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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의 이상세계(理想世界)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3/15 [17:30]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가보리’ 120년 전 갑오동학혁명 성공을 위한 갑오,을미,병신년을 넘기지 말자는 민중의 소원이 담긴 세상에 떠도는 절박한 노래였다.

위 노랫말에서 파랑새는 청군을 말하고 녹두는 전봉준, 청포장수는 민중을 뜻한다.
국운이 다 기운 조선조 말엽 1890년(고종27년) 동학에 입도한 풍운아 전봉준은 전라도 작은 고을 고부 땅에서 훈장으로 잠룡(潛龍)처럼 큰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민심은 날로 흉흉해져 부패한 고을 방백수령은 물론 아전까지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제폭구민 보국안민(除暴救民 輔國安民)의 기치를 걸고 전봉준은 선봉장에 서니 민중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난세의 영웅 전봉준(全琫準1855-1895)은 전라도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 전창혁(全彰爀)의 아들로 의협심이 강한 부친은 고부군수의 학정에 민원을 제기했다가 심한 매를 맞아 장독(杖毒)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전봉준은 5세 때에 한학에 입문 13세에 백구시(白驅詩)를 지어 어려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로 커갔다. 부친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도 있으려니와 도탄에 빠진 백성과 구국일념에 고심을 하던 끝에 1888년 무장접주 손화중(孫和中)을 만나 국내외 정세를 논하고 동학을 알게 되어 서장옥의 휘하인 황하일(黃河一)의 소개로 동학에 입도를 한다. 1892년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1827-1898)으로부터 고부지방 접주(接主)로 임명된 그는 다음해 2월 상경, 대원군을 만났다는데 세간에 떠도는 말로는 대원군과의 어떤 밀약이 있었는데 아마도 민중봉기를 하여 대원군과 함께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것으로 추측이 간다. 전봉준은 1893년 11월 고부농민 40여명과 함께 조병갑(趙秉甲)군수를 만나 만석보의 과다 수세징수를 탄원하자 전봉준을 감옥에 가뒀으나 민란이 두려웠는지 고부군수는 풀어 준다. 김도삼(金道三),최경선(崔景善) 등 20여명과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말 피를 마셔 죽기를 함께 하자며, 첫째로 고부 군수 조병갑을 참하고, 형리 아전을 징치하고, 전주성을 점령, 한양도성으로 갈 것을 결의한 본격적인 민중봉기에 접어든다.

다음해 1894년 1월10 고부관아를 무혈 입성하였으나 조병갑은 이미 아전 은(殷)모 집에 피신하여 도망을 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원평, 태인, 정읍, 고창, 흥덕, 부안, 김제 등에서 운집한 수많은 동학군은 1월 17일에는 이평면 마항장터 감나무 밑에 집결하여 2월25일에는 동진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요새 지금의 부안군 백산(白山)토성에 모여 기포를 한다.

이 소식에 관군은 800명의 보부상 별동대를 포함 1600명의 신식군대를 몰고서 황토현에 포진해 있는 동학군을 토벌하러 오면서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행패가 극에 달했는데 4월7일 새벽 술 취해 자는 틈을 타 야습을 하여 대승을 하였고,4월23일에는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물리쳐 대첩을 하여 사기가 충천, 호남의 농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속리산에 집결한 동학군과 합류 11월9일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대 혈전을 벌인다. 그러나 경군과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압도당한, 더군다나 비가 내려 동학군의 화승(火繩)총에 불이 잘 붙지 않아 대패를 하여 11월15일 전봉준은 논산, 은진 황하대 전투에서도 또 다시 패한다. 11월 25일 동학군의 마지노선인 원평,금구, 태인에서 일군, 관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패하고 만다. 녹두장군은 후일을 도모하기위해 순창 피노리에 피신 중 그의 휘하인 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3일 피체되고 만다. 녹두장군은 12.12일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공사관에 갇혀 자국인이 아닌 일본인에게 공초를 받게 된다. 1895년 을미년 2월9일 1차 심문과 3월10일 5차에 걸쳐 심문이 있은 뒤 음력3월29일 붉은 동백꽃이 뚝뚝 져가는 봄날에 41세의 나이로 큰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을 안은 채 손화중,최경선,성두환,김덕명, 김개남(부관참시) 동지들과 함께 최후를 맞으며 시 한수를 남겼다.

‘時來天地皆同力 (시래천지개동력) 때가 와서는 하늘 땅 모두가 힘을 보태더니
運去英雄不自謀(운거영웅불자모) 운이 떠난 영웅은 자신도 구할 수 없고나
愛民正義我無失(애민정의아무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에 내 허물이 없었거늘
爲國丹心誰有知(위국단심수유지) 나라 위한 붉은 마음 그 뉘 알리랴? 란 시한 수를 남기고  행복한 파랑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 먼저 간 수운(水雲) 곁으로 순도 환원(還元)한다.’

척양척왜(斥洋斥倭) 서양 오랑캐와 왜놈을 몰아내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고 사람이 사람 대우받는 인내천(人乃天),사인여천(事人如天) 즉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민주적인 사상에 의한 동학혁명 이념정신은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해방된 지 70년, 이 땅은 외세로 인해 남북이 갈라져 동족 간에 으르렁대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예전과 별 다름 없는 국제정세이다. 2차 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은 사과는 커녕 제국주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언제 또 독도분쟁을 빌미로 침범해 올지 경계는 물론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한국이 11대 경제 대국이라 자랑은 하지만 OECD국가 중 자살 1위라는 불명예와 행복지수 꼴찌라는 현실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음을 위정자들은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며 독립자금을 뒷받침한 천도교, 불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서울의 S교회의 지도자가 유물주의에 빠져 35억 탈세를 하는 등 타락한 종교집단들은 세속적인 권력과 돈이란 우상에 빠져 그 빛을 잃어가고  있음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라와 민중을 위한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새 정부가 들어서 적폐청산과 개혁의 의지는 예전의 동학민중이 원하던 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인재(人災)사건의 책임자를 색출, 처벌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을 위로해야 마땅하다. 일개 여인의 치마폭에 망해갈 나라를 구한 100만 민중의 촛불은 120년 전 동학민중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들로써 가냘픈 촛불은 꺼지지 않고 큰 횃불로 훨훨 타오르기만을 8천만 남,북 민중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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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15 [17:30]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