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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위층 특혜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6/15 [00:34]
국정농단 관련 정유라씨는 2014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와중인 지난해 9월쯤 한 시민에 의해 이 글이 온라인을 타고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글은 삽시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 퍼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글은‘금수저·흙수저’론과 맞물려 국민적 분노를 자극했다.‘촛불 민심’의 도화선이 됐다. 정씨는 실제로 학창 시절 각종 특혜를 받았다. 승마 특기생으로 서울 청담고에 재학하던 시절 수업시간에 출석하지 않고 수행평가에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체육교과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일부 교사는 정씨의 대학 진학에 유리하도록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허위 기록하기도 했다. 학사·출결관리, 성적처리, 수상 등 전방위적인 특혜가 주어졌다. 이화여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15학년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 전형 승마 종목에 지원한 정씨는 규정을 어기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고 면접을 봤다.
그는 전체 면접자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아 합격했다. 입학 이후에는 수업을 빼먹고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학점을 취득하는 특혜가 이어졌다. 최경희 전 총장을 비롯해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등 대학 고위층이 줄줄이 연루됐다.
최씨 등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대한승마협회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은 좌천됐다. 거액의 승마훈련비를 지원하도록 한 것도 그 중심에는 정씨가 있었다. 정씨는 승마 종목 최초의 한국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어릴 적 꿈을 접고 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국민 앞에 섰다.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함축하는 말로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가 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고위층 대부분이 보석과 형ㆍ구속집행정지 등 특별대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포탈과 뇌물수수, 횡령, 불법대선자금수수 등의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고위층 131명 가운데 불과 10% 정도인 19명만이 특별대우 없이 제대로 죄값을 치렀다는 자료도 있다. 2005년의 경우 전체 형사사건 구속률은 87%에 달했지만 이들 131명의 고위층 화이트칼라 범죄자 구속률은 34%에 불과했다.
구속된 45명 중 15명은 보석으로 풀려났고, 11명은 특별사면ㆍ복권과 형ㆍ구속집행정지, 가석방 등으로 풀려났다. 131명 고위층 화이트칼라 범죄자 가운데 정치자금법 위반자 46명의 평균 정치자금 수수액은 62억원이다. 횡령범 17명의 평균 횡령액은 177억원, 조세포탈범 17명의 평균 세금탈루액은 67억원이다.
뇌물수수범 20명의 평균 뇌물수수액은 9억원에 달했다. 고위층 범죄자들이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추징금 및 벌금 액수도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추징금 및 벌금 미납자는 19명이었고, 미납액은 무려 308억원에 달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국민의 80%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는 조사가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연결되어 있다. 재벌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근거로 제시된다.
1990년 이후 대한민국 내의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은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형이 확정된 후 평균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현직에 복귀했다. 2016년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유력 기업인으로부터 억대 뒷돈을 받고 재판을 해준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은 < 지강헌 사건 >에서 비롯됐다.‘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25명 중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한 사건이다.
이들은 9일 동안 서울 시내 이곳저곳으로 도주하다 결국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사살되거나 자살했다. 특히 탈주범들 중 지강헌(당시35세)은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항변했다.
이후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가 남긴‘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지강헌은“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씨는 수십 억 원에 대한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지강헌 등은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과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박탈감과 불평등에 분노한 것이다.
탈주범들이 9일 동안 서울 전역을 종횡무진 누볐다. 이들은 가정집에 숨어들어갔다 빠져나올 때마다 피해자들에게 선량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사건 초기에는 자신을 변명하는 쪽지까지 남김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동정 쪽으로 돌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1988년 10월 16일 탈주범 4명은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6명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자수, 자살, 사살되는 유혈극이 빚었다. 지강헌은 최후의 순간에 비지스의‘홀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고, 침투한 경찰은 그에게 총을 쏘았다. 지강헌은 상습적으로 강도와 절도를 저질러 온 범죄자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또한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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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5 [00:34]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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