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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중국의 패권주의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6/10 [13:19]
 

요즘 중국이 심상치가 않다. 중국이 한족(漢族)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당나라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팽창주의와 덩샤오핑의 내실화에 이어 시진핑은 내실화와 팽창주의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는 마오쩌둥에 이은 제2의 팽창주의의 시발점이다. 대륙을 넘어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초석이다. 한반도 북쪽에는 옛 고구려 땅인 북한이 있다. 중국은 1300년 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한 한반도 땅의 절반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티베트는 미국, 러시아, 그리고 인도의 국익과 관계가 없어서 별 문제가 없다.

티베트 침략과 서북공정도 패권주의라고 질타할 강국들이 아예 없다. 그러나 동북공정은 전혀 다른 문제다. 노골적인 패권주의다. 중국의 패권주의는 2천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 중화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오랑캐인 사방의 모든 주변국을 군사로 짓밟은 후 아예 복속시켜 버렸다.

군신관계를 맺어 중원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중화주의다. 한문과 유교로 정신적인 신하로 만드는 것도 중화주의다. 중국은 베트남 통일 후 패권주의의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참담하게 패하고 말았다. 동북공정에는 몽골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북한, 다음에 몽골, 이어서 한국을 제2의 티베트로 만드는 것이 중국의 100년 계획 즉 동북공정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영토 패권주의다. 만주는 고대 한국사의 무대다. 동북공정은 현재 조선족이 거주하는 만주의 동북 3성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만주와 한반도를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고조선사, 고구려사, 대진(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뽑아내는 작업이다. 특히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사는 2000년으로 줄어든다.

지리적으로는 한강 이남의 영역으로 아주 미약한 영역을 가진 나라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의도가 짙은 영토 패권주의다. 중국은‘사이(四夷)’즉 남만(南蠻),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민족에 대한 우월적 지위와 패권적 지배를 정당화했다.

이는 모두‘중화주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3위에 영토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 영토는 넓지 않다. 미국이 동서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동쪽에만 바다와 접하고 있다.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다.

그래서 중국은 센카쿠열도를 시작으로 최소한 오키나와까지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한다. 중국의 패권주의는 한반도의 운명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는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모두 중국을 경계했다.

김정일은 유언에서“중국을 믿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덩샤오핑은 죽기 전 후진들에게“소수민족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1억 명 전후의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며 발전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다. 거대한 영토를 지키고 중화족의 영원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1949년 중국은 평화5원칙을 발표한다. 이 원칙은 영토 주권의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 호혜, 평화적 공존 등이 들어있다. 이는 반패권주의와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면서 미국과 소련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1954년 인도와 이를 공식화하고,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비동맹국가들이 평화10원칙을 채택하게 된다.

이 때 중국은 제3세계의 맹주 행세를 하면서 평화5원칙을 거기에 모두 집어넣는 데 성공한다. 평화5원칙은 미국과 소련에게 제발 침략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해 놓고 대만을 공략할 계획을 차근차근 세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대만 침공 계획에만 골몰했다. 중공군의 주력군은 대만 맞은 편 복건성에 집결해 있었다. 만약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부산까지 내려갔거나,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실패하여 압록강에 이르지 못했다면, 중공군은 대만상륙작전을 감행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김일성이, 나중에는 맥아더가 대만을 살려 준 셈이다. 그 뒤 중국은 반패권주의, 반제국주의를 들고 나왔다. 이는 미국과 소련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침략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은 주변국에게 패권주의를 추구했다.

주변국이 이에 항의하자 오히려 내정간섭이라고 일소에 붙였다. 중국이 제일 먼저 집어삼킨 것은 신강(신장)과 내몽골, 그리고 한반도 6배 크기의 티베트(토번)이다. 이 중에서 티베트가 가장 독립성이 강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티베트 국민들에게 악몽이었다.

1989년 이들은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훗날 국가 주석인 된 호금도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 후 중국은 서북공정이라고 하여 신강과 티베트 등을 중국의 역사로 완벽하게 편입한다. 중국이 그 다음에 착수한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만주에서 일어난 요와 금만이 아니라 발해와 고구려까지 중국 역사에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패권주의'는 강대한 군사력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말한다. 당초 중국이 비난하면서 나온 용어다.

본래 패권이란‘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권력’이라는 뜻이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중국이 비난하면서 나온 용어다. 국제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비난한 1968년 중국 신화사 보도였다.

그 후 1972년 미·중 공동성명(상하이 공동성명)에서 영문표기 헤게모니(hegemony)를 중국신문은 패권주의로 표기했다. 그 해 중·일 공동성명에서도“중국, 일본 양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패권을 확립하려는 여하한 국가의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하였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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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10 [13:1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