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계 독립운동가의 서훈(敍勳)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8/14 [07:16]

고광계 독립운동가의 서훈(敍勳)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8/14 [07:16]

 

 

190910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을 삼킨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한 독립군 중장 안중근의사의 쾌거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를 계기로  1910년 이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은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 중에서도 ‘나라가 망했는데 일신의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냐?’ 며 전 재산(600억원)  팔아 만주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장교 3500명을 배출한 이회영선생 6형제의 독립운동사는 청사에 기리 남을 일이다. 부안군 동진면 출생인 아나키스트(흑색공포단)백정기(1896-1934)의사와 하서면 청호리 출생인 고재신 독립운동가 역시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뚜렷하여 서훈을 받았지만,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들의 활약상에 대한 문헌이 사장되었거나 밝혀지지 않아 애석히도 서훈을 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 부안군 상서면 노적마을 고광계(高光契1897.3.3-1943.2.12)독립운동가는 부친(고민상) 모친(안성녀) 슬하에 2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20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등 그 해 10월 대한광복단 함경남도 갑산분단(甲山分團) 교통원으로 활약한 사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총독부 고등경찰에서 일본 총리대신과 각 대신 등에게 제출한 보고문서가 새로 발견되었다. 이 자료는 원문서(국사편찬위원회 소장)와 일본에서 발간한 <조선독립운동>이란 책자(1967) ‘민족주의 운동편’ 일본 동경(東京) 원서방(原書房)에 실린 두 가지 중요한 자료가 남아있다.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단은 192010월 김좌진 장군 독립군의 청산리전투 직후 홍범도 장군 등이 삼수갑산 등 함경도 지방에 국내 세력을 확보하고자, 국내외에서 연계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려 했던 치밀한 계획에 따라 결성된 조직이다. 고광계님은 그 독립운동 핵심단체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한 것으로 본다. 두 번째 독립운동 활동 자료로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나 다름없는 <매일신보>에 보도기사가 게재되었으며, 192118일 또는 118일자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독립운동자료로 ‘전북연구원’에서 간행한 <전북학연구>1(2019.12.31)에 게재된 연구위원 장세윤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고광계 님은 대한광복단 연락원의 직책을 맡아, 1920년 전 후에 중국 길림성 장백현(長白縣)과 함경남도 혜산진, 고향인 전라도 일원과 국내 지역을 왕래하며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네 번째 고씨 대관(2003.7.1) ‘독립운동공훈인명록’에 함경남도 혜산진에서 주로 활동한 대한광복단 갑산분단의 국외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고 명부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발굴한 6개 문헌에 여섯 번이나 이름이 수록됨은 물론, 대한광복단에서 활동한 연혁이 게재되어 있다. 고광계와 3종간인 고려혁명군을 조직한 고평(高平) 장군과 함께 대한광복단 본부(중국 북간도 연변 왕청현)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활동을 했다. 모친(안성녀)은 내 아들(고광계)은 평소 고평 장군과 같은 단체에서 광복활동을 하였다고 가족들에게 늘 상 말한바 있다. 고광계의 부친 고민상은 당시 훈장(訓長)란 의식 있는 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자식을 붙들고 있겠는가. 라며 추수를 하여 모두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어 가정이 궁핍하게 살았다.  광복운동을 하는 불손한 집안이라며, 부친(고민상)을 주재소 순사가 수시로 찾아와 집을 수색하고 상서 주재소에서 조사를 받다가 부안 경찰서로 이송하여 강도 높은 조사를 수십 차례나 받았으며, 어떤 때는 훈장 학습 중에도 연행하기도 하였다한다. 당시에는 일제강점기 수탈로 인해 늘 굶주려야 했고, 부안경찰서에 가려면 내변산 산길을 18㎞ 나 걸어 나가야 했다. 고광계님의 고향 내변산 노적마을은  조선시대 과거급제자가 11명이나 배출된 마을로 성균관(成均館)에서 ‘으뜸마을’이라는 인증서를 발급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하게 된 이유로는  유교의 선비정신을 받들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대한광복단에서 활동하게 된 동기라 하겠다. 고광계 님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북간도, 서간도에서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비밀경찰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다녔는데, 일경의 포위망을 뚫고 피하려다가 압록강변 혜산진의 험준 산령 암벽에서 실족, 사망(1943. 2.12)하여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원혼이 되었다. 슬하에 장녀 고재숙(高在淑)과 아들 고재흠(高在欽84)과 자녀 손들이 생존해 있다. 대한독립운동 101주년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독립투쟁을 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어 그 공훈에 따라 서훈은 물론 후세에 사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늦게나마 다행히도 고광계님의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  진바 국가는 서훈(敍勳)을 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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