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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太祖御眞)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12 [00:27]
  태조어진(太祖御眞)은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 3가) 경기전(慶基殿) 어진박물관에 있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그린 초상화이다. 국보 제317호로 1872년(고종 9) 제작된 어진의 진본은 현재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모사본이 국립전주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총 26점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 경기전 경내의 어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진이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조선 왕조는 태조의 어진을 봉안할 진전(眞殿)으로 경복궁의 선원전, 함경도 영흥의 준원전, 전주의 경기전, 개성의 목청전, 평양의 영숭전, 경주의 집경전을 세웠다.
경기전의 어진은 태조 재위 당시에 제작된 집경전의 어진을 1409년(태종 10년)에 모사하여 1410년(태종 11년)에 봉안하였다. 1763년(영조 39년)에 수리를 거치고 나서 1872년(고종 9년)에 어진도사(御眞圖寫)의 화사(畵師)로 활동한 조중묵이 다시 모사하였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의주를 거쳐 묘향산에 이안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 어진이 봉안되어 있던 경기전이 소실되자 1614년(광해군 6년)에 경기전이 중건된 후에야 전주로 환안되었다. 경기전 어진은 1636년 병자호란 때에 다시 무주 적상산으로 피난을 가서 이듬해 환안되었다. 1767년(영조 43년)에는 전주성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주향교로 옮겨졌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에는 위봉사 법당으로 이안된 후 다시 환안되었다. 2005년에 문화재청의 국정감사에서 태조 어진의 훼손 사실이 드러나 2008년에 보존 처리를 완료하여 전주시로 반환되었다. 2010년부터는 어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012년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어진은 초상화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다. 영조 어진은 반신상이거나 연잉군(延礽君) 시절의 모습(화재로 일부 훼손됨)이고, 철종 어진은 절반이 불에 탄 상태로 남아 있다.
고종 어진은 공식적인 진전 봉안용이 아니며, 순종 어진은 초본으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면복(冕服) 차림의 익종 어진, 홍곤룡포(紅袞龍袍)를 입은 태조 어진 등이 있으나 모두 화재로 심하게 훼손되어 용안(龍顔)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조선태조어진' 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왕의 전신상으로서의 절대적인 희소성을 가진다. 어진을 둘러싼 귀중한 기록들로『경기전의(慶基殿儀)』,『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등도 함께 전한다. 이들 문헌에는 어진 제작과 관련된 도감 설치와 동원된 화가명, 소요 물품, 봉안을 위한 각 기구 간의 교신 및 각종 의주(儀註) 등 어진 제작의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일국의 시조인 만큼 특별한 예우를 받아서 국초부터 따로 태조진전(太祖眞殿)을 설치하고 어진을 봉안했다. 서울의 문소전(文昭殿), 외방의 출생지인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본관인 전주 경기전 등이 그것이다.
신숙주가 찬술한『영모록(永慕錄)』을 보면, 당시 선원전(璿源殿)이라는 경복궁 내의 열성어진(列聖御眞) 봉안처에서 받들던 태조어진이 무려 26축이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태조어진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 1본뿐이다. 이 어진도 1872년 당시 경기전에서 받들던 어진이 오래되어 낡고 해짐에 따라 영희전(永禧殿)에서 받들던 태조어진을 범본으로 하여 화사 박기준(朴基駿), 조중묵(趙重默), 백은배(白殷培) 등이 모사한 이모본이다.
태조 어진의 이모와 관련된 전 과정이『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에 수록되어 있다. 태조는 임금의 상복(常服)인 익선관(翼善冠)에 청색(靑色)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앉아 있다. 태조 어진은 신장이 크고 당당한 모습으로 위풍당당한 군주의 위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조선왕조는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 10) 태조 어진을 전주에 봉안하였다. 조선은 건국 후 한양을 비롯하여 평양, 경주, 개경, 영흥, 전주 등 여섯 곳에 태조어진을 봉안하였으나 현재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태조어진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경기전 뒤편에 어진박물관을 건립하여,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주년이 되던 2010년에 개관하였다. 어진실에는 태조어진 진본을 비롯하여 영조ㆍ철종ㆍ고종ㆍ순종 어진 모사본과 세종과 정조 표준영정을 모시고 있다.
가마실은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하던 향정, 신연, 채여, 가교 등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가마를 전시하게 있다. 역사실은 경기전, 조경묘와 관련된 유물 그리고 건축·제례 관련 고문서 제기 등 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됐다. 태조의 어진과 어진봉안 때 쓰였던 가마, 용선, 홍개 등의 의식구를 소장ㆍ전시하고 있다.
한편 태조 어진을 봉안하는 행렬이 지난 2016녀 10월 29일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서 재현됐다. 이 행사는 1688년(숙종 14년)에 서울 영희전에서 태조 어진을 모사하기 위해 경기전의 태조 어진을 서울로 가져갔다가 다시 전주 경기전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고증을 통해 재현한 것이다.
행렬의 출발을 알리는 진발의식을 시작으로 봉안 장소인 경기전까지 1.5킬로미터 구간에서 봉안 행렬이 이어졌다. 시민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는 행사도 마련됐다. 전주시는 복식과 의장 등을 더 보완해 태조 어진 봉안 행렬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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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2 [00:2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