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 여인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3/10 [00:24]

북간도 여인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3/10 [00:24]


연변동포와의 인연을 맺은 것은?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변 조선족 작가의 글을?내가 운영하는 문학지에 4차례나?실었는데 그 후 연변작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새만금에 초청을 하였다.
넓은 바다를 막아 육지를 만든 기술공법보다 확 트인 푸른 바다를 보고?탄성을 질렀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지나간 시간들이 점점 기억에서 멀어져 서로가 잊혀 져 갔다.?
그런데 '리리'라는 여인이 내 문학카페를 가끔씩 찾아주었다. 그 여인은 북간도 연변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와 중등교사로 30년 정년을 끝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여행기를 내 카페에 가끔 올린 나와는 카페 동우이다.
그런데 머나먼 이역만리 북간도에서?홀연히 나를 찾아온 것이다. 변산의 아름다운 바다와 매창과 허균과 매창의 정인 유희경에 얽힌 사연을 알고 싶어 서란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오랜 친구처럼?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석정 시문학관을 돌아보았고, 매창을 아끼는 선비들이 거문고와 함께 매창뜸에 묻어준 애잔한 매창의 무덤가를 맴돌며, 당대의 명사 허균(許筠)이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시비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갈매기가 훨훨 날아 제집을 찾아가는 고사포 해변을 붉게 물들이는 해 저문 저녁노을에 취하기도 했다.
적벽강,채석강을 돌아 바닷물이 저만큼 도망친 모항의 해변을?둘이는 걷고 또 걸었다.
우리는 어느새 다정한 물새 한 쌍이 되어 있었다.?그러나 어깨를 나란히 했을 뿐! 다정히 손을 잡지도 팔짱을 끼지도 않은 채 그저 백사장을 걸었을 뿐이다.
봄이 왔다지만 아직도 바닷바람은 토라진 임 바람처럼 차갑게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고슴도치 섬 위도를 바라보며 수평선 저 너머?북간도 여인 ‘리리’의 두고 온 연변 땅과 지구 끝 피안을 상상 해 보기도 했다.
내가 2000년 8월7일?연변공항에 내렸을 때는 쟁반보다 더 크고 둥근 붉은 해가?서산에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연변 거리는 한글 간판이 널 부러져?있어 우리나라 어느 도시로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은 비록 빼앗긴 땅이지만 북간도는 우리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온 우리의 삶의 터전이다. 죄 없이 후쿠오카 차가운 감옥에서 숨져간 윤동주 시인의?고향 땅,?일송정, 해란강변을 말달리던?선각자의 발자취와?우리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굽어본?그 해 여름은 몹시도 더웠다. 기억에서 사라져간 북간도 조선족동포 ‘리리’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특별한 인연이다.?목숨 바쳐 일제와 싸웠던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애국 혼이 깃든 땅! 그녀의 아버지에 아버지, 또 그 아버지를 통하여 그 얼이 이어진 깊은 사연을 변산?반계 골까지 머리에?이고 온 것이다. 1592년 7년간의 임진왜란 때 양반들은?서자와 종들을 금수처럼?천대하니 어차피 망하는 나라 천민들은 왜놈과 합세, 나라는 풍전등화(風前燈火)니 구국일념에 유성룡이 천민을 등용 하였으며,인간평등사상을 실천하려한?글재주가 뛰어나고 멋을 아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그의 누이 ‘허난설헌’은 황진이,이매창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이었다. 좌변산 우반동?정사암에서 홍길동전을 집필하며 국화주에 취한?허균은 시문과 가무에 뛰어난 매창을 지극히도 아꼈다. 정사암 가는 길은 인적이 끊긴 소나무가 하늘을 덮어 태고적 고요가 숨 막히듯 적막감이 감도는 오솔길을 허균과 매창이 걷던?그 길을 우리도 함께 걸었다.?매창의 정인 유희경을 처음만나 첫눈에 서로 반했다는데,?우리는 누가 먼저라기보다 서로가 손을 마주잡았다. 그녀의 손은 너무나도 따듯했다. 누가 보아도 우리는 어느새 한 쌍의 다정한 원앙이 되었다. 깎아지른 절벽! 이성계가 칼로 내리쳤다는 선계폭포! 그 위를 지나 솔향기가 짙게 풍기는?좁은 그 길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불 꺼진 시골 극장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오듯 ‘리리’의 손을 놓칠세라 두 손을 더욱 꼭 잡았다.?대나무 숲이 좌우로 빽빽히 우거져 금방이라도 삵이 튀어 나와 우리를 놀라게 할 것 같다. 선계골?골바람은 훈풍이 되어 댓잎을 사드락 사드락?간지리는 정오! 그 부딛는 소리는 첫날밤 감미로운 여인의 치마끈 풀리는 소리 같다. 우리는 어느새 허균과 매창이 되어 봄볕을 한 아름 퍼온?아늑한 약수터 바위를 소반삼아 마주앉아 국화주 대신 피보다 더 붉은 와인 잔을 기우렸다.
허균과 매창은 다정한 오누이?정을 나눈 고결한 사랑의 만남이었다.
기구한 운명의 천한 기생 매창은 정인 유희경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병이나 38세에?요절하니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파격적인 애절한 통곡의?시 한 수를?읊었다.?
?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 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도 남아있네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 쯤 이면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 곁을 지나려나.
매창은 꿈속 같은 정인과의 하룻밤의 도화경(桃花景)의 만남은?허망한 속세로?떠나야 했다.  실학의 비조(鼻祖)반계 유형원의 부친이 당파에 희생당해 벼슬을 마다하고 숨어 살던 사연 많은 우반동 정사암 골짜기, 그 고갯길에서 내려 다 보이는 반계골 맑은 호소(湖沼)를 뒤로하고 내변산 깊은 골을?돌고 돌아 어느새?시끌벅적한 속세에 당도했다.
‘사랑은 신(神)이 준 선물이요, 이별은 인간이 만든 불행’이라 했던가! 언제 또 만날까.
또 만날 수 있을 까. 기약 없는?이별은 슬픔만이 남는 것...
호수처럼 잔잔한?쪽빛 바다와 짙은 오랜지 색 저녁노을과 물새와 솔향기와 매창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대나무 숲길 정사암 가는 길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북간도 여인 ‘리리’와의 짧은 만남은 어느새 정이 깊었는지 두 손을 놓기가 싫었다.?
북간도는 우리 할아버지 선조의 땅!?한 겨울이면?온통 백설로 뒤덮힌?아름다운 눈 나라?!?
비록 지금은 빼앗긴 땅이지만 우리 조선족은 그 땅을 굳세게 지키며 통일의 그날에는 우리 서로 얼싸안고 춤추며 무궁화처럼 피고 또 피고 오래래 살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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