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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김씨/함안김씨/함양김씨/함평김씨/함흥김씨/합천김씨/해남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11 [00:48]
△함녕김씨(咸寧金氏)
 함녕김씨는 함창김씨(咸昌金氏)와 뿌리가 같으며 두 가지로 부른다. 처음에 본관을 함창으로 삼은 것은 고령가야국이 함창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 뒤 고려 광종 때 함령으로 고쳤고, 다시 조선 태종 때 함창으로 바꿨기 때문에 같은 본관이다. 시조 고령가야왕은 신라 유리왕 18년 김수로왕과 함께 김해 구지봉 금합에서 태어났다하여 김씨가 되었고 가락 등 9간(干) 등의 추대로 고령국왕이 되었다. 한편 신라종성으로 좌찬성을 지낸 김예(金銳)를 시조로 하기도 한지만 문헌이 없기 때문에 고증할 수 없다.
 인구는 1985년 4,586명, 2000년 4,579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7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085명, 부산 206명, 대구 469명, 인천 211명, 광주 14명, 대전 92명, 울산 67명, 경기 745명, 강원 92명, 충북 96명, 충남 36명, 전북 18명, 전남 11명, 경북 1349명, 경남 76명, 제주 12명이다.
△함안김씨(咸安金氏)
 시조 김태백(金太白)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함안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한편 마의태자(麻衣太子) 김일(金鎰)의 후손 또는 광산김씨(光山金氏)의 분파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 함안은 경상북도 함안군의 지명이다. 함안 본관 성씨로 함안이씨, 함안윤씨, 함안조씨, 함안주씨 등이 있다.
 인구는 1985년 436명, 2000년 888명이다. 15년 만에 452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93명, 부산 186명, 대구 46명, 인천 15명, 광주 8명, 대전 87명, 울산 17명, 경기 74명, 강원 12명, 충북 27명, 충남 19명, 전북 16명, 전남 15명, 경북 52명, 경남 219명, 제주 2명이다.

△함양김씨(咸陽金氏)
 시조 김준덕(金俊德)은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김준덕이 고려 때 태사(太師)를 지냈고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함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함양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명이다. 함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함양이씨, 함양박씨, 함양오씨, 함양여씨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4명이다. 모두 무과이다. 인구는 1985년 1,479명, 2000년 2,766명이다. 15년 만에 1,287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97명, 부산 267명, 대구 211명, 인천 138명, 광주 34명, 대전 46명, 울산 48명, 경기 544명, 강원 102명, 충북 96명, 충남 60명, 전북 64명, 전남 16명, 경북 234명, 경남 106명, 제주 3명이다.


△함평김씨(咸平金氏)
 시조 김구정(金九鼎)은 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金需)의 22세손으로 함평군(咸平君)에 봉해졌다. 그 뒤 상산김씨에서 분적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2세손인 동정공(同定公) 김철명(金哲明)을, 신라 45대 신무왕의 후손으로 전해오는 김취실(金就實)을, 또는 마의태자의 후손을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1930년 평남 용강군 다미면 동전리에 50호, 평남 대동군 자족면 남경리(새방성)에 20호가 살았다. 함평은 전남 함평군의 지명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3명이다. 인구는 1985년 943명, 2000년 1,612명이다. 15년 만에 669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78명, 부산 54명, 대구 44명, 인천 104명, 광주 124명, 대전 60명, 울산 15명, 경기 409명, 강원 33명, 충북 20명, 충남 77명, 전북 51명, 전남 48명, 경북 57명, 경남 34명, 제주 4명이다.


△함흥김씨(咸興金氏)
 시조 김렴(金濂)은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조선 정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승부윤(敬承府尹)을 지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함흥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기지(金驥趾)는 조선조 연산군 7년 문과에 급제, 군수, 사정(司正)을 지냈다. 함흥은 함경남도 함흥시의 지명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인구는 1985년 131명, 2000년 187명이다. 15년 만에 5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5명, 부산 22명, 대구 15명, 인천 9명, 광주 2명, 대전 8명, 울산 3명, 경기 35명, 강원 8명, 충북 10명, 충남 3명, 전북 3명, 전남 3명, 경북 14명, 경남 6명, 제주 1명이다.


△합천김씨(陜川金氏)
 시조 김현덕(金玄德)은 신라의 종성으로 대사간을 지낸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합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합천은 경상남도 합천군의 지명이다. 합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합천김씨(陜川金氏)를 비롯 합천이씨(陜川李氏), 합천마씨(陜川麻氏) 등이 있다.
 인구는 1985년 924명, 2000년 1,508명이다. 15년 만에 584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44명, 부산 284명, 대구 194명, 인천 61명, 광주 7명, 대전 69명, 울산 47명, 경기 197명, 강원 23명, 충북 44명, 충남 48명, 전북 35명, 전남 10명, 경북 92명, 경남 150명, 제주 3명이다.


△해남김씨(海南金氏)
 시조 김인(金忍)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의 19세손이며 조선 태종 때의 원종공신이다. 그가 전라남도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해남으로 했다. 시조가 해남을 거쳐 전라남도 나주의 마산 구업리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와 있다.
 이를 미루어 시조 김인의 선계는 나주 일원에 세거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본관 해남은 오늘날 전라남도 해남군의 지명이다. 해남김씨는 3세손 김종이 문과에 급제, 사간원 정언을 역임한 뒤 강진현감을 지냄으로써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김종의 두 아들인 김효상과 김효정, 손자 김왈, 김두, 김후 3형제 등이 모두 문장과 효행으로 집안의 명성을 떨쳤다. 한편 해남김씨 후손들은 정유재란과 뗄 수 없는 악연을 갖고 있다. 온통 집안이 쑥대밭이 될 만큼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종문 중의 기둥이라 할만한 8세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준이 왜군에게 잡혀 가족과 함께 일본에 끌려간다. 그는 20년이 넘게 억류당한 뒤 돌아왔다. 그런 포로생활 속에서도 그는 절의를 지켰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종형제 세 사람만 살아남았을 뿐 전쟁 중에 죽거나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결국 정유재란은 해남김씨의 쇠락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 때 일부는 충남 보령군으로 피해갔다. 해남김씨는 당악김씨(棠岳金氏)라고도 한다. 당악(棠岳)은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소재지인 일평리 뒷동산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8명이다. 무과 6명, 사마시 2명이다. 인구는 1985년 1,662명, 2000년 2,455명이다. 15년 만에 793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752명, 부산 78명, 대구 25명, 인천 109명, 광주 397명, 대전 38명, 울산 22명, 경기 480명, 강원 42명, 충북 23명, 충남 65명, 전북 101명, 전남 240명, 경북 37명, 경남 35명, 제주 1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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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1 [00:4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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