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의 폐해가 심각하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6/01 [06:52]

사이비종교의 폐해가 심각하다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6/01 [06:52]


사이비종교(似而非宗敎)와 관련된 사회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유형도 여러 가지다. 사이비종교 또는 유사종교(類似宗敎)는 기성 종교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종교들을 구분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비슷해(似) 보이나(而) 그렇지 않다(非)"로, 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말한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의 어원은 맹자 진심장구(盡心章句)에서 보인다. 본래의 의미는 "종교처럼 보이지만 종교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보편적으로 신흥종교 중에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의 뜻으로 쓰인다. 사이비 종교인은 종교적 본질을 자신의 삶의 중심인 것으로 표방하나 실제로는 종교적 본질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이단(異端)"이라는 표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배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신앙, 종교 또는 종파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단과 사이비를 흔히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이단의 경우 종교적, 도덕적 기준에 따르나, 사이비는 종교적, 도덕적 기준 이외에 법적 기준이 적용되기도 한다.
최근 사이비 종교에 빠져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세 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충격을 주었다. 사체를 유기한 친모와 사이비 신자들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돗개를 숭배하는 한 종교 집단이 저지른 참상이다.
아이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실이 3년 만에 드러났다. 아이에게 악귀가 씌었다는 게 살해 이유다. 이 잔혹한 범행에 친엄마도 가담했다. 친모는 사이비 집단에 미혹되어 범행을 은폐했다. 이들은 진돗개 수십 마리를 키우면서 개가 짖으면 상대방에게 악귀가 씌었다고 믿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최씨는 김씨를 알게 된 후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었다. 종교 문제로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지자 최씨는 2014년 2월 이혼을 결심한 뒤 아들 김모(당시 3세)군과 딸 김모(9)양을 데리고 화곡동 김씨 빌라에 들어갔다.
이들은 어린 김군이 오줌을 못 가리거나 고집을 피울 경우‘악귀가 씌었다’며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반년가량 학대가 이어지다 2014년 7월7일 김군은 결국 코피를 흘리면서 숨을 거뒀다. 사건 당일 최씨는 아들의 시신을 큰 상자에 넣은 다음 전북에서 또 다른 회원 김모(71·여)씨가 거주하는 전북 완주군의 한 야산에 파묻었다.
사흘 뒤 야산에 멧돼지가 출몰해 땅을 파헤친다는 소문에 이들은 시신을 다시 파내 화장하고 임실의 강변에 유골을 뿌렸다. 최씨는 한 달 뒤“아들이 부천에서 실종됐다”는 거짓신고를 했다. 최씨의 허위 신고 탓에 경찰은 김군의 행방을 찾기 위해 3년을 허비해야 했다.
경찰은 최씨가 실종 한 달 후에 신고를 한 점, 조사에 비협조적인 점 등이 의심스러워 수사를 확대한 결과 전북에 거주하고 있던 김씨로부터“김군을 때렸는데 죽어서 시체를 유기했다”는 진술을 최근 확보했다. 진돗개를 대체 왜 숭배했고 어떤 교리를 가졌는지에 대한 추궁에는“진돗개를 사랑했을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함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은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주)오대양의 공예품 공장에서 일어났다.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를 비롯해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남 4명, 여 28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됐다.
사망자 32명 중 17명은 가족관계였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살극으로 위장된 변사사건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변사사건이었다. 숨진 오대양 직원 대부분은 구원파 신도였다. 잇따라 '타살' 의혹이 제기돼 1987년 수사 이후 1989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모두 '집단 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이후 지속적으로 타살 의혹이 제기돼 1987년 수사 이후 1989년과 1991년 2차례의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모두 '집단 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수사당국은 17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오대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종교집단인 구원파로 흘러들어갔던 것으로 보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배후로 지목해 조사했지만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했다.
박순자는 1982년 5월 대전시 중구 가수원동에 (주)오대양 회사를 설립해 주거기구와 민속공예품 생산·판매업을 했다. 박순자는 많은 사채를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하던 중, 빚 받으러 온 채권자 이아무개(당시 52세)씨 부부를 직원들이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박순자는 용인 오대양 공장으로 도망쳤다. 박순자는 종업원 80명을 여러 차례 용인 공장으로 오도록 했다. 창고 등에 은신 중이던 49명은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발견돼 가족에게 인계됐다. 박순자와 나머지 31명 등 모두 32명은 1987년 8월29일 오후 3시30분께 용인공장 천장 내에서 집단 변사체로 발견됐다.
오대양 관계자들은 375명으로부터 170억여원의 사채를 쓰고 쫓기고 있었다. 오대양 슬레이트 천장 위로 피신한 그들은 기아와 탈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박순자의 지시를 따라 자살했다. 이 사건이 사회에 던져준 충격에도 불구하고 사망원인이 '집단 자살'로 매듭지어지면서 오대양 변사사건과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형사책임을 질만한 사람들이 서로 자살을 용인한 상태에서 교살됐고 마지막 사람도 자살했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청해진해운의 실제 주인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대대적인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오대양 사건' 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이다.
(정복규 기자)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국병을 진단한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