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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사상(中華思想)을 제대로 이해하라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4/23 [07:25]

중화사상(中華思想)이란 중국의 민족사상을 가리킨다. 중(中)은 < 가운데 중 >이며 지리적·문화적으로 '중앙'이라는 뜻이다. 화(華)는 < 꽃 화 >이며 중국의 '뛰어난 문화'를 의미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말이다.

중국 사람은 스스로‘중화(中華)’라 부르면서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한다.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중화주의(中華主義)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중화사상(中華思想) 바람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화주의(中華主義)와‘중화민족 부흥’을 꺼내 들었다. 마오쩌둥의 반열에 오른 시진핑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 부흥의 마지막은 중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당당히 선포했다. 시진핑은“1840년 아편전쟁 이래 줄기차게 고난의 길을 극복한 결과‘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목표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애국주의·중화 민족주의의 기초 하에 전 국민이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해‘소강사회’진입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짧은 연설 가운데 무려 여섯 번에 걸쳐‘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는 21세기 G2시대 중국을 설명할 수 있는‘살아 있는 사상’이 됐다는 의미다.

과거 한민족이 황허(黃河) 강 유역에서 농경생활을 하면서 문명을 개척했다. 당시 그 주위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한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런데 문화가 무르익은 서주시대(西周時代)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주위의 민족들에 대한 문화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중국의 선민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이민족을 오랑캐로 여기면서 천시했다. 그래서 중화사상을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화이(華夷)의 화(華)는 < 꽃 화 >로 중국을 가리키며, 이(夷)는 < 오랑캐 이 >로 중국 주변 나라를 가리킨다.

중국과 그 주변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화이(華夷)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이민족의 침입이 심해 그들을 한민족 공동의 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중화의 문물·제도를 지키고자 양이(攘夷)를 부르짖은 것이다. 양이(攘夷)의 양(攘)은 < 물리칠 양 >이고, 이(夷)는 < 오랑캐 이 >다.

< 오랑캐를 물리친다 >라는 의미다. 중국은 이미 춘추전국 시대인 진(秦)·한(漢) 시대에 걸쳐 중화사상으로 나라를 구별했다. 천하는 덕이 높은 중국의 천자가 모든 이민족을 덕화하고 복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 사상인 주자학(朱子學)을 강화했다.

중국의 고대 경전인 주례나 상서에는 주나라의 왕도 즉 낙양으로부터 400킬로미터 사방을 왕성의 범위로 생각했다. 그 바깥쪽은 오랑캐의 세계로 여겼다. 오늘날 티베트나 신강위구르 자치구 그리고 요동은 중화에 해당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만주족(滿洲族)이 중국을 통치하며 청나라가 건국되기도 했다. 서양 제국과의 외교 교섭을 피하면서 서양 문화의 수용을 저해했다. 그러나 차츰 서양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고, 왕조체제의 붕괴와 함께 기존의 중화사상은 사라졌다.

그러나 20세기 이래로 중국 내부에서 다수의 한족과 지배받는 나머지 소수민족이 갈등 관계에 놓였다. 실제로 2008년 티베트 소요 사태 등을 맞았다. 그러나 중국은 21세기 국제 정세에 맞게 중화사상을 유화하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화사상이란 말의 유래를 전혀 달리하는 주장도 있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20세기 이후 탄생했다는 것이다. 중화사상이란 말에 마치 오랜 역사가 깃든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중국이라는 명칭은 신해혁명(1911년) 때 청조를 타도하고‘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뒤부터 사용됐다.

그 전에는 송국, 원국, 명국, 청국이라 불렀다. 중국은 이민족을 통치할 때는 개방과 포용으로 국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한족 중심주의를 내세우면서 잦은 외침으로 국력이 쇠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민족의 통치를 불러왔다.

중화사상이란 중화민족의 자부심이라기보다는 오랜 이민족의 지배에 대한 반발심과 굴욕감을 드러내는 말일 수도 있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이민족의 권력 투쟁이 반복적으로 전개된다. 중화사상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중화사상이라는 단순한 이념으로 통치하다보니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중화민족’을 표방하는 것은 몽골이나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를 고려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

한족 중심주의가 아니라 이민족에 의한 국제주의로 통치된 시대야말로‘중국’이 가장 번창했던 시기다.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했던 수와 당은 한족이 아닌 탁발·선비계의 나라였다. 실크로드로 번성한“당이 국제적인 대제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실력이 있으면 민족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등용하는 관용”이었다.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몽골(원)은 몽골제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게 실상에 가깝다. 청 역시 만주인 왕족이 몽골인과 함께 지나 지역을 통치한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였다. 진시황이 흉노족 등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도 중화세계의‘폐쇄의 상징’일 뿐이다.

중화사상은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사상이다. 결국 중국이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한층 더 발전을 이룰 가능성을 묶는 족쇄다. 21세기에 세계를 이끄는 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과거 당·원·청같이 다른 민족, 다른 문화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중화사상이란 과연 중국인의 자존심을 이르는 말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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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23 [07:25]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