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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4/18 [00:55]

옥천김씨(沃川金氏)

 시조 김희철(金希哲)은 경순왕의 후예로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조 김장유의 10세손이다. 김희철은 무과에 급제했으며 딸이 선조의 후궁이 되자 사포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전사했다. 후손들이 선대의 세거지였던 옥천을 본관으로 삼은 듯하다. 옥천(沃川)은 충북 옥천 지명이다.

 본관 한자가 다른 옥천김씨(玉川金氏)도 있다. 시조 김곤(金錕)은 예안김씨 후손 김득선의 셋째 아들로 조선조 인조 26년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 감찰을 지냈다. 후손들이 분관하여 옥천(玉川)을 본관으로 삼았다. 진사 김천익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옥천(玉川)은 전북 순창 지명이다.

 인구는 구분하지 않고 합쳐져 있다. 1985년 1,802명, 2000년 723명이다. 2000년 현재 서울 234명, 부산 37명, 대구 14명, 인천 39명, 광주 7명, 대전 39명, 울산 3명, 경기 164명, 강원 14명, 충북 39명, 충남 22명, 전북 24명, 전남 10명, 경북 48명, 경남 28명, 제주 1명이다.



온양김씨(溫陽金氏)

 시조 김우(金佑)은 고려 강종 때 문하시중으로 나라에 공을 세우고 신호위대장군에 올라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본관을 온양으로 했다. 온양은 충남 온양 지명이다.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 아산시로 개편했다. 13세손 김우(金宇)는 조선조에서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희천군(熙川君)에 봉해졌다. 김우는 바로 희천김씨(熙川金氏)의 시조다. 그래서 두 김씨는 뿌리가 같다.

 온양김씨 인구는 1985년 2,295명, 2000년 2,650명이다. 15년 만에 355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60명, 부산 62명, 대구 37명, 인천 196명, 광주 158명, 대전 49명, 울산 16명, 경기 656명, 강원 68명, 충북 53명, 충남 141명, 전북 171명, 전남 173명, 경북 53명, 경남 43명, 제주 14명이다. 한편 희천김씨는 1985년 2,140명, 2000년 2,512명이다



완산김씨(完山金氏)

 시조 김정(金晸)은 신라 대안군 김은열의 10세손인 김약선의 아들이다. 또한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의 손자로 생원을 지냈다. 따라서 완산김씨와 전주김씨는 그 뿌리가 같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경주에서 분적(分籍)하여 김정을 시조로, 완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완산은 전주의 옛 이름이다. 완산김씨의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9명이다.

 완산김씨 인구는 1985년 327명, 2000년 653명이다. 15년 만에 32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80명, 부산 81명, 대구 18명, 인천 28명, 광주 24명, 대전 33명, 울산 5명, 경기 131명, 강원 24명, 충북 10명, 충남 12명, 전북 24명, 전남 23명, 경북 22명, 경남 23명, 제주 22명이다. 한편 전주김씨 인구는 2000년 57,979명이다.



용담김씨(龍潭金氏)

 시조 김덕생(金德生)은 조선초 원종공신으로 병조참의를 지냈으며 명천으로 낙향, 세거했다.  그 뒤 후손들이 함경북도 명천, 경성, 길주 등지에 세거하며 용담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1930년 당시 함북 명천군 아간면 황곡동, 함북 경성군 주남면, 함북 명천군 상우북면 신흥동에 55호가 살았다. 한편 수원김씨 시조 김품언의 넷째 아들로 고려조에 예부시랑을 지낸 김순서를 시조로 삼는 문헌도 있다. 용담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324명, 2000년 197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2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4명, 부산 13명, 대구 28명, 인천 15명, 광주 0명, 대전 1명, 울산 10명, 경기 34명, 강원 11명, 충북 2명, 충남 5명, 전북 6명, 전남 0명, 경북 9명, 경남 16명, 제주 3명이다.



용성김씨(龍城金氏)

 시조 김시보(金時輔)는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손자인 수원김씨(水原金氏) 시조 김품언(金稟言)의 22세손이다. 김시보는 생원으로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풍기군수를 지냈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급제 당시 본관이 용성(화성의 속현)이고 거주지가 밀양인 것을 보면 밀양에 옮겨 사는 동안 전 세거지 용성으로 삼은 것 같다. 김시보는《수원김씨세보(水原金氏世譜)》에도 실려 있다. 용성(龍城)은 경기도 수원(水原)에 속해있던 옛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80명, 2000년 104명이다. 15년 만에 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5명, 부산 4명, 대구 7명, 인천 2명, 광주 1명, 대전 2명, 울산 1명, 경기 36명, 강원 0명, 충북 2명, 충남 4명, 전북 1명, 전남 0명, 경북 11명, 경남 1명, 제주 7명이다.



용안김씨(龍安金氏)

 용안김씨는 원래 광산김씨에서 갈라진 지파다. 시조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광주광역시 충효동 성안마을에서 광산김씨 습독공 김붕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알지의 후예로 광산김씨 분관조 김흥광의 30세손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워 익호장군(翼虎將軍)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간신의 무고로 옥사했다.

 부인 이씨도 벼랑에서 투신하여 자결했다. 정조 12년 충장이라 시호되었으며, 이듬해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조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동구 금곡동에 있다. 홀로 남은 아들 김광옥(金光沃)은 전북 익산시 용안면에 피신,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본관도 용안으로 바꾸고 광산김씨에서 분적했다.

 그 뒤 외숙인 이인경(李寅卿)의 임지인 평안남도 숙천군 근처 안주군 운곡면 쇠꼴이란 곳에 정착한다. 이곳이 그의 제2의 고향이고 후손들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다. 김덕령이 용안김씨의 시조라는 사실은 신라김씨 대종사(大宗史)와 양주김씨(陽州金氏)의 족보에 의해 밝혀졌다. 그 이전에는 김덕령의 후손임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용안은 전북 익산시 용안면의 지명이다.

 용안김씨는 1945년 해방 당시까지 평안남도 안주군 운곡면 일대에 15대까지 번창하며 살았다. 그러나 남북 분단으로 인해 소수의 후손들이 월남하여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에 2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주요파는 철륜공파, 계륜공파가 있다. 족보는 1978년에 간행한 < 무오보(戊午譜) >가 있다.

 인구는 1985년 244명, 2000년 500명이다. 15년 만에 25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64명, 부산 38명, 대구 1명, 인천 18명, 광주 4명, 대전 20명, 울산 5명, 경기 151명, 강원 26명, 충북 25명, 충남 6명, 전북 8명, 전남 7명, 경북 9명, 경남 17명, 제주 1명이다.





웅천김씨(熊川金氏)

 시조 김취행(金就行)은 신라 종성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조랑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웅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한편 김취행의 선조로 조선조에서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삼는 문헌도 전한다. 1930년 경기도 개풍군 북면 용현리에 30호가 살았다. 웅천은 두 군데에 있다. 경남 창원시에 있는 지명 또는 충남 공주의 옛 이름이다. 어느 곳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인구는 1985년 461명, 2000년 347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14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26명, 부산 10명, 대구 8명, 인천 16명, 광주 4명, 대전 8명, 울산 14명, 경기 99명, 강원 12명, 충북 3명, 충남 14명, 전북 2명, 전남 14명, 경북 7명, 경남 8명, 제주 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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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8 [00:55]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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