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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리는 늦가을 단상(斷想)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7/12/07 [10:06]

 




첫눈이 내리네, 함박눈이 펄펄 내리네. 첫눈은 고요한 밤에 소리 없이 내려 소복이 쌓이거나, 낮에 내려 깨끗하고 흰 세상을 만든다. 첫눈 내리는 날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심이 되어 기쁘고 설렌다. 첫눈은 하얀 천사가 선물과 복을 내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옛 추억을 되살리는 전령사 같기도 하다.

어제 11월 22일은 절기상 소설(小雪)인데 때맞추어 첫눈이 내렸다. 오늘날 과학의 힘으로 점을 쳐 기상예보를 하는 것보다 옛 어른들의 지혜가 신기롭다.

포항지진으로 연기된 대학수능시험 날이다. 3년간 시험 준비에 몰두한 소년소녀들이 창 너머로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동심에 빠져 정답을 놓칠까 걱정이다.

첫눈은 좁쌀 같은 싸락눈으로서 내리면서 녹는다. 선녀의 부채춤처럼 나풀나풀 조용히 내리는 함박눈이 더욱 감미롭다. 어릴 때 마당에서 팽이를 치며 놀다가 두 손을 벌려 받아먹고, 모이를 찾는 닭들이 쌀알로 알고 콕콕 찍어 먹던 공해 없는 옛날 눈이 그립다.

타향살이 향수에 젖은 실향민들은 주막집 창 너머로 펄펄 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논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 일세” 란 ‘고향 설’을 부르고, 한 잔 또 한 잔 정을 나누며 향수를 달랜다.

올해 첫눈은 한낮에 푸짐하게 내려 소복차림의 흰 세상을 만들었다. 아직 오색단풍으로 마지막 여흥을 주는 완산칠봉이 하얗게 변하여 가을과 겨울 장면이 겹쳐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우리의 사계절처럼 계절마다 특성을 가진 나라는 드물다. 사계절 중 가을처럼 단풍의 아름다움과 수확의 풍요로운 계절은 없다. 사람들은 설악에서 한라까지 점점 물들어 가는 단풍에 맞춰 울긋불긋한 단풍과 하모니를 이룬다. 오색단풍은 색도 곱지만, 이른 봄부터 새싹을 틔워 열심히 살아온 나무의 일생을 단풍으로 결실하고 겨울잠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단풍잎이 되어 기쁨을 선사하고 떠나는 일생이 더욱 아름답다. 마치 인생 황혼기의 준비과정을 단풍에서 보는 것 같아 늦가을 단풍을 색으로만 볼 수 없고, 인생처럼 보인다.


오색단풍 가운데 노란 은행잎이 가장 곱다. 빨간 홍단풍과 어울려 색동옷처럼 조화를 이룬다. 늦가을 노란 은행잎으로 채색된 가로수 길을 걷는다. 은행 잎 황초 길을 걸으면 노란 카펫 길을 걷는 것처럼 황홀하다. 행여 황금 길이 비바람 시샘으로 우수수 떨어져 삭막해질까 걱정이다. 가녀리게 매달린 은행잎에게

“조금만 더 마지막 안간힘으로 버텨다오! 비바람아, 멈추어 다오!”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마지막 잎새가 지고나면 앙상한 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린 은행 알을 보면 자손들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지는 잎을 보내며 추모하는 것 같아, 마치 가시는 님을 임종하는 것 같이 회한에 젖게 한다.

가을은 오곡을 수확하는 황금계절이지만, 오색 오복주머니인 듯싶다. 오색 단풍잎 같은 오복주머니에는 푸짐한 온갖 수확한 과일이 가득하고,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으로 채색된 사념들이 채워지기도 한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고독과 번민, 풍요로움과 오만이 오복주머니를 가득 채우면 또 한 해의 주름살이 늘어간다.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나, 낫킹콜의 ‘오텀 리브스’ 란 노래처럼 늦가을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온갖 생명체들이 힘차게 뛰어놀다 자취를 감추는 한적한 늦가을 산골길이나 다랑이 논밭 길을 걸어 보자. 겹겹이 쌓인 추억들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들판에 외로이 서서 마지막 잎새를 떨구는 은행나무는 해마다 피고지어 재생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색동옷 단풍처럼 황혼을 맞으면 서서히 영혼 속으로 사라져간다.

부질없이 짧은 인생을 멋있고 즐거우며 후회 없이 살아갈 일이다, 첫눈이 하얗게 덮인 오색단풍은, 따뜻한 햇볕에 눈이 녹아 메마른 줄기와 잎이 촉촉히 물기를 머금고 다시 퍼져, 오색 빛을 되찾아 만추의 산을 마지막으로 곱게 물들인다./김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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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7 [10:0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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