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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6/20 [00:26]

칠원김씨(漆原金氏) 

 시조 김영철(金永哲)은 신라 종성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그 뒤 후손들이 칠원에 살면서 그를 시조로, 칠원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항렬자는 16世 흥(興), 17世 진(鎭), 18世 철(徹), 19世 백(栢), 20世 열(烈), 21世 규(圭), 22世 용(鏞), 23世 준(準)이다.  본관 칠원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지명이다. 1930년 전북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에 23호가 살았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4명이다. 모두 의과이다. 인구는 1985년 209명, 2000년 83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26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5명, 부산 7명, 대구 6명, 인천 2명, 광주 1명, 대전 3명, 울산 1명, 경기 19명, 강원 3명, 충북 2명, 충남 2명, 전북 1명, 전남 1명, 경북 3명, 경남 7명, 제주 0명이다.

태안김씨(泰安金氏) 

 시조 김복흥(金復興)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이다. 그는 태안군 김언충(金彦忠)의 후손 또는 부령김씨(扶寧金氏)와 동원(同源)으로 전한다.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태안으로 하였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김몽룡(金夢龍)이 1637년(인조 15)에 별시 병과에 합격했다.

 본관 태안(泰安)은 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해있는 지명이다. 1914년 해미군(海美郡)과 함께 서선군(瑞山郡)에 통합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13명에 이른다. 무과 1명, 역과 11명, 음양과 1명이다. 태안김씨는 인구가 전혀 없는 처지다. 1985년 인구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에도 총 2가구 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천 3명, 경기 2명이다. 부령김씨로 합본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태원김씨(太原金氏)

시조 김학증(金學曾)은 중국 명나라 신종 때 복건성 도어사(都御史)를 지냈고 한림태원백(翰林太原伯)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김평(金坪)이 한림시강을 지낸 뒤 조선 인조 4년에 망명, 김해 대종산 아래에 정착했다. 후손들이 태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항렬자는 11世 상(相) 영(榮), 12世 환(煥) 형(炯), 13世 규(圭) 재(在), 14世 종(鍾) 현(鉉), 15世 영(泳) 택(澤), 16世 동(東) 목(穆), 17世 병(炳) 희(熙), 18世 기(基) 순(珣)이다.

 본관 태원은 충청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940년 충주로 개칭되었다. 인구는 1985년 2,192명, 2000년 2,557명이다. 15년 만에 365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97명, 부산 773명, 대구 62명, 인천 71명, 광주 0명, 대전 34명, 울산 82명, 경기 269명, 강원 19명, 충북 6명, 충남 23명, 전북 29명, 전남 5명, 경북 61명, 경남 817명, 제주 9명이다.

토산김씨(兎山金氏)

 시조 김부윤(金富允)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 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都僉議 贊成事)를 지냈다. 처음 이름은 용성(用成)이었다. 원래 토산김씨였는데, 평남 성천군 통선에 세거하며 월성김씨로 본관을 바꾸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경주김씨(慶州金氏)에서 분파된 월성김씨(月城金氏)에서 거꾸로 직계 분적됐다는 설도 있다. 토산(兎山)은 황해북도 토산군의 지명이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토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인구는 1985년 80명, 2000년 168명이다. 15년 만에 88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2명, 부산 6명, 대구 2명, 인천 9명, 광주 7명, 대전 18명, 울산 0명, 경기 39명, 강원 1명, 충북 2명, 충남 32명, 전북 0명, 전남 1명, 경북 1명, 경남 8명, 제주 0명이다.

통진김씨(通津金氏) 

 시조 김익지(金益之)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시대 상장군이다. 그 뒤 후손들이 본관을 통진으로 하였다. 시조 김익지의 손자 대에서 안경파(安敬派)와 자앙파(子盎派) 등이  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익지를 시조로, 통진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통진(通津)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通津邑)의 지명이다. 김포시 통진읍의 중심지인 마송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다. 병인양요의 전승지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4명이다. 모두 무과이다. 그러나 지금은 후손들이 별로 없다. 실제로 1985년 인구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도 총 7가구 2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3명, 인천 7명, 경기 5명, 강원 5명, 충남 1명, 경북 1명 등이다.

통천김씨(通川金氏)

 시조 김교(金較)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손자로 고려 광종 때 통천군(通川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통주(通州,통천의 옛 지명)를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유적은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봉곡에, 사당은 통천군 통천읍 감당면 내동에 있다.

 시조의 아버지는 경순왕의 첫째아들 마의태자다. 강원도 인제에서 신라 국권 회복 운동을 하다가 고려군에 패배한 이후에 금강산에 입산하였다. 이때 차남 김교는 인제에 남겨지게 되어 이후 고려 광종 때 공을 세웠다. 마의태자 망배단과 중시조 김원등(金遠登)의 단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대종산에 모셔져 있다.

 시조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시조 통천군(通川君) 김교(金較), 평장공 김이청(金以淸), 첨의정승공 김위(金渭) 3대는 별책으로 하고, 고려 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文翰學士)에 오른 김원등(金遠登)을 중시조로 하여 계대를 잇고 있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동국이상국집》연보(1168년)에 금양김씨(지금의 통천김씨)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10세 김여련(金汝鍊)이 선조를 따라 호종하다 전사하고, 정유재란 당시 완주군 소양 일대에 거주하던 군수공파 일족들이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몰한다.

 평안남도 강서군 봉명서원에 배향된 김응의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다 순절하는 등 역사적 시련이 많았다. 그러면서 후손들이 많이 흩어지고, 행방불명이 되어 오늘날 인구는 매우 적다. 통천김씨에서 금화김씨(金化金氏)가 직계 분적됐다. 본관 통천은 강원도 통천군의 지명이다. 주요파는 진산공파, 군수공파, 전직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7명이다. 인구는 1985년 4,128명, 2000년 4,981명이다. 15년 만에 853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602명, 부산 96명, 대구 27명, 인천 366명, 광주 22명, 대전 285명, 울산 43명, 경기 1,073명, 강원 59명, 충북 40명, 충남 629명, 전북 566명, 전남 33명, 경북 55명, 경남 75명, 제주 10명이다.

파주김씨(坡州金氏) 

 시조 김영긍(金永兢)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이조참의를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영긍을 시조로 하고, 파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파평김씨(坡平金氏)와 동원(同源)으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 파주는 경기도 파주시 지명이다. 옛 파주목(坡州牧)과 교하군(交河郡)이 합해졌다. 757년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개칭하여 내소(來蘇,양주)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 파주현(坡平縣)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다.

 인구는 1985년 322명, 2000년 533명이다. 15년 만에 211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94명, 부산 27명, 대구 12명, 인천 37명, 광주 3명, 대전 12명, 울산 8명, 경기 166명, 강원 13명, 충북 18명, 충남 11명, 전북 11명, 전남 7명, 경북 7명, 경남 6명, 제주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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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0 [00:2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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