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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막한풍(倭幕寒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4/05 [06:28]
왜막한풍(倭幕寒風)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 아중리 왜막실 마을의 겨울 찬바람 >을 의미한다. 왜막실은 전주시 우아동 1가 450번지에서 550번지 사이의 '갓바우' '광터골' '아중' '아하' '용교' '재전' '문수' 등 일곱 마을을 포함한 길다란 골짜기를 말한다. 이처럼 몇 개 마을이 터를 이룰 만큼 넓은 골짜기를 일컫는다. 왜막실은 골짜기를 따라 재전, 용계, 아하, 아중 등 네 개의 작은 마을로 이뤄졌다.
왜막실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조선시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군 때문이다. 정유재란에 앞서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은 유독 전라도 땅을 빼앗지 못했다. 그래서 정유재란에는 전라도를 집중 공략했다. 전북 남원의 남원성 전투에서는 관군과 의병 그리고 일반 백성을 합쳐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전주부성을 향해 오던 왜군은 일단 완주군 상관면 원색장 마을 뒤 성황고개를 넘어 이곳 왜막실 골짜기에 군대를 주둔 시킨다. 전주부성의 정황을 살피면서 침공할 계획이었다. 왜군들은 이곳에 막사를 짓고 부상병의 치료도 했다. 이 후부터 이곳을 왜군들의 막사가 있었다고 해서 왜막실(倭幕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장 막 > 대신 < 망할 망 >을 써서 왜망실(倭亡室)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구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도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왜망실’이라는 이름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마근대미재에 세워놓은 허수아비를 보고 그 옆 골짜기를 넘어 오다가 모두 죽었다 해서 왜망실로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왜망실에는 가마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구워진 기와가 풍남문에서 사용됐다고 한다. 당시 가마터가 있던 자리에는 점토질의 흙이 많은데 굉장히 단단한 점토라 하여 외막골이라 불리웠던 때도 있었다.
한편 왜군 가운데는 조선인으로 귀화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일부 왜군들은 군복을 벗고 이곳에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완산김씨나 전주김씨 혹은 왜막실 김씨(金氏) 로 살았다고 한다. 완산부성 밖 동쪽 귀퉁이 골짜기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우아동 1가 갓바우(관암)마을에서 원색장 마을로 넘어가는 성황고개를 넘기 전 약 300m 지점에 이르면 산 아래 0.4-0.6m의 높이로 석축이 있다. 산 윗 쪽에는 옛 성터 비슷하게 1.5-1.8m의 석축을 발견할 수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강담 '석축'을 쌓았던 장소로 추정된다. 지금은 소나무와 잡목, 그리고 잡풀이 우거져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야산 허리와 같은 곳이다. 여기가 왜병 막사가 마지막까지 있던 자리였을 것이다.
이곳의 성황고개는 당초 성(城)고개라고 불렀다. 동편에 성황고개 보다 조금 낮은 원수너미 고개가 있고 그 밑에 전골, 징목골이 있다. 전골은 많은 고기를 삶아 낸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징목골은 징채 같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왜병이 모이고 헤어지는 신호로 징을 치던 곳이다.
전주의 동쪽은 우아동 일대다. 옛적 우방리라는 마을과 아중리라는 마을이 한 집 살림을 하게 되면서 우아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1980년대 이후 새로 개발된 신흥지역이다. 이곳에는 모텔 촌도 형성됐다. 실제로 우아동 일대에는 수많은 모텔들이 밀집해 있어서 호황을 누린다. 특히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미처 한옥마을 숙박체험 업소에 방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자주 찾기도 한다.
옛적 우방리는 전주역에 가까운 일대, 그리고 아중리는 아중저수지 근방의 마을이었다. 우방리 일대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반면 아중리는 아중저수지 때문에 우아동으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아중리로 불린다.
전주 북쪽에 덕진연못이 있다면, 전주 동남쪽을 지키고 앉은 호수가 바로 아중저수지다. 지금 이곳 사람들은 < 아중저수지 >라고 부른지 않는다. 품격을 높여 < 아중호수 >라고 부른다. 왜막실은 바로 아중호수 상류 일대에 있다. 아중호수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 아중역 >이 있다. 역의 기능이 사라진지는 오래다. 대신 옛날 주요 흔적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레일바이크가 다니고 있어 인기가 높다. 특히 그 뒤에는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전주종묘장이 있다.
전주에서 발견돼‘전주물꼬리풀’이라는 이름을 얻은 멸종위기식물 하나가 거기 산다. 1912년 처음 발견된 뒤 전주를 떠났다가 무려 101년 만에 전주 땅을 다시 찾은 귀한 식물이다. 전주는 2013년, 이 식물에 대한 환영식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가을에 자주색 혹은 분홍색의 꽃을 피운다.
지난 3월 29일 김승수 전주시장이 왜막실 닥나무 재배단지를 찾았다. 김 시장은 닥나무 묘목 식재 현장을 둘러보고 농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김 시장의 이날 방문은 한지 원료인 닥나무 재배단지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농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곳에는 4월 초까지 총 1만2000그루의 닥나무 묘목이 식재될 예정이다. 5년 후부터는 연간 40톤의 닥나무가 생산돼 안정적인 한지 원료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9년 11월 전주 인후문화의집에서는 왜망실 용계마을에서‘다섯빛깔 어깨동무 프로젝트’를 주제로 마을축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왜막실 토크쇼, 왜막실 판소리, 왜막실 소고잽이 할아버지 개인놀이, 풍물패 천둥소리의 뒷풀이 굿 등이 진행됐다. 왜막실 판소리에서는 마을 이야기 등을 전통소리로 만들어 소개했다. 왜막실 주민 11명을 대상으로 구술조사를 실시, 최기우 작가가 사설을 쓰고 소리꾼 이용선 씨와 최재구 씨가 창을 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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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5 [06:2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