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연구원이 율곡학 연구의 기반 확충을 위해 율곡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21세기 판 율곡전서’를 '교감본 율곡전서'(3권 1질)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간행했다.
3권 1질인 이번 '교감본 율곡전서'는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수행한 '율곡 이이의 자료 집성과 정본화' 연구(연구책임자 오항녕 전주대 교수)의 성과다.
이 연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한국학 분야 토대연구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진행됐다. 연구단은 3년 동안 90여만 자에 달하는 '율곡전서'를 10여 종의 비교본과 일일이 대조 확인해 '교감본 율곡전서'를 완성했다.
교감과 표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10여 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개최했으며 교감 범례를 작성해 교감의 정확성과 통일성을 제고했다. 특히 작품별로 자료의 연혁과 작성 시기 등 연대 고증을 포함한 저작보를 추가 제공함으로써 율곡의 행적과 교류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율곡 사후 그의 저술에 대한 간행 작업은 지금까지 모두 네 번 있었다. 율곡이 세상을 뜬 지 27년 뒤인 1611년(광해군3)에 간행된 '율곡집'이 첫 번째다. 율곡의 제자인 박여룡, 김장생 등이 해주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집 1권과 문집 9권으로 이뤄진 소략한 분량이었던 까닭에 1682년(숙종8) 박세채(1631~1695)가 초간본에서 누락된 것들을 모아 속집 4권, 별집 4권, 외집 2권의 분량으로 재편집해 간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1749년(영조18) 노론-낙론계 거두인 도암 이재(1680~1746)가 기존의 문집을 한 데 모은 뒤 여기에 '성학집요'와 '격몽요결' 등을 추가해 편찬한 뒤 홍계희가 습유를 추가해 44권 38책으로 간행했다.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율곡전서'의 모본인데 이 판본은 1814년(순조14)에 다시 중간됐다. '율곡전서'는 중국 송나라 학자였던 정이와 정호 형제의 문집인 '이정전서'의 체제를 본뜬 것이다. 시문과 함께 '격몽요결', '성학집요', '경연일기' 등 율곡의 단독 저술을 망라해‘율곡집’ 또는 ‘율곡선생집’이 아닌 ‘율곡전서’라고 부른 것이다.
하지만 이 '율곡전서'는 이전에 전해지던 모본 문집들과 차이가 있었고 일부 작품이 새롭게 추가되는 등 자료의 연혁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교감본 율곡전서'는 이런 점들을 감안해 1611년에 간행된 '율곡집'과 1682년 박세채가 편성·간행한 '율곡속집', '율곡외집', '율곡별집' 등에 수록된 작품들 또한 '율곡전서'의 동일 작품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교감을 거쳤다.
그리고 편집 체제는 이재의 '율곡전서'의 기본 편성을 유지하되 교감을 통해 오탈자를 바로잡았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한 '한국문집 번역·교점 지침 및 사례'에 따라 현대식 표점도 표시해 전문 학자의 연구에 기여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율곡전서'의 국제화에도 편리하도록 했다.
한편 '교감본 율곡전서'의 간행을 가능케 한 '율곡 이이의 자료 집성과 정본화' 사업팀에는 연구책임자인 전주대 오항녕 교수 외에, 정석태(부산대), 김경호(전남대), 김태완(숭실대), 이동국(예술의전당), 정재훈(경북대), 정해득(한신대), 이희중?이상돈(서울대), 이경동(고려대), 이인복(경북대) 등, 국내의 역사, 철학, 서지학 연구자들이 두루 참여해 작업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교감본 율곡전서' 간행에 대해 연구책임자인 전주대 오항녕 교수는 “집을 지을 때 좋은 벽돌과 나무가 필요하듯이 인물 연구에는 그가 남긴 문집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정본이 필요하다. 칸트나 마르크스 연구도 그들의 저술을 정본화하는 데서 출발했다. 근래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에 대한 정본화 연구가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본 율곡전서'는 율곡 이이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정본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인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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