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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김씨/현풍김씨/홍주김씨/화개김씨/화순김씨/황간김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07/18 [00:31]

해평김씨(海平金氏)

 시조 김훤술(金萱述)은 김알지의 후손이라고 전할 뿐 문헌이 실전(失傳)되어 선계를 상고할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해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훤술은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나 그 후 다시 실전되어 고려조에 전직(殿直)을 지낸 김태(金兌)를 1세(世)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본관은 시조가 해평으로 사적(賜籍)되었고, 후손 김수(金銖)가 해평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해평이라고 했다. 김수(金銖)는 고려 말 문과에 장원, 여러 요직을 거쳐 대사간, 직제학, 개성부윤에 이르렀다.

 본관 해평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지명이다. 17세 김언(金漹)은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지냈으며, 묘소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 칠산(七山)에 있다. 그의 아들 김필설(金弼說)의 묘소는 경북 성주군 벽진면 지산리 하점복(下占卜)에 있고, 둘째 김뇌설의 묘는 아버지와 함께 칠산에 있다.

 셋째 김양설(金良說.1709~1754)의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청강리에 있다. 따라서 18세 김양설 때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에서 부산 기장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김양설은 통정대부 공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부산에 모두 116가구, 406명이 살고 있다. 해평김씨 재실 숭모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매학리 152-2번지에 있다.

 인구는 1985년 4,300명, 2000년 4,643명이다. 15년 만에 343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681명, 부산 406명, 대구 1,364명, 인천 108명, 광주 9명, 대전 104명, 울산 107명, 경기 498명, 강원 97명, 충북 81명, 충남 56명, 전북 26명, 전남 19명, 경북 907명, 경남 161명, 제주 19명이다.



현풍김씨(玄風金氏) 

 시조 김수(金修)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의 후손 김천서의 현손으로 조선조에 족친(族親衛將)을 지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현풍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현풍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일대의 옛 행정구역이다. 2005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5명이다. 무과 3명, 사마시 2명이다. 인구는 1985년 329명, 2000년 595명이다. 15년 만에 26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115명, 부산 53명, 대구 93명, 인천 40명, 광주 3명, 대전 16명, 울산 10명, 경기 102명, 강원 17명, 충북 56명, 충남 10명, 전북 6명, 전남 12명, 경북 37명, 경남 25명, 제주 0명이다.



홍주김씨(洪州金氏) 

 시조 김인의(金仁義)는 신라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건(金建)의 후손으로 홍주(洪城)에서 살다가 덕천군수(德川郡守)가 되자 용천(龍川)과 철산(鐵山)에 살았다. 고향인 홍주를 본관으로 하고 드를 1세조로 하였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 김순(金醇)을 1세조로 하는 태천파(太川派)가 있어 규명이 필요하다. 홍주는 충남 홍성군의 지명이다. 

 항렬자는 15世 영(英) 혁(赫), 16世 유(有) 득(得), 17世 서(西) 창(昌), 18世 제(濟) 원(元), 19世 근(根) 섭(燮), 20世 수(洙)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4명이다. 인구는 1985년 1,091명, 2000년 885명이다. 15년 만에 207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286명, 부산 40명, 대구 23명, 인천 86명, 광주 6명, 대전 18명, 울산 11명, 경기 239명, 강원 54명, 충북 26명, 충남 26명, 전북 6명, 전남 6명, 경북 14명, 경남 33명, 제주 11명이다.



화개김씨(花開金氏) 

 화개김씨(花開金氏)는 불행하게도 현재는 통계청 자료에 단 한 명의 후손조차 없다.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씨족인데도 불구하고 1985년과 2000년 현재 인구조사에서는 화개김씨를 본관으로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사자의 잘못도 있겠다. 그러나 그 뒤 뚜렷한 씨족세를 누려오지 못한 데에도 큰 사정이 있을 것이다.

 화개김씨는 고려 원종조에 병부상서를 지내고 화개위에 봉해진 김인황(金仁璜)을 시조로 한다. 그 후 경남 고성 지방에 세거하던 후손들이 처음에 관향을 진양으로 사용해 왔고, 하동과  개성지방에 살던 후손들은 화개로 본관을 삼았다. 그러다 1876년 보첩을 처음 만들면서 본관을 화개로 통일하였다. 화개는 경남 하동군에 속해있는 지명이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인황(仁璜)의 아들 병수(秉洙)가 고려 때 예의판서를 역임했고, 손자 태문(泰文.병수의 아들)은 문하시랑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시조의 증손인 규진(奎震)은 고려 말에 군기소윤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47명의 무사와 함께 보봉산으로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조선조에 와서는 행일(行一)이 흥덕 현감과 오위장을 거쳐 희천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유허비가 세워졌다. 그의 아우 연일(鍊一)과 진일(振一)은 통덕랑에 올라 가문을 일으켰다.

 한말 유학자 김택영(金澤榮.1850~1927))은 시(詩)의 황현(黃玹)과 문(文)의 이건창(李建昌)과 더불어 한문학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가로 불린다. 그는 역사서술에도 힘을 기울였다. 19세 때 이미 문장이 널리 알려졌으며, 23세에 평양·금강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빼어난 시문을 남겼다.    

 1908년 중국으로 망명, 양쯔강 하류 퉁저우에 장젠의 협조로 정착하여 출판사 일을 보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승만 등과 관계를 가져 중국 정부에 우리나라의 독립 지원에 대한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1922년에는 28권 9책의 순한문체 통사인〈한국역대소사〉를 간행했다.





화순김씨(和順金氏) 

 시조 김익구(金益九)는 신라 영분공 김명종(金鳴鐘)의 후손인 김충한(金沖漢)의 현손이고 김두문(金斗文)의 아들이다. 1675년(숙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통훈대부, 결성 현감, 춘추관 기사관 등을 지냈다.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화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1930년 평안남도 순천군 신칭면 용화리 27호, 평안남도 강동군 고천면 동서리 45호, 평안북도 삭주군 삭주면 소덕동 35호가 살았다.

 인구는 1985년 1,723명, 2000년 1,570명이다. 15년 만에 오히려 153명이 줄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70명, 부산 57명, 대구 62명, 인천 77명, 광주 64명, 대전 47명, 울산 3명, 경기 402명, 강원 77명, 충북 25명, 충남 49명, 전북 28명, 전남 58명, 경북 108명, 경남 41명, 제주 2명이다.



황간김씨((黃磵金氏) 

 황간김씨는 고산김씨와 뿌리가 같으며 신라종성(新羅宗姓)의 후예로 전한다. 그러나 선계(先系)가 실전되어 상계를 정확히 고증할 수 없다. 시조 김환(金紈)은 1510년(중종 5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전적(典籍)을 역임했다. 특히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와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가 없다. 다만 후손들이 김환을 시조로, 황간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 황간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의 지명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가 모두 3명이다. 김환(金紈) : 문과(文科) 중종5년(1510) 식년시 병과(丙科), 김입(金立,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두상(金斗上, 1600 庚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으로 문과 1명, 무과 2명이다. 인구는 통계청 자료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 현재 1가구 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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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8 [00:3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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