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죽음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6/22 [00:24]

김정남의 죽음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6/22 [00:24]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일성 왕조의 장손으로 태어난 김정남(金正男)은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독살됐다. 김정은은 겨우 27세의 철부지로 독재 권력을 승계한 후 고모부 장성택을 총살했다. 그리고 해외로 나가 3대 세습을 비판해 온 이복형마저 극약 처방으로 독살했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69세로 사망하기 전 아들 셋 가운데 막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바 있다. 실제로 한때 장남 김정남은 후계자로 지명되어 황태자로 군림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남은 자주 해외로 돌아다니며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자유세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는 독재 권력의 속성상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남은 김정일이 유부녀이자 5년 연상의 배우 성혜림과 극비로 동거하다 낳은 장남이다.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은 김정남을 가리켜‘귀여운 백두혈통 적장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3대 후계자 1순위로 꼽힐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999년 후계자로 지명됐다는 보도가 나온 후부터 아버지 김정일과 사소한 의견 충돌이 생겼다. 이 때문에 베이징 등지로 자주 탈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더구나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 하려다 추방된 사실이 언론에 크게 터졌다.
결국 후계자 반열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훨씬 앞서 김정남은 모스크바와 스위스 유학을 다녀와서“호텔에서 술 마시고 마구 소리 질러 아버지 김정일한테 야단도 맞았다”는 증언들이 있다. 다만 이때는 아직 20대의 반항기였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김정남은 해외에서 보고 듣고 익힌 나름대로의 안목이 있었다. 부친의 절대권력 놀음이 비정상적이라고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각종 언행 속에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이 섞여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김정남은 평양을 떠나 베이징에 거처를 정해 두고 북한과는 다른 중국의 개혁 개방풍토를 마음대로 즐겼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절대군주 체제하의 황태자로서는 스스로 자격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일이 사망하여 장례식을 치른 후 김정남이 도쿄신문 기자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인터뷰 기사를 담은‘김정남의 육성고백’이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이 책의 부제는‘방탕아인가, 은둔의 황태자인가’이다.
평양을 떠나 밖으로 나와 자유인처럼 행동해온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김정남은 이 책에서“나는 지도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 말로 동생과 싸울 일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부친이 생전에“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3대 세습에 대해서는“봉건시대의 잔재로 사회주의 정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딱 부러지게 지적했다. 그러면서“동생이 잘 되기를 희망하여 해외에서 나마 돕고 싶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진심일 수도 있고 신변안전을 위한 의도적인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정남은 평양을 탈출하여 베이징과 동남아로 유랑하는 과정에서 무려 3차례나 암살 위험을 겪었다. 결국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줌의 재가 되어 평양으로 압송되고 말았다. 김정은은 김정남이 해외에서 이런저런 발언으로 성가시게 구는 꼴을 더 이상 못 보았을 것이다.
한편 김정일의 여성편력은 화려하다. 공식으로 확인된 부인은 4명으로 아들 셋, 딸 셋 등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 부인 홍일천은 딸 김혜경, 둘째부인 성혜림은 김정남, 셋째 부인 김영숙은 김설송, 넷째 부인 고영희는 김정철과 김정은 그리고 딸 김여정 등이다.
김정은은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이 낳은 자식이다. 남한 지주계급 출신인 성혜림 보다도 하위 성분이다. 출신 성분을 가장 중시해온 김일성 왕조 체제의 정통성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북한은 백두혈통을 최고로 내세운다.
그러나 독재체제를 위해서는 백두혈통이라 해도 씨를 말리는 식의 비정한 숙청방식을 보여 왔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도 위아래 곁가지 등을 과감히 쳐내면서 1인 독재 권력을 확립했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독살한 것도 바로 이 같은 독재 권력의 기본속성에 따른 결과다.
피살된 김정남은 첫 부인 신정희와 아들 김금솔, 둘째 부인 이혜경과 아들 김한솔을 두었다. 김한솔은 평양에서 태어날 때는 장손의 왕통을 타고 났다. 그러나 아버지 김정남의 영향 때문에 일찍부터 해외로 나돌았고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했다.
평양 체제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살아와 평양 귀환의 가능성은 전무하다. 아버지가 암살되어 시신을 인도할 유족이 없다는데도 끝내 말레이시아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신변의 안전문제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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