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와 예수 탄생의 의미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2/12/23 [12:49]

개신교와 예수 탄생의 의미

새만금일보 | 입력 : 2022/12/23 [12:49]

 

 

해마다 연말이면 뒤숭숭하고 주변이 어지럽다. 한해를 정리하고 마감하는 12월은 마음부터 조급하고 긴장상태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트리에 화려한 오색등불이 켜지고 감미로운 캐럴송이 울려 퍼진다. 개신교를 탄생케 한 법과대학생 독일의 마틴 루터(1483-1546)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비를 피하기 위해 큰 고목나무 밑으로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벼락이 우르릉 꽝! 쳐 얼마나 무서웠던지 ‘하느님 저를 살려주시면 평생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다. 섬광이 번쩍 하더니만 옆에 있던 친구는 벼락에 맞아 죽고 루터는 살았다. 그 당시만 하여도 과학이 발달되지 못해 천둥벼락도 하느님의 조화에 의한 심판으로 알았다. 루터는 그 후로 신학교에 들어가 온갖 고행(苦行)과 난행을 겪으며 하느님의 사제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한다. 그러던 중에 가톨릭 신부들의 비행이 극에 달하여 루터는 교황주의를 반박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그 대 성당 벽에 붙여 목숨을 건 종교개혁을 시도 한다. 성례식,입교식,미사,고해성사,안수,혼례,임종례 등에 신부들의 부당한 행위와 특히 교황 요한22세는 세금을 걷고 속죄를 빙자한 면죄부(免罪符)를 팔며 심지어 성직을 팔고 사는 일까지 성행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전 이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1330-1384)는 종교재판에 의해 처형을 받았는데, 그를 추종한 존 후스(1372-14150)와 윌리엄 틴델(1494-1536)이 종교재판에 의해 화형으로 죽임을 당한다. 중세 암흑시대(AD570-1517)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 무려 천 년 동안 마녀사냥과 종교전쟁으로 수 천 만 명이 살상을 당했는데, 1347년 몽골병사가 유럽을 정벌할 때 죽은 시체를 성안에 던져 흑사병이 퍼져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은2,500만 명과 맞먹었다. 그 유명한 소설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 소설 내용은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 선남선녀 10명이 외딴곳에 들어가 살며 천일야화처럼 얘기를 나누는 식의 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신부, 주교는 살아있는 신(神)으로 지엄한 존재였는데, 신부도 일반신도와 똑같이 흑사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고 종교우상에서 점차 벗어나 과학에 눈을 뜨게 된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성공은 요하네스 쿠텐베르그 (johannesGutenberg1397-1467)의 인쇄술 덕분에 대량문서 보급으로 전 유럽이 벌컥 뒤집혀 새로운 문예부흥 시대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150년 이상 앞선 1,234년에 인쇄술이 명되었고, 파리국립박물관에 있는 백운화상 직지심경은 1,377년 것으로 세계 인쇄물중 가장 오래된 보물급이다. 지금도 세계는 모슬렘과 기독교간의 종교전쟁으로 중동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교란? 한마디로 성현들의 큰 가르침인데,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위해 서로 사랑해야 할 상생의 종교가 되어야 하는데도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살상한다거나 윤리도덕의 본이 되지 못한 중세교회처럼 신도를 볼모삼아 재물을 탐하고 면죄부를 팔아 바티칸 사원 같은 화려한 집을 짓고 소련의 성 바실리 성당처럼 금물을 입힌 사치하고 웅장한 예배당은 결코 예수가 말 했듯 회칠한 무덤이요 바벨탑을 쌓는 것이리라. 근세에 들어서서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은 수많은 희생과 함께 소련의 정교회가 무너졌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改新敎)가 탄생했는데 구교(舊敎), 즉 가톨릭은 한 계단 내려와 지도자를 양성한 반면, 개신교는 난장판이 되어 한 계단 올라서 오히려 종교개혁 이전과 같이 세속화 되어간다는 비판이다. 강남의 S교회의 K은퇴목사는100억대에 달하는 퇴직금과 우리나라에서 15대 밖에 없는 최고급 6000 CC급 밴틀리를 모는가 하면 국가에 세금 한 푼 안내는 중세교회 신부행세를 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 민주화는 3대 집단의 횡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첫째로 보수적인 종교집단이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수천에서 수억의 연봉을 받는 종교지도자들의 납세의무 외면과 물신주의에 빠져들어 세속화와, 둘째로는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는 언론기관이다. 셋째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한 정치집단에 의한 권력의 횡포다. 3.1운동의 주축이 된 기독교지도자들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과 애국애족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에 교황청의 때 늦은 사면은95%의 유럽기독교인이 출석교인 1%로 줄어든 한 원인으로 성당마다 공동화(空洞化)로 변해, 루터의 종교개혁은 500년 전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작금의 한국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개혁으로도 이어 나가야 하리라 본다. 춥고 배고픈 가난한 형제들을 생각하며, 12월 25일 예수의 탄생은 신자든 비신자든 간에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성스런 날로 보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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