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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5/18 [07:33]
1987년에는 전두환의 독재와 공안정권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학생과 시민의 격렬한 시위가 자주 있었다. 그때의 학생과 시민의 정의감, 열정, 그리고 희생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그로 인해 공무원이었던 우리는 비상근무가 참 많았었다. 그해 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시위로 인해 비상근무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길이었다. 전주에 사는 직원 4명이 김제에서 택시를 같이 타고 오면서 중화산동에 살던 내가 제일 먼저 내렸다. 출발하기 전에 남편에게 11시까지 마중 나오라고 전화를 했었는데 택시에서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차에서 내려 500m 이상 골목을 걸어가야 했다. 너무 늦은 밤이라 무서웠지만, 잠깐이니까 그냥 가볼까 하고 깜깜한 골목길을 50m쯤 걸어갔을 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보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예감이 이상했다. 난 뒤돌아서 그들과 마주하고 걸었다. 여차하면 50m 앞에 있는 약국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려고 그들을 살피며 걸어갔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나를 그냥 지나쳤다.

 

  약국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집에 연락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까 그냥 뒤돌아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시 50m쯤 걸어갔을 때였다. 그들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나를 담벼락으로 밀치더니 가지고 있는 돈 다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내가 망설이자 그들은 공터로 끌려가서 맞아 보려고 그러느냐며 30cm 정도 되는 막대기를 휘둘렀다. 내가 서 있는 담벼락은 마을 초입에 있던 공장이었고 공장 맞은편에 공터가 있었다.

 

  내가 핸드백에 손을 넣는 순간 신문지로 싼 120만 원 현금다발이 뭉툭하게 손에 잡혔다. 그날 낮에 돈이 필요해서 은행에서 찾은 돈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까워서 그 돈은 내놓을 수가 없어 다시 가방 속을 뒤지니 조그만 수첩이 잡혔다. 나는 평소에 그 수첩 양쪽에 현금을 넣어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 수첩을 꺼내서 한쪽에서 만 원권, 다른 한쪽에서 오천 원권과 천 원권을 꺼내서 그들에게 주니 호주머니에 있는 것도 내놓으라고 했다. 양쪽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이 더 나왔다. 모두 합하면 5~6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돈으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앞에 가면 우리 친구가 또 있을 테니 만나면 이미 털렸다고 얘기하면 된다고 엄포를 놓고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몸이 덜덜 떨리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휘청휘청 쓰러질 듯 겨우 걸어서 우리 집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마을회관 앞까지 갔다. 회관 문을 세차게 두드리자 주무시던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셨다. 자초지종 얘기를 하며 도저히 집까지 갈 수가 없다고 말하니 할아버지가 나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자고 있었다. 나의 전화를 받고 20분 정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잠깐 누워 있다 나가려고 했던 것이 깜빡 잠이 들었단다. 남편은 내 사정 이야기를 듣자마자 차를 몰고 나가 동네 골목을 다 뒤졌으나 그들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파출소에 신고해서 경찰이 며칠간 잠복근무도 했었지만, 그 뒤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경찰차를 공터에 주차하고 단속하고 있으니 나올 리 만무했다.

 

  나는 그들이 내 핸드백을 직접 뒤지지 않고 나에게 내놓으라고 한 덕에 다행히 120만 원은 건졌지만, 그리고 큰 봉변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노이로제에 걸렸다. 깜깜한 밤길은 무서워서 혼자 다닐 수 없었다. 대낮에도 길에서 그만한 아이들을 보면 무서워 움찔거렸다. 그리고 버스를 탔을 때 내 주위에 또 그만한 아이들이 있으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곤 했다. 그런 스트레스가 3년 이상 갔다.

    1987년, 그때 나는 공무원이라 대놓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위하다 다친 사람들이 온몸에 뒤집어쓰고 온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상처를 처치했던 비상근무의 추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외쳐대던 그때가 작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촛불집회와 오버랩되어 떠올랐다./최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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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8 [07:33]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