면의 지명은 여기서 유래되었으며 황산대첩이라는 명칭과 피바위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동쪽 16리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여지도서>>에는 경상도 함양 백운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동쪽 10리에 있다. 곧 태조대왕이 왜구에게 승리를 거둔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황산대첩비지     ©새만금일보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경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우리 전통 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황산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우리민족의 정기가 서린 백두대간이 남원 땅의 삼계봉에 들어서면 동쪽으로 연비지맥을 나뉘고 봉화산, 투구봉, 매봉, 아막성산, 시리봉, 산불산을 지나 무덤산에 닿는다. 무덤산에서 동남쪽으로 나뉜 황산분맥이 명석치를 지나 황산과 화수산을 일으킨다.
  황산의 물줄기는 광천을 통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간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운봉읍 기산리, 봉대리, 서무리와 인월면 인월리의 경계를 이룬다.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황산의 북쪽은 백두대간 무덤산과 시리봉 너머로 봉화산, 북동쪽은 다섯 개 봉우리의 오봉산(서리산) 등이 첩첩하다. 동쪽은 정봉 너머로 연비지맥의 투구봉과 삼봉산, 남쪽은 덕두봉과 바래봉이 에워싸고 있다. 서쪽은 백두대간의 고남산이 우뚝 솟아 있다.  

 

▲ 가왕 손홍록 생가     ©새만금일보

 

<주변문화와 인문지리>
  <<한국 지명 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등으로 살펴본 황산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운봉면 화수리는 본래 운봉의 서면지역으로 화수리라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전촌리, 옥계리, 소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화수리라 하고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운봉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운봉읍 화수리가 되었다. 화수리에 속해있는 자연마을로는 전촌, 소석, 육거리, 지와막, 비전, 하마정, 옥계동이 있었으나 현재 육고리, 지와막, 하마정, 옥계동은 폐촌되고 1961년 이후 군화동과 화신동이 새로 생겼다. 화수리에는 소석, 전촌, 비번, 화신 등이 있다.
  비전마을은 마을 앞에 황산대첩비각이 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선조(1577년) 운봉현감 박광옥이 세운 대첩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파괴하였다. 현재의 비각과 비석은 8ㆍ15광복 후 1957년 10월 27일 다시 세웠다.
 동편제의 가왕歌王으로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의 출생지가 비전마을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이다. 군화동軍花洞은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군인들이 만들어 줬다는 뜻으로 불렀다.

 

 <문화유적과 명소>
 [황산대첩제]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의 황산대첩비지에서 매년 8월15일 개최된다. 고려 말(1380년) 이성계장군이 삼남을 휩쓸고 노략질을 하는 왜적을 물리친 곳이다. 고려사, 용비어천가의 고사에 따라 선조 10년(1577년)에 건립 왜장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에 맞아 죽을 때 흘린 피가 바위에 붉게 물들여 지금까지 남아있는 피바위가 있다. 어휘각에는 아침단자가 남아있다. 왜구가 경상도 함양을 거쳐 남원으로 진출하려던 것을 당시 삼도 도통사였던 이성계가 이곳 황산에서 섬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황산대첩비를 세운 곳이다.

 

<산행안내>
o 1코스 : 비전마을-화수산-황산-화수산-비전마을(1시간)
 
<교통안내>
 o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인월(24번 국도)-운봉 비전마을
 o 남원(19번 국도)-요천삼거리(24번 국도)-운봉-비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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