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농민운동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5/15 [06:21]

5.18과 농민운동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5/15 [06:21]

 

 

벌써 40년 전 1980년 정치적인 봄이 오는 가 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무자비한 총칼로 수많은 광주시민이 학살을 당했다. 12.12 신군부의 하극상 쿠데타로 더욱 잔인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길 가던 선량한 시민을 붙잡아 삼청교육대로 잡아갔는데 내가 아는 고향후배는 한 밤중에 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집에 돌아와 시름시름 앓다가 3개월 만에 억울하게도 죽었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계화 간척지를 막아 벼농사 농업용수로 쓸 인공호수로는 전국에서 제일 큰 청호 저수지를 조성하였다. 부안군의 명물 청호 저수지에는 물 반, 고기반이라는 명성을 얻어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강태공들로 파시를 이뤄 청호지 어느 매운탕 집은 돈을 다발로 묶어 논, 밭을 사 졸부가 된 집도 있었다. 청호지를 휘감고 계화도 돈지방향으로 가다보면 도로변 언덕에 수 백 년 된 팽나무가 마을 수호신처럼 떡 버티고 있는 노로지 마을 정자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 농민들은 저수지에 농토가 수몰되어 대토보상을 해달라고 중앙정부에 수차례나 호소를 하였다. 그러나 묵묵부답하자 화가 치민 농민들은 하서면사무소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서 날마다 농성을 하였다. 그 당시 나도 농민으로 동류상성이란 입장에서 막걸리 한통을 선물로 보내 응원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투구를 쓴 경찰병력이 들이닥쳐 남녀 데모대를 닭장차에 짐짝 취급하듯 꾸역꾸역 몰아넣고서 허허벌판 계화간척지를 몇 시간이나 요리저리 뺑뺑이를 돌렸다. 차안에 갇힌 남녀농민들은 아우성을 치며 소변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는데도 전투결찰은 불허, 투구를 주며 여기에다가 하라하여, 변을 본 투구를 전경대 에게 냅다 내던져 오물을 뒤집어 쓴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 당시 농민운동을 응원하는 농활 대학생들이 몰려와 노로지 마을 정자에서 일일보고와 내일 할 일 등을 논의하였는데 필자도 끼어 한몫을 분담하였다. 전국에서 기독교,카톨릭 농민회의 간부들도 몰려와 합류를 하였다. 황소처럼 우직한 지금은 고인이 된 K 라는 친구는 신념이 얼마나 강했는지 밤낮을 모르고 농민데모대의 앞잡이로 경찰서 유치장을 밥 먹듯 드나들었다. 면사무소에서 강제철거를 당하여 부안성당으로 본부를 옮겼다. 매일 일과가 끝난 저녁 때 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농악을 울리고 농성은 계속되었다. 그 당시 박창신 신부라는 분이 강사로 나와 일장 연설을 하였는데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당신은 신부라는 직업이 부르주아 유산계급자로 솔직히 말해 농민의 쓰라린 애환을 잘 모른다며, 정치를 한다는 자들 역시 탁상공론이나 앞세운 자기 배나 채우는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 잘하는 위선자들로 5천만이 먹고사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에 대한 배려가 조금치도 없다. 라고 비판을 하며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총궐기를 해야 하며, 농토가 수몰에 의해 빼앗긴 대토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라고 힘주어 역설하였다. 그 당시 J라는 농민회장이 결국에는 공권력에 의해 붙잡혀 정읍 유치장에 구금이 되었다. 유치장 안에서 갖은 회유를 하였으나 굴절 없는 J회장을 사상범으로 몰아 중대범죄자로 취급, 겨우 누어 잘만한 좁은 독방에 갇혔는데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한다. 그가 출소 되는 날 전북 각 시군에서 모여든 농민운동가들이 정읍법원 마당에 삐잉 둘러 모여 J회장의 출소를 환영하는 환영의 노래를 불렀다. 곡조는 돌아와요 부산항에필자가 가사를 지어 불렀다. 꽃피는 석불산에 봄은 왔건만 ~ 고향 떠난 청호지에 강태공만 왔다갔다 ~~ 병태야 인술아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동지여! 공장굴뚝 순이야 내 고향 돌아와요그 당시 모진고문으로 독방에 감금 되었다가 출소된 J회장은 우울증으로 사람을 외면하는 기피증이 심하여 정신장애를 입었는데도 어디에다가 호소를 할 수도 없는 지금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실학의 비조(鼻祖)라 일컫는 반계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저서에 보면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농사짓는 자에게 농토를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한국농업은 80년대나 지금이나 농업시책을 들여다보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해야 하는데도 상당한 농지가 투기목적으로 도시의 유산계급자들의 소유로 되어 있어 정작 농민은 임차농,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농촌은 폐허처럼 빈집이 늘어나 망초만 무성하고 노령화로 죽어가고 있다. 젊은 농촌으로 살리겠다며 정부시책은 귀농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농촌에 정착하려해도 농사지을 농토와 수입원이 없어 귀농하였다가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가 도시빈민 노동자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한 세기나 낡은 새마을운동 깃발이 지금도 펄럭이고 있는데, 선진농업국인 덴마크나 화란을 본받아 시대에 맞는 전문적인 농업인을 근본적으로 양육시키는 제2의 농민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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