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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김씨, 제주김씨, 중화김씨, 진도김씨, 진산김씨, 진안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5/22 [00:45]

정주김씨(貞州金氏)

 정주김씨(貞州金氏)는 해풍김씨(海豊金氏)에서 분적됐다. 그리고 해풍김씨는 덕산김씨에서 분적됐다. 해풍김씨 시조 김숭선(金崇善)은 고려시대에 예부상서와 병부전서를 지냈다. 정주김씨(貞州金氏) 시조 김수(金守)는 고려 때 대사헌을 역임한 김장(金樟)의 현손(玄孫)으로 조선조에서 부장(部將)을 지내며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정주(貞州)에 세거해 오면서 해풍김씨에서 분적했다.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김산해와 좌승지 김종엽이 있다. 세거지는 경기도 개풍군 청고면 유릉리, 서면과 상성면 연하리, 상도면 대릉리,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 등이다.

 항렬자는 15世 열(烈), 16世 기(基), 17世 종(鍾), 18世 홍(洪), 19世 정(楨), 20世 병(炳), 21世 곤(坤), 22世 진(鎭), 23世 연(淵), 24世 주(柱)이다. 정주(貞州)는 황해도 개풍군(開豊郡)의 옛 지명이다. 1310년 해풍군(海豊郡)으로 강등되었으며 1442년 덕수현(德水縣)과 합하여 풍덕군(豊德郡)이 되었다. 1930년 개성군 송도면(松都面)이 개성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개성과 풍덕이 합하여 개풍군이 되었다.

 한편 본관 한자가 다른 정주김씨(定州金氏)가 있다. 시조 김승원(金承遠)은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의 후손 김희조(金希祖)의 8세손이다. 그는 조선조에 현감을 역임했으며 후손들이 본관을 정주(定州)라 했다. 정주(定州)는 평안북도 정주시의 지명이다. 정주군의 전신인 구주(龜州)는 본래 만년군(萬年郡), 곽주는 장리현(長利縣)이라 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6명이다. 인구 및 급제자는 본관 정주(貞州)와 정주(定州)를 구분하지 않고 합쳐졌다. 1985년 2,499명, 2000년 2,384명이다. 15년 만에 115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20명, 부산 90명, 대구 31명, 인천 209명, 광주 65명, 대전 67명, 울산 17명, 경기 634명, 강원 85명, 충북 51명, 충남 141명, 전북 112명, 전남 76명, 경북 39명, 경남 39명, 제주 8명이다.



제주김씨(濟州金氏) 

 시조 김렴(金濂)은 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金需)의 18세손이며, 첨정 김수돈(金守敦)의 아들이다. 그는 1544년(중종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산군수에 이르렀다. 한편 문헌에는 시조 김렴의 본관이 상주(상산의 다른 이름)로, 그리고 거주지 역시 상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아마도 그 후손들이 상산김씨에서 분적하여 김렴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한 것 같다. 자세한 문헌이 없어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인구는 1985년 270명, 2000년 744명이다. 15년 만에 474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38명, 부산 65명, 대구 12명, 인천 49명, 광주 7명, 대전 8명, 울산 18명, 경기 102명, 강원 13명, 충북 7명, 충남 17명, 전북 19명, 전남 29명, 경북 16명, 경남 26명, 제주 118명이다.



중화김씨(中和金氏) 

 시조 김철(金哲)은 신라 문성왕의 5세손으로 벽상삼한공신을 지낸 당악김씨(唐岳金氏) 시조 김락(金樂)의 동생이다. 조선씨족통보에 보면 김철은 고려조 개국공신으로 본래 순천인인데 중화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당악김씨에서 분적(分籍)하여 김철을 시조로, 중화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당악(唐岳)은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 가화압(加火押)으로 불렀고, 신라 때는 당악현(唐岳縣)으로 개칭되었다.

 인구는 1985년 403명, 2000년 426명이다. 15년 만에 23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89명, 부산 39명, 대구 23명, 인천 33명, 광주 1명, 대전 17명, 울산 9명, 경기 122명, 강원 10명, 충북 8명, 충남 12명, 전북 9명, 전남 0명, 경북 47명, 경남 6명, 제주 1명이다.



진도김씨(珍島金氏)

 시조 김국빈(金國儐)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이다. 그는 위·촉·오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신라 미추왕(味鄒王.262~284)은 그에게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진도를 본관으로 삼은 사람은 왕건이 나주를 공격할 때 공을 세운 23세손 김경호(金敬浩)이다. 그는 940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옥주후(沃州候)가 되었다. 옥주는 진도의 옛 이름이다. 그의 묘소는 옥주부 동쪽 20리 사현(沙峴)에 있고, 그의 아버지 묘는 낭산(郎山)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김경호의 큰아들 김구석(金九碩)은 고려 정종 때 중랑장을 지냈다. 15세손 김형숙(金亨淑)의 부인은 진도의 임회박씨였다. 그의 조카 김경조(金慶祚)는 고려 말 이방원의 정몽주 숙청 때 함께 죽었다. 선죽교 비에 진도 사람 김경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진도김씨 개성파는 주로 개성·칠원·개풍 등지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그 일부가 남하하여 서울과 부산에 주로 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문헌에는 김국빈(金國儐)이 고려조에 군정사(軍政事)를 역임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년대의 신라 때와 900년대의 고려 때는 700년 정도의 차이가 있어 규명해야 할 숙제다.

 한편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하는 김자경(金自敬)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문헌이 없으므로 확실한 세계를 알 수 없다. 다만 김자경은 조선조에 선무랑을 지냈는데, 고려조에 호부상서를 지낸 김혁흥(金奕興)의 후손으로 전하기도 한다. 후손들이 진도에 토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진도로 삼았다고 한다.  

 인구는 1985년 1,363명, 2000년 1,464명이다. 15년 만에 101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376명, 부산 67명, 대구 25명, 인천 95명, 광주 18명, 대전 12명, 울산 27명, 경기 363명, 강원 72명, 충북 13명, 충남 224명, 전북 15명, 전남 26명, 경북 15명, 경남 114명, 제주 2명이다.



진산김씨(珍山金氏) 

 시조 김천석(金天錫)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할 뿐 계대를 알 수 없다. 그는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감사(監司)를 역임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천석을 시조로, 진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진산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의 지명이다. 금산군 진산면·복수면·추부면 일대에 1914년까지 있던 옛 고을이다. 1413년 진산군으로 고쳐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옥계였다.

 인구는 1985년 697명, 2000년 230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46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0명, 부산 6명, 대구 2명, 인천 21명, 광주 1명, 대전 4명, 울산 9명, 경기 79명, 강원 8명, 충북 7명, 충남 6명, 전북 4명, 전남 3명, 경북 4명, 경남 6명, 제주 0명이다.



진안김씨(鎭安金氏) 

 시조 김한공(金漢公)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 김은열의 5세손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한공을 시조로, 진안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무과 1명이다. 한편 진안군(鎭安君) 김여(金呂)를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 진안은 전라북도 진안군의 지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진안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에 총 7가구 2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3명, 부산 1명, 대구 3명, 인천 6명, 광주 0명, 대전 0명, 울산 0명, 경기 3명, 강원 0명, 충북 1명, 충남 0명, 전북 4명, 전남 0명, 경북 0명, 경남 0명, 제주 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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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22 [00:45]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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