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성씨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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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김씨/장동김씨/장성김씨/장연김씨/적성김씨/정산김씨/정선김씨/정읍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5/16 [00:16]

임피김씨(臨陂金氏) 

 시조 김한추(金漢樞)는 신라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인 김여흥(金余興, 고려시대 시중)의 손자다. 그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로 임피군(臨陂君)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임피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수옹(金守甕)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임피는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의 지명이다. 군산시 이전에는 옥구군 임피면이었다. 임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임피김씨 외에 ▲임피진씨(臨陂陳氏)와 ▲임피임씨(臨陂林氏)가 있다.

 조선시대에  5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4명, 의과 1명이다. 인구는 1985년 61명, 2000년 117명이다. 15년 만에 5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30명, 부산 7명, 대구 2명, 인천 11명, 광주 1명, 대전 9명, 울산 0명, 경기 26명, 강원 2명, 충북 4명, 충남 2명, 전북 14명, 전남 1명, 경북 7명, 경남 1명, 제주 0명이다.

장동김씨(壯洞金氏)

 장동김씨는 신(新) 안동김씨(安東金氏)의 별칭이다. 조선 말기 세도정치의 주요 가문이 되면서 장동 김씨(壯洞金氏) 혹은 장김(壯金)이라고 불린다.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 말 경상도 고창의 성주로 있다가 고려 개국공신이 되어 태사공(太師公)에 봉해졌다.

 세도정치를 주도한 장동김씨는 장동, 즉 장의동(壯義洞)에 살았다. 장의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동 일대다. 경복궁 서북쪽 자하문(紫霞門) 밑의 '장의동'인데 지금의 옥인동과 청운동 일대다. 장동김씨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김상용(1561~1637)과 김상헌(1570~1652)이 증조부 때 벼슬을 하면서 안동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부터다.

 그들의 저택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나온다. 바위 암벽과 소나무 그리고 우아한 기와집들이 조화를 이룬 서울 최고의 저택이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집터다. 장동김씨 인구는 1985년에는 나타나지 않고 2000년에 4명이 있다. 신 안동김씨 족보에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성김씨(長城金氏)

 시조 김극신(金克信)이 1405년(태종5) 문과에 급제하여 판교(判校)를 지냈다고 전할 뿐이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극신을 시조로, 장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장성은 전라남도 장성군의 지명이다. 장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장성김씨, 장성이씨, 장성서씨, 장성전씨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명이다. 인구는 1985년 488명, 2000년 525명이다. 15년 만에 37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45명, 부산 19명, 대구 13명, 인천 43명, 광주 91명, 대전 21명, 울산 2명, 경기 65명, 강원 11명, 충북 3명, 충남 8명, 전북 28명, 전남 47명, 경북 14명, 경남 13명, 제주 2명이다.

장연김씨(長淵金氏) 

 시조 김정신(金鼎新)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해지고 있으나 문헌이 없어 전후 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그는 1047년(문종1) 문과에 장원하고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후손인 김진호(金鎭浩)는 한일합방 후 만주로 건너가 흥업단(興業團)의 재무부장으로 활약하고 정의부(正義府)의 중앙집행위원, 국민부(國民府)의 중앙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193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평남 대동군 청룡면 삼곡리에 22호, 평북 정주군 관주면 근담동에 62호, 평북 선천군 수청면 고읍동에 23호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장연은 황해도 장연군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558명, 2000년 334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224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36명, 부산 29명, 대구 10명, 인천 23명, 광주 3명, 대전 4명, 울산 5명, 경기 85명, 강원 7명, 충북 1명, 충남 1명, 전북 4명, 전남 4명, 경북 6명, 경남 16명, 제주 0명이다.

적성김씨(積城金氏)

 시조 김상환(金尙煥)은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시조인 김석(金錫)의 후손이다. 1669년(현종10) 식년(式年)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감찰을 지냈다. 급제 당시의 본관이 적성으로 선대부터 적성에 살았던 것 같다. 계림군 김적(金積)의 증손 김광(金光)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1930년 평남 평원군 공덕면 송매리에 21가구, 평북 의주시 탑산동에 10가구가 살고 있었다. 적성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시 남면, 연천군 백학면, 연천군 전곡읍의 간파리, 늘목리 일대에 있던 경기도 옛 행정구역의 명칭이다. 전북 순창군 적성면(赤城面)과는 한자가 다르다.

 인구는 1985년 801명, 2000년 669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32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67명, 부산 31명, 대구 12명, 인천 35명, 광주 2명, 대전 28명, 울산 6명, 경기 176명, 강원 34명, 충북 14명, 충남 23명, 전북 3명, 전남 11명, 경북 14명, 경남 8명, 제주 5명이다.

정산김씨(定山金氏)

 시조 김복수(金福壽)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5세손 김한(金漢)의 둘째 아들로 현감을 지냈다.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정산으로 이거했다가 다시 평안도에 정착세거하며 광유(光酉)로 개명하고 전 거주지였던 정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현손 김덕립이 장군에 올랐으며, 그의 맏아들 김득일은 통정대부에 올랐다. 1930년 평북 영변군 오리면 세죽동에 50호, 서울시 일원에 20호가 살았다. 한편 대안군 김은열의 9세손인 김태서의 4세손으로, 공부시랑을 지낸 김행경(金行敬)을 시조로 삼는 문헌도 있다. 정산은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211명, 2000년 673명이다. 15년 만에 462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07명, 부산 49명, 대구 36명, 인천 28명, 광주 4명, 대전 34명, 울산 12명, 경기 163명, 강원 28명, 충북 18명, 충남 23명, 전북 19명, 전남 9명, 경북 25명, 경남 14명, 제주 4명이다.

정선김씨(旌善金氏)

 시조 김공간(金公侃)은 경순왕의 후예로 부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정선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정선은 강원도 정선군의 지명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후손들이 경상남도 함안군 서하면 봉전리에 91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에 70호, 강원도 삼척군 한강변 장전리에 25호가 살고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9명이다. 인구는 1985년 6,763명, 2000년 1,005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5,758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369명, 부산 32명, 대구 20명, 인천 54명, 광주 4명, 대전 18명, 울산 16명, 경기 280명, 강원 97명, 충북 29명, 충남 28명, 전북 6명, 전남 4명, 경북 34명, 경남 14명, 제주 0명이다.

정읍김씨(井邑金氏)

 시조 김수온(金守溫)은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한다. 그의 선계는 영산김씨(永山金氏)와 동원(同源)으로 알려졌으나 동일 인물인지는 문헌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김수온은 조선조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치평요람>을 편찬했다. 승문원교리로서 <의방유취> 편찬에 참여했으며 부사직으로 <석가보>를 증수했다. 벼슬이 병조정랑, 첨지중추원사, 공조판서를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불경의 간행에도 공이 컸던 조선 전기 명신이다. 당시 서거정, 강희맹 등과 함께 문명을 떨쳤다. 본관 정읍은 전라북도 정읍시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572명, 2000년 480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92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81명, 부산 9명, 대구 4명, 인천 23명, 광주 15명, 대전 4명, 울산 1명, 경기 122명, 강원 6명, 충북 1명, 충남 16명, 전북 74명, 전남 7명, 경북 9명, 경남 8명, 제주 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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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6 [00:1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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