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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亂中日記) 수난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1/04 [16:47]


1592년 4월13일 왜군은 16만 대군을 몰고서 부산앞바다에 상륙하였다. 부산진을 지키던 
정발(鄭撥)장군이 순절하고 다음 날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카 (소서행장)는 동래성을 포위한 뒤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에게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고 으름장을 하니 이에 동래부사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어 주기는 어렵다.’ 라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다가 동래성이 함락되자 조복(朝服)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은 채 적병에게 의연한 죽음을 맞이하니, 이 같은 충절에 탄복한 적장(敵將)은 시(詩)를 지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한다. 왜왕  풍신수길은 조총 같은 신무기로 잘 훈련된 군병으로 조공만 바쳤던 명나라와 상국행세를 하던 조선을 쳐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가였다.
이렇게 시작된 7년간의 임진왜란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록물인 난중일기는 국보 76호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현충원에 전시되어 후대에게 애국충정을 알리는 역사의 보고다.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이순신 종가는 앞서 충무공을 기리는 현충사 본전에 걸려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철거하고 숙종임금의 사액현판을 본래대로 원상복구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현충사 현판 교체는 물론 친일사관의 적폐청산을 2017년 12월 31일까지 개선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간곡히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 수난에 직면한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 일체를 금년 1월 1일부터 현충사에 전시될 수 없음을 엄중히 통지한다며 전시불허서류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현충사는 군 장교, 경찰공무원이 임관 전 충무공을 참배하러 오는 의미 깊은 성소이다. 이순신장군 15대 종부 최순선 씨는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숙종임금의 현판을 복구해 현충사가 올바른 역사의 전통이 후손들에게 이어져야 하는데도,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작업을 진행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채 외람되게도 숙종임금의 친필현판을 내린 것에 시정을 요구 한 것이다. 또 한 현충사 오른편에 서 있는 '금송'은 박 전 대통령이 헌수 한 것으로 일본이 원산지인 금송은 일본신화(神話)에 등장,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지난 1970년에 경내에 심었다. 일본 고사기에 따르면, 신이 그 용도를 정해줬는데, 그 중 한 나무가 '고야마키(금송)' 로 고급관리의 관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나무다. 이순신 종가와 문화재 제자리 찾기회는 금송을 이전해달라는 진정을 문화재청에 요구 한 바, 김종진 문화재청장도 10월 30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현충사와 칠백의총에 식수된 금송을 이전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무능한 선조왕은 이율곡의 10만 양병 책을 허투루 넘기고, 전운이 감도니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정사 황윤길(서인)의 말을 무시하고, 왜왕 풍신수길은 원숭이처럼 보잘것없는 위인으로 조선을 침공할 자가 아니라는 부사 김성일(동인)의 거짓보고를 믿었으나 2년 후 왜군이 쳐들어오니 겁에 질려 아차하면 명나라로 도주하려고 의주로 피난을 하였다.
왜군은 7년간 나라를 초토화 시켰는데, 하늘이 도우셨는지 이순신장군같은 위대한 인물이 나와 왜군을 무찔러 23 전승을 하니, 시기하는 사대부들의 당쟁에 희생양으로 죄 없는 이순신장군을 감옥에 가두고 적과 내통했다하여 하마터면 사형될 뻔 했는데 다행히도 유성룡의 간언으로 사형만은 면하여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3도 수군통제사(해군 중장)가 백의종군(무등병)으로 출전할 때 난중일기에는 ‘죽고 싶다’라고 쓰고 있다. 하마 빼앗길 나라를 목숨 바쳐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 같은 위대한 선조를 두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런데 감히 쿠데타로 18년 간 군부독제를 한 박통이 300년간 이어온 숙종임금의 현판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욕되게도 자기 글을 달다니... 문화재청은 불문곡직하고 즉시로 박통의 글을 떼어내고 숙종임금의 현판을 원상복구 해야 당연한데도 무엇을 주저 하는가. 일본식민통치역사를 주도한 *이마니시류(今西龍)의 밑에서 수사관보(修史官補)로 길들여진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 이병도가 쓴 잘못된 역사를 해방된 이 땅에 지금까지도 이병도의 두 손자 서울대총장(이장무)과 문화재청장(이건무)으로 그대로 이어져 일본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통을 혁명전사로 하려던 국정교과서를 내 치듯, 현 정부는 하루속히 친일 역사 적폐청산을 해야 할 것이다.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순신은 죽지 않았다며, 울돌목해전에서 적선 133척과 싸워 결정적인 승리를 하고 관음포에 몰려있는 적선을 무찌르다가 노출된 몸으로 적탄에 산화했다. 역사학자 *홍이섭은 승전 후 이순신은 반드시 당쟁에 몰려 죽기 때문에 자결을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적인 해군제독 성웅 이순신장군! 살신성인의 애국혼은 많은 세월이 또 흘러가도 우리민족의 가슴에 오래래 남아 있을 *난중일기는 청사에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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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4 [16:4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