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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열애(熱愛) 중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6/19 [00:26]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시인의「그 꽃」이란 시다. 두 달 전쯤, 호주를 배경으로 한 ‘싱글라이더’란 영화에 이 시가 자막에 뜨면서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언덕위의 가장 낮은 곳은 아직도 연둣빛으로 빽빽하다. 봄이 무르익는 4월의 끝자락에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서로 잘생기고 예쁘다고 뽐내는 꽃들의 자기자랑에 주위가 소란스럽다. 연둣빛 비단위에 무지갯빛 꽃들이, 아침이슬에 분단장하고 언제나 나를 기다린다.

교사시절 이야기다. 해마다 새 학기 3월이 되면, 새로운 선생님과 학생들은 일 년을 같이 하기 위해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다. 새 집의 가장(家長)으로 제일 먼저 할 일은 삼십여 명의 가족들을 빨리 파악하는 일이다. 수업시간이면 교탁 위의 좌석배열표를 보고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위해, 책도 읽히고 발표도 시키며 공부를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아이들이 그날 활동한 모습들을 머리에 그리며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개구쟁이나, 모범생들은 첫날부터 내 머리에 입력이 된다. 이렇듯 빠른 시간 안에 아이들의 일거일동을 파악해야 일 년 동안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기에, 내 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들을 그렇게 생활해 왔다.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줄 때면, ‘내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하며 의아해 하는 눈동자와 함께 살갑게 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들풀과 들꽃과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논과 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귀찮은 존재로 만나게 되었다. 그 후 K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극성스런 D교장선생님의 열정에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통로 곳곳에 들풀과 들꽃을 투명한 유리병에 넣고 오가며 관찰하라고 하셨다. 자연시간이면 아이들과 함께 꽃이름, 꽃의 색깔과 줄기, 잎과 뿌리의 모양 등을 설명해 주었다. 중간고사 때면 언제나 한두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과 학교 한 바퀴를 돌면서 설명을 하고나면 번거롭고 힘이 들었으나, 그 덕분에 들풀에 대해 하나둘씩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망초와 개망초, 비름과 개비름, 소리쟁이, 엉겅퀴, 메꽃 등의 모습과 생태(生態) 등이 지금도 생각난다.

금년 봄은 나에게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5분정도 밖으로 나가면 꽃들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하고, 꽃을 검색하여 지난 날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알아내듯 관심을 갖다보니 꽃 친구가 많아졌다. “너는 누구냐?”간밤에 이름도 모르는 세 종류의 꽃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백옥같이 하얀 저는 샤스타데이지고요. 노란 얼굴을 한 저희들은 괭이밥과 돌 양지꽃이에요.”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주위는 온통 광대나물, 코딱지나물, 갈퀴나물, 미국쥐손이풀, 벼룩이 자리, 애기똥풀 등이 모여 풀꽃세상을 이룬다. 요즘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며 녹색 초원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곁에는 땅바닥에 바싹 쪼그리고 앉아있는 씀바귀와 민들레가 노란 모자를 쓴 채 앙증스럽게 피어있고, 멀리서는 창포가 우리를 지켜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모두가 평소 무심히 지나친 꽃들이 아니던가. 그 동안 귀찮은 잡초로만 생각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꽃들이다. 비록 하찮은 들꽃이지만, 이들도 저마다의 이름이 있고, 모진 겨울도 잘 견뎌 이처럼 예쁜 꽃들을 피운다.

“나쁘다고 하여 베어버리려 하면 풀 아닌 게 없고, 좋다고 하여 취하려고 들여다보니 꽃 아닌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관심을 갖지 않고 하찮게 보면 모든 게 잡초로 보이지만,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잡초도 꽃으로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 무엇이든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고자 하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기다려주고 자세히 알아간다면 좋은 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들을 보기 위해 이제는 좌우도 두루 살피며 살아야겠다. 멋지고 살맛나는 세상을 찾아 오늘도 이름 모를 꽃들을 향해 카메라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강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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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9 [00:2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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