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을 진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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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의 그림자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1/03 [16:41]

대한민국은 어느 때인가부터 "빨리빨리" 문화를 가진 민족이 되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모든 일을 너무 서둘러 추진하다보니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야기했다. 실제로 빨리빨리는 한국인들의 급하고 기다릴 줄 모르는 성미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사고공화국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서두르는 성향 덕분에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IMF 사태, 세월호 침몰 사고,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등은 모두 너무 서둘러서 생긴 부작용에서 비롯됐다.

한국 사람들은 인터넷이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한국의 무선 인터넷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스마트폰 보급도 2011년 통계에서는 세계 4위였지만, 2013년 통계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내어 성공적인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부실공사를 하는 경우도 함께 늘었다. 실제로 부실공사로 건물과 다리가 붕괴되는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났다. 안전 불감증도 심각하다.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지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18~19세기부터 산업화 사회에 진입한 나라들이다. 산업사회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이런 사회에 들어선 지 고작 몇 십 년 정도 밖에 안 된다. 빨리빨리 문화가 동서냉전과 남북분단의 상징들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다.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국인은 좌절하지 않고 한발 앞서 달려갔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근면함과 성실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빨리빨리는 대충대충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본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사회가 움직이다 보니 탈이 많다. 우리 경제는‘빨리빨리’를 통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생산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빨리빨리’문화는 부실을 낳게 된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기 임기 내에 공을 세우려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서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일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결코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때에 이르면 결실을 이루기 마련이다. 목표는 원대하게 갖되, 일하는 순서는 경중을 가려서 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느림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적으로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짧은 기간에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른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많다. < 빨리빨리 문화 >가 만들어낸 한국병인 셈이다.

각종 한국병은 1960~1970년대의' 개발 연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성장 제일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가난 극복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경제 성장에는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정신적 빈곤'이 많이 남아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주의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이 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양극화도 심화됐다. 공동체 의식도 실종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심각한 문제는 교육 시스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고 '공동체 의식'을 중심에 두는 교육이 하루빨리 회복돼야 한다.

복지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복지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사회적 통합은 물론 공동체 의식도 어렵다. 성장 잠재력도 끌어낼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은 서서히 기울어져 내려가다가 결국 쇠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국제사회 영향으로 이미 다원적‧수평적‧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 1960~1970년대의 비교적 단순한 농업 중심 사회가 아니다. 초기 산업사회의 수직적이고 덜 개방된 구조도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 리더십과 제도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이다.

1950년대 한국의 경제는 원조 경제 체제로, 미국으로부터 잉여 농산물, 소비재 등의 무상 지원을 받으면서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1970년대에는 철강, 조선, 전자 등 수출 주도형 중공업을 육성하여 경제 발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과잉 투자와 1973년 1차 오일 쇼크, 1978년 2차 오일 쇼크로 국제 수지가 악화된다.

이를 극복하고자 수출과 건설업의 중동 진출 등을 장려했다. 이는 고도성장과 수출 증대 등으로 국민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해외 기술과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농촌이 피폐해지고, 산업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공해 문제, 노동 문제 등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1990년대에는 자본, 금융 시장을 개방하였고, 1993년에 쌀 개방을 추진하였다. 1995년에는 그 해 새롭게 설립된 세계 무역 기구(WTO)에 가입한다. 이 시기에 농업 등 1차 산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1996년에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했다. 곧이어 1997년에 IMF 구제금융 사건으로 인해 각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여 경제난을 겪는다. 국민들은 경제난을 극복하고자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노사갈등, 빈부격차, 환경오염, 저소득층 증가 등이 있다. 1997년에 일어난 외환위기도 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설립되었다. 그에 따른 노사갈등 심화 역시 경제성장의 그림자로 볼 수 있다. 경제의 성장으로 인해 일부 계층은 부자가 되었다. 그에 반해 다른 소외된 계층들은 여전히 가난한 상태에 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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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3 [16:4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