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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갈등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11/08 [22:47]

진보와 보수는 한국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이념적 용어다. 그러나 예전처럼 민족이나 계급 문제가 최고의 가치라는 식의 절대적인 진리와 목표는 없다. 보·혁 갈등은 친북과 친미, 시장과 분배 같은 이분법적 원칙론에 지배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북한에 대한 태도다.

그러나 이제는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야 한다. 공존의 최우선 조건은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진보도 보수가 될 수 있고, 보수도 진보가 될 수 있다.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이 섞여도 괜찮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정치관·윤리관으로 무장한 젊은 보수주의 층이 형성되고 있다. 기존의 진보 진영에서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이념 그룹이 갈라져 나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진정한 보수가 탄탄히 버티고 있어야 그에 대응하는 예리한 진보도 탄생할 수 있다.

인터넷의 이념 논쟁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내용 없는 진보와 보수에 사람들이 끌려 다닌다는 비난이 많다. 진보와 보수를 개의치 않는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세상은 강경 보수와 강경 진보의 맞대결을 반복하고 있다.

경제 문제, 핵 문제, 역사 문제 등에서 대립이 이어진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 속에서 이를 아우르는 가치는 헌법정신이다. 헌법정신은 자유와 평등,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 및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다.

‘따뜻한 보수’혹은‘온정적 보수’라는 말은 보수정부지만 약자 배려와 서민보호 등 소외 계층을 배려하겠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파적 가치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타협을 유도하고 한국적 실정에 맞는 좌표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진보(進步)는 걸음을 나아간다는 뜻,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는 과거의 것에 보다 무게 중심을 두고, 진보는 미래에 보다 중심을 둔다. 진보와 보수의 본질은 현실에서 더 난해하게 대립한다.

왜 진보와 보수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는지, 무엇이 다르고 또 공통분모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 비전과 성장 및 분배 전략, 사회민주화와 정치개혁 등 주요 의제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두 진영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좌파와 엮이고 보수는 우파와 잘 엮인다. 그래서 진보좌파 보수우파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구분은 상당히 어렵다. 용어가 혼란스러운 것은 어떤 집단을 보수, 진보로 간주할 때 사용되는 기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복지정책, 정부의 적극적인 소득재분배 등 경제적인 문제가 논점이 될 수 있다. 언론이나 집회 시위, 결사의 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통제 수준을 두고 갈릴 수도 있다. 소수정당들의 약진으로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는 더더욱 어렵다.

어떤 정책이 더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라는 방향성 자체도 의심스럽다. 천안문 사태를 전후한 1980-90년대의 중국은 정치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좌파와 전문기술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우파를 서구적인 맥락에 맞게 계승했다. 그러면서 격렬한 이념적 갈등을 겪었다.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을 가장 헷갈리게 만든 주범은 1980년대 중국이었다. 진운과 이붕을 보수파로 만들고, 등소평과 조자양을 개혁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수당과 공화당을 이끈 대처와 레이건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국영기업이나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국가 역할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자 했다. 한편 노동조합이나 국영기업, 규제기관은 진보정당이라고 여겨져 온 노동당 혹은 민주당과 연계해 자신들의 위치를 방어하고자 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 등의 조치는 과연 진보적인 조치인가 보수적인 조치인가. 왜 중국과 영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반대로 정렬된 것일까.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 자체의 의미가 의심스럽다.

진보 혹은 보수를 표방하는 각 정치 세력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런 모호성에 기대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일관성 있는 개념으로 통용되는 게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별개의 문제다.

한편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촛불집회가 1주년을 맞았다. 촛불 민심은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여전히 혼돈 상태다. 촛불이 타오른 지 1년이 지났지만 촛불혁명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열망을 담은‘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을 앞세워 정쟁화시키고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아직도 해소될 기미가 없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갈수록 더욱 격화되는 조짐이다.

북핵 문제에 발목이 잡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전쟁 위기까지 직면한 상황이다.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권 교체를 이룬 자신감을 토대로 한층 성숙된 정치권의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당리당략에만 목을 매고 있다.

구태의연한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촛불 민심을 이념의 잣대로 이분화해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정파의 시도는 심각하다. 촛불의 정신은 결코 어느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위대한 자산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자유와 정의의 소중한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그 바램이다. 이는 보수의 정신도, 진보의 가치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가야 하는 목표일뿐이다.‘촛불’과‘태극기’를 막론하고 우리 국민 모두의 소망이다.

이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의 길로 가야 할 때이다. 양 진영 모두가 갈등과 반목을 접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마음 자세로 대통합의 길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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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08 [22:4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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