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성씨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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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김씨,평산김씨,평양김씨,평창김씨,평택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6/27 [00:28]

파평김씨(坡平金氏) 

 시조 김장수(金長壽)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상장군이 되고 1363년 고려 공민왕 13년 김용(金鏞)의 난 때 순국했다. 흐에 일등공신으로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은 경기도 파주시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파평김씨, 파평윤씨 등이 있다.

 5세손 김효신은 단종조에 등과하여 승문원정자, 판교,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고, 수안주목사를 제수받았다. 성종조에는 6신(臣)의 복위를 상소하다가 송화현에 좌천되기도 하였다. 6세손 김확, 김석, 김돈은 모두 김효신의 아들로서 참판공파, 직장공파, 장사랑공파의 파조가 된다.

 이중 김확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연산군 4년 울산에 유배되었다. 중종조에 사면되어 후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선조 때 자헌대부 예조참판에 증작되었다. 김석은 장사랑 충순위 상서원 직장을 지냈다.

 항렬자는 23世 현(鉉), 24世 영(泳), 25世 모(模), 26世 찬(燦), 27世 기(基), 28世 종(鍾), 29世 원(源), 30世 상(相), 31世 엽(燁), 32世 규(奎), 33世 진(鎭)이다. 주요파는 인재공파, 동향촌파, 평양파, 장촌파, 오평파, 곡촌파, 청산파, 검단파, 가평파, 은동파, 장사랑공파 등이다. 1930년대에 황해도 옹진군과 평남 평양시 평천리에 주로 살았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13명이다. 인구는 1985년 2,112명, 2000년 1,681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431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97명, 부산 100명, 대구 40명, 인천 245명, 광주 20명, 대전 49명, 울산 16명, 경기 411명, 강원 46명, 충북 31명, 충남 58명, 전북 45명, 전남 25명, 경북 29명, 경남 46명, 제주 23명이다.

평산김씨(平山金氏) 

 시조 김승무(金承茂)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의 14세손이며, 평장사 김인경(金仁鏡)의 손자이다. 김궤(金軌)의 아들이라는 자료도 있다. 김승무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사한(史翰)을 거쳐 시어사(侍御史)에 이르렀으며, 황해도 평산에 세거했다. 상계(上系)를 고증할 문헌이 없어 중간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6.25사변 때 남하한 후손 김영훈(영훈학원 설립자)이 쓴 < 신라김씨2천년사 > 발문에 의하면 후손들이 평북 운산군 운산면에 정착 세거하며 번창했다. 평북 운산, 의주 그리고 평남  강서, 함북 무산 일대에 흩어져 살았다. 그러나 동란 때 남하하면서 족보가 유실되어 중간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족보를 두고 월남한 후손들이 족보 재발간을 위해 옛 족보를 백방으로 찾고 있다.

 한편 발문에 경주김씨 분파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후손들이 경주에서 분적하여 시조의 거주지인 평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1930년에 서울에 약 50호를 비롯 충남 공주 30호, 평북 운산군 운산면 조양동 500호, 평북 운산군 동신면 200호, 평북 의주군 300호, 평남 강서군 200호, 함북 무산군 동면 강산동 100호, 함북 문산군 동면 풍산동 60여호가 살았다. 본관 평산은 황해도에 위치한 지명이며 평주(平州)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8명이다. 문과 1명, 무과 4명, 사마시 2명, 의과 1명이다. 인구는 1985년 1,213명, 2000년 1,591명이다. 15년 만에 378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92명, 부산 89명, 대구 29명, 인천 132명, 광주 19명, 대전 35명, 울산 17명, 경기 413명, 강원 82명, 충북 80명, 충남 69명, 전북 23명, 전남 24명, 경북 45명, 경남 39명, 제주 3명이다.

평양김씨(平壤金氏)

 시조 김운(金運)은 고려 때 사공(司空)으로 신녕공(神寜公)에 추봉됐다.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28세손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셋째 아들인 김해군 김렴의 손자다. 고려 말 향공진사(鄕貢進士)로 있으면서 큰 공을 세운 김대진(金大振)이 평양군에 봉해지면서 그를 1세로 삼았다.

 평양김씨의 중흥조는 6세손인 부사공 김환(金環)으로 호는 여하(廬遐)이다.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 안변부사 등을 역임했다. 안변부사를 내놓고 돌아오던 중 평강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에 들어 세거지의 터를 잡았다. 그 뒤 평양김씨는 평강과 철원 등지에서 수백 년 간을 살아왔다.

 김환의 큰 아들 김준걸은 통훈대부 안주교수였고, 그 아들 김언세는 승사랑으로 지릉참봉을 지냈다. 김환의 두 아들 뒤에 4파로 갈렸으나 모두 평강과 철원 지역인 유정, 문봉, 종광, 광동 등에서 번성했다. 1930년 철원군 어운면 유정리에 20가구, 평강군 서면 문봉리에 1백15가구 등이 살았다.

 항일 독립운동가 및 대한민국 육군 중령이었던 김병원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 본래 평양김씨였으나 8·15 광복 이후 친고모의 사촌 시아주버님인 평양장씨 문중 장옥두(張沃斗)가 후사 없이 병사하면서 양자가 되었다. 그래서 장씨로 바뀌면서 장철부라가 되었다. 농구 선수이자 여성 농구 코치 김은숙도 후손이다.

 주요파는 유정파, 문봉파, 종광파, 광동파 등이다. 본관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였으며, 고려 태조 때는 서경으로 개칭하여 개경에 못지않게 중요시하였다. 조선 때는 평양부라 칭하였고, 8.15 광복 후 줄곧 북한의 수도가 되었다. 인구는 1985년 991명, 2000년 875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16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28명, 부산 15명, 대구 7명, 인천 51명, 광주 4명, 대전 16명, 울산 7명, 경기 350명, 강원 109명, 충북 25명, 충남 15명, 전북 4명, 전남 7명, 경북 14명, 경남 20명, 제주 3명이다.

평창김씨(平昌金氏)

 시조 김명응(金鳴應)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으로, 또한 그의 7세손 김세우(金世羽)의 후손으로 전해온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명응을 시조로, 평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창(平昌)은 강원도 평창군의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욱오현(郁烏縣-일명 于烏縣)이었다가 신라 영역이 되어 경순왕 때에 백오현(白烏縣)이라 개칭했다. 평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평창김씨와 평창이씨가 있다.

 인구는 1985년 149명, 2000년 415명이다. 15년 만에 26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95명, 부산 11명, 대구 4명, 인천 37명, 광주 0명, 대전 8명, 울산 5명, 경기 113명, 강원 80명, 충북 20명, 충남 12명, 전북 9명, 전남 3명, 경북 14명, 경남 4명, 제주 0명이다.

평택김씨(平澤金氏) 

 시조 김완고(金完考)는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할 뿐이다. 그는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완고(金完考)를 시조로, 평택(平澤)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평택(平澤)은 경기도 평택시의 지명이다. 평택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평택김씨(平澤金氏), 평택임씨(平澤林氏), 평택박씨(平澤朴氏) 등이 있다.

 인구는 1985년 225명, 2000년 440명이다. 15년 만에 215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35명, 부산 10명, 대구 15명, 인천 29명, 광주 12명, 대전 8명, 울산 1명, 경기 139명, 강원 11명, 충북 7명, 충남 24명, 전북 10명, 전남 8명, 경북 17명, 경남 12명, 제주 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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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7 [00:2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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