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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커튼콜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11/14 [06:58]

임상실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작년 2월, 30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다며, 아버지 산소부터 가야겠다고 했던 졸업생이다.
학창 시절에 ㅇㅇ씨는 소문난 문제아였단다.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를 다섯 군데나 옮겨 다니며 부모님 속을 태웠지만, 결국 졸업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호통에 떠밀려 군대로 쫓겨났더란다. 겨우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ㅇㅇ씨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한 쪽 눈을 잃었다. 그렇게 시각장애인이 된 ㅇㅇ씨가 우리 학교 고등부 1학년으로 입학할 당시 나이는 56세였다. 평생 공부나 학교와는 인연이 없다고 여기며 거칠게 살아온 그 분에게 '학생'이라는 신분은 영 어색했다. 교실에 배치된 걸상이 불편하다며 특별실에 있는 회의용 의자를 마음대로 끌어다 쓰는 것은 예사였고, 술만 마시면 평소 유감을 가졌던 주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험한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나는 ㅇㅇ씨의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었고, 1년 동안 그야말로 골치를 앓았다. 크고 작은 말다툼으로 교실은 조용할 날이 없었고, ㅇㅇ씨는 자신의 과거 전력을 무용담처럼 늘어 놓으며, 언제라도 학교를 그만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의 개인 면담을 하던 나는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ㅇㅇ씨와 마주 앉았고, 꽤나 진지한 그 분의 개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교실에서 바른말 고운말 쓰기'부터 지도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분위기를 이완시키려고 노력했다. 면담 시간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ㅇㅇ씨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고, 본인이 먼저 교실 청소시간을 챙기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나는 내 수업 시간 시작과 끝인사를 ㅇㅇ씨에게 맡겼고, ㅇㅇ씨는 진도에 맞춰 교과서를 펴놓으며, 수업을 준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학생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폭풍 칭찬을 해주니 ㅇㅇ씨는 머쓱해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교실에 난무하던 거친 언행이 점차 사라졌다. 사람에 대한 진심은 꼭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마법이었다. 거짓말처럼 유순해진 ㅇㅇ씨는 그 뒤에도 몇 번의 우발적인 다툼과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 날, 58세 나이로 학사모를 쓰고는 감격스러운 듯 아닌 듯 웃었던 ㅇㅇ씨가 임상실을 찾아온 것이다. 본인이 직접 고구마를 수확했다며 나에게 한 박스를 안겨주었다. 김영란법에 따라 그 어떤 선물도 정중히 사양해야 하는 게 우리 학교 방침이지만, 그 학생의 순수한 마음은 받아 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몇 주 전 익산 예술의 전당에서 '사랑별곡'이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배우 손숙과 이순재가 주연으로 출현하여 부부의 눅진한 사랑을 연기했다. 배우 이순재는 올해 82세요, 손숙은 72세라 했다.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두 배우는 노련했고, 완숙했다.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내뿜을 수 있는 아우라는 거대한 우주였다.
그 많은 대사를 외우고, 그야말로 연기로 승부해야 하는 현장을 꽉 채운 두 배우의 연기와 열정에 나는 열렬한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도종환 시인의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지금 내 인생의 시침과 분침은 째깍째깍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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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4 [06:5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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