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애수(哀愁)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7/10/20 [00:38]

남원의 애수(哀愁)

새만금일보 | 입력 : 2017/10/20 [00:38]

갈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품안으로 파고드는 초가을 밤! 춘향이 한양에 간 이몽룡을 기다리던 박석고개를 넘어, 해 저문 남원 골 천변은 오색등불이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강물에 반사되어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 아름다운 밤풍경은 어느 이국땅에라도 온 것 같다.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소풍을 나서 광한루원에 들어섰다. 일 년 내내 그리던 임과 만나 못 다한 사랑을 속삭인다는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고색 찬연한 광한루(廣寒樓)를 둘러싼 우거진 숲과 고목이 한데 어울려 연못에 비치는 물그림자의 밤풍경은 남원이 자랑하는 비경 중의 백미다. 청천 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고요한 밤 소리꾼들의 사랑가 한 대목은 초가을 밤하늘을 수놓듯 춘향과 이도령이 춤을 덩실덩실 출 법도 하다. 그네 뛰는 춘향이의 자태를 보고서 한눈에 반하여 과거공부도 내팽개친 채 사랑에 흠뻑 빠진 이몽룡! 춘향이를 만나듯 나는 어느새 이도령으로 변신, 깊어 가는 가을밤 오솔길 숲과 잔디밭을 돌고 돌아 퇴기 월매 집 행랑채와 작은 연(蓮)못을 지나 춘향이 방에 몰래 들어 하룻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며 만리장성을 쌓고 말았다. 이제 둘은 한 몸이요 이 몸은 한 여인에게 붙잡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이렸다. ‘아 ~ 이 일을 어찌하랴! 춘향아? 이 밤이 이다지도 야속하단 말이냐. 벌써 새벽닭이 우는 고나! 먼동이 트면 한양 천리 먼 길을 떠나 언제 만날지 기약을 할 수가 없단다.’ “서방님? 떠나지 말아요. 우리 여기서 피고지고 한 백년 같이 살아요.” 품속에서 떨어지기 싫은 춘향이, 야속하게도 옷소매를 뿌리치며 과거보러 가는디, 얼씨구!...이별주에 눈물을 감추지 못한 춘향과 이도령! 길 떠난 이도령은 소식도 없어 목이 빠져라 기다림 속에 춘향의 애간장을 녹여놓고 말았던 것이었다. 달콤한 사랑에 빠진 먼 옛날 성춘향과 이몽룡의 애절한 사랑얘기는 남,녀 간의 사랑은 빈부귀천이 없고 국경도 없다. 우리 선조들의 옛 땅, 독립운동가의 후예 북간도의 여인과 남쪽나라 전라도 사내와의 열애(熱愛)도, 지구의 반대편의 미주나 유럽인과의 이극적인 사랑도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빈번해졌다. 춘향전은 가치 없는 설화에 불과 하다는 반론으로, 춘향전이야 말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국민적 소설로 기생의 딸 춘향 같은 천민과 지체 높은 이도령 같은 양반, 반상을 타파한 사랑의 고귀성을 추구한 그 시대의 파격적이고도 해학(諧謔)적인 사랑이야기야 말로 충분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여기서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 에로틱한 밤을 보내는 ‘츈향젼’ 한 대목을 소개 하련다. [만쳡쳥산 늘근 범이 살진 암캐를 무러다 노코 이는 업셔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룬난듯, 흑용이 여의쥬를 입으다 물고 채운간의 늠노난듯, 단산 봉황이 죽실 물고 오동 속으 늠노난듯, 구구 쳥학이 난초을 물고셔 오송간의 늠노난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다 담숙 안고 지지 아드득 떨며 귀뺨도 쪽쪽빨며 입셔리도 쪽쪽빨면셔 주흥 갓턴 셔을 물고 오색 단청 순금장(純金欌)안의 쌍거쌍 비들키갓치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여 담쑥 안고 져셜 쥐고 발발떨며 져고리 초마 바지 속것까지 활신 벅겨노니, 춘향이 북그려워 한편으로 잡치고 안져슬 졔 도련임 답답하여 가만이 살펴보니 얼골이 복짐하야 구실땀이 송실송실 안자구나...중략] ‘이가원 주(註)‘개고츈향젼’
동서고금을 통하여 남녀의 사랑은 무한한 희열과 에너지를 양산한다. 춘향전에 대한 설화 몇 가지를 들어보자. 첫째로 ‘지리산 여인의 설화’로 고려사와 동국여승람 남원조 기록에 의하면 구례현의 한 여인이 부도(婦道)를 잘 닦아 그 소문이 퍼져 백제왕의 귀에 들어가 그녀를 취하려드니 정절을 지기키 위해 자결을 했다는 얘기가 춘향전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성이성(成以性)의 설화다.’광해군 때 남원부사 성안의(成安義)아들로 암행어사가 되어 못된 남원부사의 생일잔치에서 거지로 변장해, [금술잔의 맛있는 술은 백성들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옥쟁반의 안주는 백성들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촛물 떨어질 때 백성들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다(歌聲高處怨聲高)]라는 풍자시는 못된 탐관오리에 대한 징치로 오늘날의 부정부패에 대한 관리들에게 교훈으로 삼아도 무방하다. 그 외에도 영조 때 양주익(梁周翊)진사가 광대들에게 지어준 ‘춘몽록(春蒙綠)설화 등 춘향전은 이름이 다른 이본만 21종이나 되며 대략 이본만 110여 편인데, 한문 필사본이 6종, 한문 활자본이 2종, 한문 현토본이 1종, 한글 필사본이 50여 편, 방각본 10여 편, 활자본도 40여 편이 넘는다. 또한 일어본이 2종, 영역본도 3종이나 되고 영인(影印)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완판에는 춘향이가 양반 성참판의 딸로 등장, 이른바 절반은 양반을 내세운 춘향전은 여염집 여자의 청순함과 기생의 요염함과 대나무 같은 열녀의 지조 등 엇박자의 구성진 굿거리장단에 맞춰 흥을 돋는 판소리 한마당은 이 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춘향의 사랑 얘기에 넋이 나간 나그네, 별이 반짝이는 깊어 가는 남원의 가을밤! 잊을 수 없는 ‘남원의 애수’를 조용히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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