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명칭을 통일시켜라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09/20 [00:47]

새만금 명칭을 통일시켜라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09/20 [00:47]

새만금 주변지역의 명칭 정비가 필요하다. 명칭이 해당 기관별로 만들어지다 보니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는 새만금의 이미지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부적정한 것으로 지적된 명칭 등에 대해서는 공모를 통해 명칭을 다시 제정해야 한다.

새만금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명칭부터 헷갈려서는 안 된다. 이는 새만금 이미지 제고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새만금’과‘아리울’을 혼용하기 때문이다. 아리울이나 새만금의 명칭을 같이 쓰는 것도, 하나만 사용하기도 어려워 어정쩡한 상태다.

'새만금'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33.9km의 방조제와 광활한 농지 예정지를 상징하는 '새만금'은 김제·만경의 농지를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이 담긴 신조어다. 예부터 김제·만경 들녘을 '금만평야'라 했다.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붙였기 때문이다.

금만평야 같은 옥토를 일궈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2010년 1월 28일 정부는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우니 글로벌 네임으로‘아리울(Ariul)’을 병행 사용한다고 공표했다. 그러면서 20여 년 간 사용해 오던‘새만금’이 어렵다며 새 이름을 선정한 것이다.

‘아리울’이라는 명칭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채 사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는‘새만금과 아리울’이 별개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아리울’이란 명칭 제정 당시에는 새만금과 관련된 공문서와 자료 등에는 새만금 대신에‘아리울’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정된 후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아리울은 물의 순 우리말인‘아리’와 터전을 의미하는‘울’의 합성어이다. 아리란‘자리, 갈이, 그저께의 방언, 또는 크다, 속임수의 옛말 등’이라고 되어 있다. 아리란 말이 물이라고 설명한 곳은 없다.

물(水)의 순수한 우리말은 물일 뿐이다. 더구나 울이란 울타리의 준말이다. 도시나 터전이라고 한 설명은 찾아 볼 수 없다. 아리울과 비슷한 단어로‘아리수’란 말이 있다. 서울시 수돗물을 상표 등록한 것으로 한강의 옛 이름이다.

414년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이 현재 중국 지린성 퉁거우에 세운‘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글을 보면‘광개토대왕이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백제에 진격하여’라는 문구가 나온다. 여기서‘아리수'란 지금의 한강을 말한다. 물을 가리키는 고어에는 한(漢), 패(浿), 사(泗)등이 있다. 한강은 한수, 대동강은 패수, 만경강은 사수라 불렸다.

아리울이란 말이 아리수를 연상시키면 곤란하다. 새만금은 한강이 아니라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 새만금 > 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는 지적이 훨씬 많다.‘아리울(Ariul)’이라는 별칭은 새만금과 혼용되면서 혼란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새만금 주변지역에는 33센터와 아리울 예술창고, 게이트웨이(Gate Way), 새만금 산업단지 홍보관 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된다. 33센터는 새만금 방조제 길이(33.9km)를 상징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명칭은 제정 취지가 있다.

그러나 해당 시설 관계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명칭에서부터 혼란스러울 뿐이다. 새만금의 통일된 이미지 제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새만금'이란 명칭이 처음 선보인 시기는 1987년 11월 2일로 전해진다. 당시 정인용 부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서 황인성 농수산부 장관이 '서해안 간척사업'을 처음으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사용했다. 황 장관이 처음으로‘만경평야에서 <만> 자를 채택하고 김제평야에서 <금> 자를 따왔다. 이중 만금의 사전적 의미는‘썩 많은 돈이나 소중한 것’이라고 사족까지 곁들였다.

반면 새만금이란 어원은 심재홍 전북지사가 당시 재임 시절인 1985년 9월 20일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건설부가‘김제-만경 방조제(금만방조제)’를 계획하면서 전북도가 이 사업을 고군산 군도까지 확장 추진했다. 이 때 금만방조제란 말에서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거기에 새롭다는 뜻을 더하여 '새만금방조제'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11월 노태우 정부에서 착공했다. 그 뒤 2010년 4월 27일 역사적인 준공식을 거행하고 8월 2일 세계 최장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 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둘러싼 갯벌을 개발하려는 '옥서지구 농업개발계획'에서 시작된다. 주변 농경지 배수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1단계(금강하굿둑 건설)와 2단계(김제지구 방조제 축조)로 나누어 출발했다.

한편 이보다 훨씬 앞서 전북 도내 모 일간지는 1978년부터 '서해안 지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기획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기사는 제1차, 제2차 사업으로 나눴다. 1차 사업은 군산시 비응도에서 야미도, 신시도를 이어 변산반도까지 연결하고, 2차 사업은 충남 마서면에서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 선유도, 전남 광양까지 연결하는 대단위 국토확장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썰물 때면 만경강, 동진강의 수로를 빼고 모두 갯벌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제방만 쌓으면 엄청난 농토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미친 짓이라며 핀잔도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편집국에서도 허무맹랑하다고 했을 정도다.

지금 정부는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이자 미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 명품 국제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새만금은 공사가 끝나면 바다와 육지를 합친 면적이 410㎢(1억2400만평)에 달한다. 서울시의 3분의 2, 세종시의 5배가 넘는다. 당초 70%가 넘었던 농업용지는 30%로 줄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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