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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김씨/풍기김씨/풍덕김씨/풍천김씨/하음김씨/한남김씨/한산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04 [00:22]
△평해김씨(平海金氏)
 시조 김숙흥(金淑興)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조에 공부상서를 지내고 평해군에 봉해졌는데, 그 뒤로 후손들이 평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1930년 국세조사에 함경북도 북청군 니곡면 초리에 30호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김맹절(金孟節)을 시조로 삼는 문헌도 전한다. 그는 김준례(金遵禮)의 아들로 1466년(세조 12년) 강원도 고성 별시에 삼등으로 급제하고 판관을 지냈다고 한다. 본관 평해는 강원도 울진군 평해면의 지명이다.
 인구는 1985년 467명, 2000년 192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275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51명, 부산 9명, 대구 12명, 인천 7명, 광주 0명, 대전 4명, 울산 5명, 경기 42명, 강원 13명, 충북 7명, 충남 8명, 전북 3명, 전남 0명, 경북 30명, 경남 1명, 제주 0명이다.

△풍기김씨(豊基金氏)
 시조 김승원(金崇元)은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金文迪)의 15대손으로 벼슬이 가선대부, 한성부우윤,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르렀다. 그의 선대는 풍기에 세거하였던 호족인데, 후손들이 벽동으로 이거했다. 그곳에 정착하면서 전 주거지 풍기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안북도 벽동군 가별면 별하동에 묘소가 있다. 1930년 국세 조사 당시 평안북도 벽동군 벽동면 상평동과 음평동, 벽동군 성남면, 평안북도 초산군 판면 판하동, 평안북도 창성군 청산면 용전동 등에 약 100호가 살았다.
 인구는 1985년 644명, 2000년 340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304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95명, 부산 28명, 대구 12명, 인천 10명, 광주 0명, 대전 13명, 울산 7명, 경기 99명, 강원 30명, 충북 12명, 충남 13명, 전북 1명, 전남 1명, 경북 6명, 경남 12명, 제주 1명이다.

△풍덕김씨(豊德金氏)
 시조 김자앙(金子盎)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조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선공서령, 보문각대제학을 지내고 도강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풍덕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평안남도 평원군 용호면 연교리 30가구, 평원군 해소면 승정리 16가구,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도내리 16가구, 길주군 길성면 홍수리 34가구 등이 살았다.
 인구는 1985년 151명, 2000년 74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7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1명, 부산 3명, 대구 2명, 인천 15명, 광주 1명, 대전 0명, 울산 3명, 경기 30명, 강원 1명, 충북 1명, 충남 0명, 전북 0명, 전남 5명, 경북 2명, 경남 0명, 제주 0명이다.

△풍천김씨(豊川金氏)
 풍천김씨는 영유김씨(永柔金氏)라고도 한다. 시조 김영주(金英柱)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이라고 전할 뿐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영유에 세거하면서 선조의 전 세거지 풍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풍천은 황해도 송화의 속지이며, 영유는 평안남도 평원의 옛 이름이다. 영유김씨 시조는 김영철, 풍천김씨 시조는 조선조 영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흥해군수를 지낸 김일헌(金鎰憲)으로 삼는 문헌도 있다. 그러나 동원(同源)으로 짐작된다.
 김영철은 1618년(광해군10) 명나라가 원병을 청해 왔을 때 좌영장 김응하의 선봉으로 출전하여 포로가 되었다. 1625년(인조3) 탈출하여 명나라 등주에서 살다가 1631년 진가사의 선편으로 귀국했다. 1640년(인조18) 임경업 휘하에서 수군 5천명과 함께 참전했으며 1658년 자모산성을 지킬 군사를 모집할 때 60세의 고령으로 뽑혀 20여 년 동안 성을 지켰다.
 김응향은 1660년(현종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사를, 김익헌은 1726년(영조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군수를 각각 지냈다. 김우석(金禹錫)은 병자호란 때 자모산성(慈母山城)에 들어갔다가 인조가 굴욕적인 강화(江華)를 하자 척화(斥和)의 시를 성문에 써 붙이고 통곡했다. 청나라 장군이 목을 치려하자 꿈적도 않고 앉아 있었으며 열살된 아들 김응원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함께 우니 감동하여 죽이지 못했다. 인조는 정표(旌表)를 내리고, 아들은 가장 어린 나이로 효의 정표를 받았다. 현대 인물로는 남매인 김옥길 전 문교부 장관,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했다. 인구는 1985년 1,923명, 2000년 2,292명이다. 15년 만에 369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86명, 부산 151명, 대구 51명, 인천 191명, 광주 25명, 대전 92명, 울산 29명, 경기 545명, 강원 91명, 충북 34명, 충남 87명, 전북 37명, 전남 15명, 경북 84명, 경남 51명, 제주 23명이다.

△하음김씨(河陰金氏)
 시조 김효일(金孝逸)은 신라 대안군 김은열의 후손인 평장사 김태서의 증손으로 하음부원군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음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한편 김효일의 6대조로 태자소보, 공부시랑을 지낸 김경보를, 또는 병부시랑 김성(金晟-강화김씨 시조)을, 하음에서 세거한 사족(士族)으로 벼슬이 공조판서에 이른 김희정(金希正)을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김희정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며 하음에서 살았다. 본관 하음은 오늘날 강화이다.
 인구는 1985년 620명, 2000년 503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1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67명, 부산 31명, 대구 22명, 인천 51명, 광주 6명, 대전 36명, 울산 6명, 경기 79명, 강원 37명, 충북 8명, 충남 14명, 전북 8명, 전남 2명, 경북 10명, 경남 26명, 제주 0명이다.

△한남김씨(漢南金氏)
 시조 김록연(金祿延)은 도안령사(道按寧使)를 지냈고 원종 5년에는 예빈경(禮賓卿)으로 몽고에 다녀왔으며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에 올랐다. 그 뒤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한남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한남은 현재 수원을 고려 성종 때에 부르던 별호(別號)이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분적(分籍)하여 을 시조로, 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인구는 1985년 7명, 2000년 71명이다. 15년 만에 64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4명, 부산 9명, 대구 4명, 인천 3명, 광주 2명, 대전 3명, 울산 1명, 경기 11명, 강원 3명, 충북 3명, 충남 3명, 전북 1명, 전남 6명, 경북 5명, 경남 3명, 제주 0명이다.

△한산김씨(韓山金氏) 
 문헌이 없어 시조 및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1930년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함남 덕원군 풍하면 석천리에 30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金汝立(김여립) (1607 丁未生) : 武科 仁祖15年(1637) 別試 丙科이다. 무과 급제자이다. 본관 한산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지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한산김씨는 1985年에는 총 156가구, 472명, 2000년에는 총 138가구 50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5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20명, 부산 47명, 대구 19명, 인천 40명, 광주 12명, 대전 25명, 울산 8명, 경기 94명, 강원 14명, 충북 26명, 충남 36명, 전북 32명, 전남 10명, 경북 9명, 경남 13명, 제주 2명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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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4 [00:2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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