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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3/15 [08:59]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왕족으로 지조가 높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벽계수를 이 한 편의 시조로 나귀에서 떨어뜨린 그녀는 서경덕을 사모하여 여러 번 유혹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런 서경덕을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이라 부르며 그의 곧은 성품을 칭송했다.

흔히들 ‘출세한 남자치고 바람피우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우리 윗대의 어른들은 남자들의 바람기에 대하여 한없이 관대했었다.

내가 한참 직장생활을 할 때 만해도 여성은 ‘직장의 꽃’이라며 하대하거나 무슨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었다. 나 또한 수치심을 일으키는 언사로 부끄러운 처지에 빠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 까짓것 하며 눈 한 번 질끈 감고 참아내기 일쑤였다. 회식 자리에서는 으레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라며 술시중을 들게 했었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나 같은 6~70대에 한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4~50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사람을 단지 남녀노소로 한정지어 생각하기보다는, 어느 계층 어떤 직종이든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며 같이 나아가야 할 동반자로 생각해야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너의 상사이고 너는 나의 아랫사람이니 나에게 속한 만큼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낡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은참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Me Too운동'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며, 나는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너는 ‘흙 수저’라는 은연 중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떨쳐 버려야 된다. 특히 직장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남성이 ‘을’의 자리에 있는 여성을 함부로 해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더욱 분노한다. 만약 그녀들이 ‘갑’의 위치에 있어도 그런 행위를 했을까? 정말 비굴하기 짝이 없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일이란 것에, 모든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로 팔려간 우리의 할머니들, 이들도 강대국이 ‘갑’의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분들이 지금도 분노하고 있는 것은 솔직한 마음을 담은 진정어린 사과이지, 돈 몇 푼으로 보상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우리 모두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데, 하물며 요즈음 같은 시대에 나약한 여인들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이용했다면, 모든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무릎을 꿇고 두고두고 평생 사죄해서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씻어 주어야 할 가해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소중하게 여기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우리는 동정하며 용서할 수 있을까?

황진이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한 벽계수, 그를 지탄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등한 관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직장에서 ‘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유혹을 뿌리친 서경덕, 우리는 그를 지조 있는 선비로 칭송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 마저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선비로서의 자존심과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철저한 이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순간의 욕정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만행, 그것도 한 번의 실수가 아닌 매번 반복되는 짓거리를 누가 실수라며 용서할 것 인가?

용기 있게 나선 많은 피해자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말이 제2차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간혹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가면 ‘Me Too운동'에 대해 괜히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라고 해도 그럴 수 있겠나?’하고.

들불처럼 일어나는 ‘Me Too운동'을 시작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요!’라고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 사회, 또 서로를 따듯하게 위로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양성평등’의 사회가 이루어져서 ‘여자가’, ‘여자라서’라는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Me Too운동'이 역풍을 맞는 일이 없이 앞으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는 사회, 일하는데 있어서도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아픔 없는 사회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서경덕 같은 멋진 신사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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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15 [08:5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