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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송선교(隱松宣敎)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3/22 [00:09]
은송선교(隱松宣敎)는 조선말 전주에서 초창기 전도활동을 벌인 완산칠봉 아래 은송리 마을을 말한다. 전주 성문 밖 은송리는 현재 완산초등학교 부근이다. 1832년 독일인 구츠라프에 의해 처음 소개된 개신교가 전주에 들어와 포교하기 시작한 것은 1893년 여름의 일이다.
“1893년 여름 리눌서 목사가 정해원씨를 전주에 보내어 전도도 하고 선교사가 묵을 집을 사게 함으로써”전주에서의 개신교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해 6월 전주에 온 정해원은 은송리에 26달러를 주고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하여 전도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9월에는 테이트와 전킨이 전주에 머물면서 향후 선교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당시 테이트 등이 전주에 묵고 있을 때‘양반만이 살고 있는 전주 땅에서 양인들은 물러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양반도 있었다. 서양 귀신을 쫓아낸다는‘축귀양인(逐鬼洋人)’네 글짜를 등에 써 붙이고 다닌 사람들도 있었다.
1894년 3월 테이트 등이 전주에 정착하면서 본적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가지만 곧이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때문에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직후 1895년 2월 레이놀즈와 테이트 일행은 은송리 초가집을 다시 마련한 뒤 그해 11월 선교활동을 재개하였다. 같은 해 처음으로 호남 최초의 개신교회인 전주 서문밖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초창기 선교는 의료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전주에 처음 들어온 선교의사는 해리슨이었다. 예수병원은 1898년 미국에서 온 여의사 마티 잉골드(Dr. Mattie B. Ingold)에 의해 시작되었다. 잉골드 박사는 은송리에 조그만 집 한 채를 구입하여 어린이와 여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잉골드는 은송리에 여성을 위한 진료소를 차려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잉골드의 진료는 4개월 만에 400여명의 환자들이 몰려왔을 정도로 평판이 높았다. 1902년 선교부 대지 위에 1천달러의 기금을 투자한 전주병원이 해리슨과 잉골드의 노력으로 건립되어 오늘의 예수병원에 이르고 있다.
1935년에 세워진 구 예수병원은 붉은 벽돌건물이었다. 도내 근대 건축물 중 처음 지어진 건물이다. 외관의 흉측한 변형 없이 당당하고 실용성 있는 보기 드문 유산이다. 70년대까지 예수병원이 사용하다 1971년 학교법인 우석재단이 인수, 1990년대까지 우석한방병원으로 사용됐으며 1998년부터 현재 엠마오사랑병원으로 쓰이고 있다.
구 예수병원(현 엠마오사랑병원)은 본관과 엠마오너싱홈, 사택 등 크게 세 건물로 구성돼 있다. 본관은 1935년 지어졌고 본관의 오른쪽 부분이 1950년에 증축됐으며 너싱홈은 1949년 세워졌다. 각 건물마다 건립연도가 새겨진 초석이 있다. 서양식 건축물인 이들 건물 중 특히 본관은 여름이면 건물 외벽으로 담쟁이넝쿨이 파릇한 잎을 무성히 틔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면에서 보면 2층이지만 뒤쪽에서 바라보면 5층짜리 건물이다. 너싱홈은 뒤에 지어졌지만 본관과 같은 건축 재료와 양식으로, 주 출입구인 아치형 현관을 돌출시켜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외양을 갖고 있다. 관문의 아치형 처리는 건물 내부에서도 볼 수 있다.
개신교는 의료선교 뿐만 아니라 근대 학교를 설립 교육선교를 병행하였다. 1900년 9월 9일 당시 선교사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1867-1951)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택에 신학당을 열고 학생 1명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교육선교의 시초이다.
1904년 서원너머 윌리엄 잰킨스 집으로 옮겼다가 1906년 현재 신흥학교 자리에 있던 희현당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09년에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인 옛 희현당 자리에 벽돌 2층 양옥 건물을 지어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1909년 9월 신흥학교 강당자리에 기와집 8칸을 신축하여 학교이름을 신흥학교라 하고 선교사 유서백이 교장으로 취임,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한편 1904년 9월 1일 전킨이 한국 여성에 대한 교육을 위해 서원너머에 학생 10명을 모아 여자청년학교라는 명칭으로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기전학교의 전신이다.
예수병원 어린이집 부근에는 선교사들의 묘소가 있다. 선교사 랭킨(David C. Rankin) 은 미국 남장로회 선교본부 협동 총무로 1902년 12월 초 아시아 선교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거쳐 내한해, 먼저 평양에 갔다가 폐렴에 걸려 12월 28일 별세하였다. 해리슨(Linnie D. Harrison)은 1892년 남장로회 개척 선교단원으로 내한하여 전주에서 환자 심방을 갔다가 열병에 전염되어 1903년 6월 19일 별세했다.
전킨(W.M.Junkin)은 군산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악화 되어 1904년 전주로 옮겼다. 그 후“전주 6마일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선교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지방 순회를 감행하다가 결국 장티푸스에 폐렴이 겹쳐 1908년 1월 2일 별세하였다.
전킨 묘비 앞에 벽돌같이 생긴 조그만 돌 세 개가 나란히 박혀 있는데 시드니(Sidney), 프랜시스(Francis), 조지(George)의 묘비석이다. 어려서 군산에서 죽은 전킨의 세 아들의 묘비석인 것이다. 전킨 가문의‘4 부자’가 함께 묻힌 셈이다.
전주시 서완산동 145번지 전주 유일의 일제 강점기 양관은 예수병원 의사와 간호원 사택으로 지어졌다. 이 집은 스미스 선교사를 마지막으로 주인 없이 비워두었는데 그 때“빈 집을 지키며 돌봐 주겠다”는 사람이 나서 그에게 집 관리를 맡겼다. 그는 그 집의 시설 일부를 개조해 독서실(고시원)을 차리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소유권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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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2 [00:0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