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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통일정책이 필요하다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1/11 [19:10]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바뀌면서 국민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입장이 바뀔 때마다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는 뚜렷한 대북 정책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통일 정책을 만드는 것에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한다.

국내 양극화 심화는 정부가 대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견을 수렴하며 대북 정책의 원칙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공존, 상생, 합심이 절대적이다. 언제든지 남북 교류의 물꼬가 막혀서는 안 된다.

통일 정책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물론 이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변화에 맞게 우리의 정책도 방향을 조절해야 한다. 추진 방법도 계속 새롭게 만들어 가야 된다. 서독은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동독을 변화시키고 통일을 이뤄 냈다.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세 명을 꼽는다. 아데나워 총리는 1949년 서독 정부 수립과 함께 중립과 서방 편입을 선언한다. 이를 통해 주변국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 뒤 빌리 브란트는 전후 그어진 국경을 인정함으로써 동유럽 국가와 화해한다.

이어서 동독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단, 외국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럽안보 협력회의를 만들고 새로운 안보 질서를 구축했다. 이는 1979년 헬싱키 결의문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헬싱키 결의문은 ▲안보 ▲인권 ▲경제협력을 담고 있다.

이는 동유럽과 인적 교류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동유럽의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브란트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고 분단을 확실히 하며 접근과 변화를 이끌어 낸다. 희미했던 상호관계를 차라리 국가대 국가로 분명히 하고 지원했다.

단, 인적교류 조건을 걸었다. 동시에 주변국에게 동독과 교류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하이슈타인 독트린을 채택한다. 참으로 역발상의 창조적인 통일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통일'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통일"구호를 외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깊은 영감을 준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대통령으로서 동유럽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낸다. 그의 동방정책의 철학은 에곤 바르가 제공했다. 에곤 바르는 독일 통일의 숨은 주역이다. 그는 1963년 베를린시 관광국장 시절 "접근을 통해 변화하고 변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유명한 선언을 한다.

그러나 통일의 주역은 무엇보다 동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독일 정치권과 이를 끝까지 믿고 지지해준 독일 국민들이다. 독일의 통일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남북의 적대적 긴장과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실천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통일에 대한 회의론이 심각한 수준이다. 통일비용 부담도 많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준비 과정은 물론 통일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에 혼란과 후유증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슬기롭게 극복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통일이 독일 축복의 근원이 되고 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에 의해 입안되고 시행됐다. 이후에 바뀐 정권인 기민당의 콜 총리가 이행을 했다. 결국 통일은 기민당 정권에서 결실을 맺었다.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되고 안정되게 지속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독일의 이니셔티브가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 그 이니셔티브를 포기하고 다른 강대국에 맡겼다면 독일 통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지금 우리에게도 아주 절실한 과제다. 앞으로 대북 통일 정책의 일관성, 우리 정부의 이니셔티브 갖기 위한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영삼 정부가 제시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후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의 기조로 활용 되었다. 가장 큰 의의는 전 정부에서 이루지 못한 일관된 통일 정책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ㆍ미 주도의 핵 협상과정과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에 대한 긴장감과 이후 대북 정책의 주도권이 미국에 집중된 것이 한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일 정책은 1970년대 야당 지도자 때부터 주장해온 '남북연합→ 연방제→ 통일국가'를 골자로 하는 3단계 통일론으로 압축된다. 남북 정상회의를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하는 남북연합을 첫 단계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성숙하면 연방제를 만든 뒤 통일 국가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는 당선 직후 북한의 도발 불용 등 대북 3원칙을 천명하면서 햇볕정책을 과감하게 실천했다. 북한 잠수정 침투와 금강산 관광객 억류 제1연평해전 등으로 난관에 봉착했지만 대북 포용 정책 기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 3월 남북 간 협력 수준을 민간에서 정부로 진전시키겠다는 베를린 선언을 했다.

그해 6월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도 실현됐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햇볕정책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계승 발전되면서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퇴임 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 현대가 4억 달러, 정부가 1억 달러를 북측에 몰래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이 뒤따르면서 그의 햇볕정책과 통일론은 빛이 바랜 채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의 통일 정책은 정권 교체에 따라 변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 이념과 방법은 차이가 없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이다.

< 급히 서둘지 말라. 노래를 배우기 전에 말부터 배워야 한다. 단걸음에 높은 곳을 뛰어 오르려고 하지 말라. 순서를 밟지 않고 급히 서둔 일은 반드시 헛수고로 돌아간다 >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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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1 [19:10]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