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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2)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1/14 [21:30]

중국(中國,China,중국인민공화국)이 큰 나라인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人口大國)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 태평양의 서안에 위치한 나라다. 옛날부터 우리는 중국을 가리켜 '대국(大國)'이라고 했다.

중국 사람들이 평생에 다 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생에 자기 나라의 글, 즉 한자를 모두 익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명소를 모두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상용하는 글자를 정하여 쉽게 익히게 했다.

평생에 모두 둘러 볼 수 없는 주요 명소를 한 곳에 축소 모형을 만들어 모아 두고 볼 수 있게 한다. 제주도의 소인국 테마파크나 미니미니 랜드처럼 말이다. 중국은 과연 얼마나 큰 나라일까. 나라의 크기는 국토의 크기와 인구의 크기로 말한다. 중국은 959만 6,960㎢로 러시아, 캐나다 다음가는 3대국 중의 하나다. 남한 면적의 96배, 남북한 면적의 43배나 된다.

중국의 영토는 동쪽으로 북한,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등과 접하고,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북쪽으로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국경을 이루며 국경선의 길이는 약 22,800㎞에 달한다.

남쪽은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접한다. 최동단인 헤이륭강과 우수리강의 합류지점(동경 135˚)과 최서단인 신강위구르자치구(동경 73˚)간의 경도차가 62˚(동서 직선거리 5,200㎞)로서 4시간의 시차(時差)를 보인다.

귀성객들은 기차 속에서 며칠 동안 먹을 음식과 침구를 준비한다. 며칠 동안 열차를 다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현재의 중국 영토는 국력의 강약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된 결과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할 때는 영토가 넓어졌다가 국력이 쇠약할 때는 축소되었다. 그 결과 중국이 항상 지배하여 한족(漢族)이 주로 거주했던 중국 본토와 이민족이 주로 거주했던 주변지역으로 크게 구별된다.

중국 본토는 만리장성 남쪽과 티벳 고원 동쪽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핵심지역이다. 18개 성(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족이 주로 거주한다. 주변 지역은 티벳, 신장(新藏), 몽고(蒙古), 만주(滿洲), 꽝시(廣西) 등으로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이민족의 거주 지역을 흡수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와 주변 지역은 정치, 인종, 문화 등의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을 여행할 때, 특히 서쪽으로 가다보면 동쪽의 한족과는 전혀 다른 중동인과 유사한 얼굴 그리고 대조적인 생활모습을 보게 된다.

중국의 인구는 약 13억 3,500만 명(2009년 말)이다. 세계 인구의 약 20%가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인구 성장 단계는 진대- 서한까지, 청조 200년 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1949년-)로 구분한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2000여 년 동안 중국의 인구는 390만-1,370만 명이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는 1,800여 년간 중국의 인구는 기본적으로 5,000만 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왕조 400년 사이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이 지속되었을 때 인구는 5,000-6,000만 명에 달하였다.

동한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장기간 군벌의 혼전을 거듭하여 많은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고 인구도 6백만으로 감소하였다. 진(晋)왕조 때 인구는 다시 1,000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이후 남북조를 거쳐 수·당시대에 이르면서 다시 5,0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청조의 강희(康熙 1662-1722)부터 건륭(乾隆 1735-1796)에 이르는 '강건성세(康乾盛世.강희,건륭 연간의 태평성세)'의 약 130여 년간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인구 증가와 조세감면 조치를 정책적으로 시행하여 인구가 1억 명에서 2억 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한다.

이러한 정책의 지속으로 인구가 부단히 증가하였다. 건륭 29년(1764)부터 도광(道光) 27년(1847)간에는 인구가 2억 600만 명에서 4억 1,300만 명으로 약 2배나 증가하였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하였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세력의 착취로 인한 생산력의 저하와 군벌의 혼전으로 인구성장 속도가 저하되었다. 특히 1937-1945년간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여 1,00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그 인구는 5억 4,167만 명이었으나 50년 후인 2000년에 이르러 12억 9,000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현재도 매년 약 1,200만 명이 증가한다. UN의 추계에 의하면 2050년에 중국 인구가 약 16억 명으로 증가한 후 점차 감소될 것이라고 한다. 심각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1979년부터‘1 자녀 낳기’ 정책을 실시했다. 1자녀 가정에 장려금, 학교 우선입학 등의 우대조치를 하는 반면 위반한 가정에는 벌금을 부과하였다.

중국 산아제한 정책의 기본 내용은 '만혼만육(晩婚晩育)'과 '소생우생(少生優生)'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경우 미작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고방식인‘다자녀(多子女) 다복(多福)’에 대한 전통가치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1자녀 낳기’정책이 큰 효과를 얻지 못하는 원인이다. 특히 '남존여비 사상'으로 1명의 남아(男兒)만 출생신고를 하고 나머지 자녀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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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4 [21:30]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