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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6/13 [00:23]

천안김씨(天安金氏) 

 시조 김덕린(金德麟)은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한다. 용궁을 세거지로 하였으며 김세중의 아들이다. 영조 9년 식년문과로 급제, 직강을 지냈고 천안태수(大安太守)를 역임했다는 문헌도 전한다. 용궁의 옛 명칭이 축산(竺山)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축산김씨의 시조로 되어 잇는 김덕린과는 동일인으로 보인다. 좌우위력장군(左右衛力將軍) 김윤명(金允明)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주요 인물로는 김광정(金光鼎)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801년(순조1) 식년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인구는 1985년 6,491명, 2000년 1,494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4,99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86명, 부산 23명, 대구 10명, 인천 81명, 광주 57명, 대전 30명, 울산 6명, 경기 475명, 강원 25명, 충북 25명, 충남 98명, 전북 75명, 전남 49명, 경북 25명, 경남 26명, 제주 3명이다.



철원김씨(鐵原金氏)

 시조 김응하(金應河)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구 안동김씨(安東金氏) 중시조 김방경(金方慶)의 12세손이다. 본래 철원 출신으로 조선조 광해군 10년 건주위를 치기 위해 명나라의 요청이 있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616년 40세의 나이로 전사하자 명나라의 신종은 요동백(遼東伯)에 봉했고, 조선에서는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철원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1930년 강원도 정선군 북면 숙암리에 25호, 평북 벽동군 벽동면 하서리에 15호가 살았다.

 인구는 1985년 360명, 2000년 392명이다. 15년 만에 32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84명, 부산 25명, 대구 14명, 인천 41명, 광주 0명, 대전 11명, 울산 3명, 경기 89명, 강원 22명, 충북 13명, 충남 20명, 전북 11명, 전남 4명, 경북 29명, 경남 26명, 제주 0명이다.



청산김씨(靑山金氏) 

 시조 김치제(金致濟)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조선조 예종 1년(146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선교량(宣敎郞)에 이르렀다. 그 뒤 후손들이 청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한편 김사한(金士翰)의 후손 또는 나주김씨(羅州金氏)와 동원(同源)으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 청산(靑山)은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청산면의 지명이다. 1895년 청산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옥천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3명이다. 무과 2명, 음양과 1명이다. 인구는 1985년 441명, 2000년 810명이다. 15년 만에 369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07명, 부산 59명, 대구 18명, 인천 47명, 광주 24명, 대전 26명, 울산 22명, 경기 208명, 강원 17명, 충북 19명, 충남 21명, 전북 40명, 전남 19명, 경북 42명, 경남 38명, 제주 3명이다.



청송김씨(靑松金氏) 

 시조 김정기(金正己)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조 평장사를 지낸 김태서의 6세손이다. 김정기는 조선 태조 때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했다. 그러나 태조에게 여러 차례 직간(直諫)을 하다 중산(仲山)으로 유배되었다. 중산은 지금의 정평(定平)이다. 유배지인 중산부 세류동 세양리에서 죽고 아들 옥형과 손자인 보중도 그곳에서 일생을 마쳐 3대가 홍사동에 묻혔다. 후손들이 김정기의 입북 전 세거지인 청송을 본관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의 아들 김옥형(金玉衡)은 통훈대부로 사헌부감찰을 역임했고, 손자 김보중(金寶重)은 통덕랑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 김보중의 맏아들 김치성은 통정대부로 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장곡면으로 이주하였다. 차남 김이성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한편 김치성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김계인은 오위(五衛)의 부사직을 지냈으며, 차남 김계의와 막내 김계지는 통덕랑에 올랐다. 그외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우다가 장열하게 순절한 김승빈이 유명했고, 김명종은 부호군을 역임하여 사복시정을 지낸 김대춘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본관 청송(靑松)은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의 옛 지명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는 전혀 다른 지명이다. 고려 초에 청송현이라 고쳤다가 1018년 풍주군(豊州郡)에 예속시켰다. 조선조 태종 때 청송과 이웃 가화(嘉禾)를 합하여 송화군(松禾郡)으로 개명하였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4명이다. 문과 1명, 사마시 3명이다. 인구는 1985년 1,117명, 2000년 1,641명이다. 15년 만에 524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18명, 부산 115명, 대구 162명, 인천 105명, 광주 11명, 대전 17명, 울산 35명, 경기 433명, 강원 59명, 충북 25명, 충남 31명, 전북 26명, 전남 20명, 경북 119명, 경남 62명, 제주 3명이다.



청양김씨(靑陽金氏) 

 청양김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감무공계(監務公系)와 진완계(振玩系) 등 두 계(系)가 있다. 감무공계 시조는 김침(金沉)이다. 처음 이름은 김운(金雲)으로 조선조에 감무를 지냈다. 진완계의 시조 김진완(金振玩) 선계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한다. 그의 자손 김대성(金大聲)이 조선 경종 때 하동에서 곡성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본관을 청양(靑陽)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연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30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30가구가 살았다. 본관 청양은 충청남도 청양군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370명, 2000년 871명이다. 15년 만에 501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60명, 부산 17명, 대구 9명, 인천 82명, 광주 31명, 대전 32명, 울산 9명, 경기 215명, 강원 53명, 충북 28명, 충남 50명, 전북 24명, 전남 38명, 경북 12명, 경남 8명, 제주 3명이다.



초계김씨(草溪金氏) 

 시조 김수(金須수)는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의 14세손이며 금오위대장군,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김경량(金鏡亮)의 아들이다. 김수는 문과에 급제하여 어사 등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또 고려 원종 12년 진도에서 패한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가자 관군을 이끌고 제주를 지켰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는 사실이 문헌에 전해온다. 그러나 본관과 시조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이 광산에서 분관하여 그를 시조로, 초계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온 듯하다. 본관 초계(草溪)는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189명, 2000년 283명이다. 15년 만에 94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5명, 부산 17명, 대구 6명, 인천 11명, 광주 2명, 대전 12명, 울산 6명, 경기 72명, 강원 8명, 충북 4명, 충남 33명, 전북 8명, 전남 3명, 경북 2명, 경남 24명, 제주 0명이다.



춘양김씨(春陽金氏) 

 시조 김이(金怡,1265~1327)는 고려 충열왕 때 판도정랑, 개성부소윤 등을 역임했다. 충숙왕이 즉위하자 지밀직사사를 거쳐 첨의평리에 올랐고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다. 한편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일선군 김추의 11세손이며 대장군 김윤성의 아들로 전법총랑, 전객령을 역임한 김인궤(金仁軌)를 시조로 전하기도 한다. 김인궤를 경산김씨 시조로 삼기도 한다. 김이(金怡)가 경산군에 봉해졌으므로 그를 경산김씨 시조로 전하기도 한다. 춘양(春陽)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지명이다. 임진왜란 후 선원각(璿源閣)과 실록(實錄)를 보관한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설치됐다.

 인구는 1985년 359명, 2000년 92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26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7명, 부산 1명, 대구 7명, 인천 7명, 광주 0명, 대전 0명, 울산 1명, 경기 18명, 강원 6명, 충북 2명, 충남 4명, 전북 4명, 전남 7명, 경북 6명, 경남 2명, 제주 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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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3 [00:2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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