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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7/09 [06:45]

갈수록 미중 간의 대결이 심각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동북아시아의 불안은 한반도에 있다는 점이다. 이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두고 대타협을 할 수도 있다.

한반도를 완충지역으로 중국과 미국 일본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중 간의 검은 그림자는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동아시아의 중심도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역학관계가 역전되고 있다. 세계 판도도 변하고 있다.

"미중 역전"이 아니라 "미중 대등화"라는 분석이다. 미중 대등화는 패권 다극화의 일부다.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미국과 영국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군사면에서도 세계 최강의 미군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중 국채 대결도 주목된다. 중국은 1조1600억 달러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미중위기」가 발발했을 때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이 압력을 받았다. 코카콜라가「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음료」라는 선전이 중국 에 번진 것이다.「미국 정부」에의 대항이「미국 기업」을 타켓으로 한 셈이다.

미중 양대국 사이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신장 위구르의 독립을 지원하는 운동을 일으킬 준비를 보이는 등 미국과 보조를 같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중국 다음으로 세계 제2의 대미 채권국이다. 중국과 보폭을 맞추어 미국을 비난해야할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는 어떤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 2010년 미중의「주격전지」는 동지나해였다. 미국이「대만해협을 방어」하고자 대만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판매를 결정했다. 이어 한국군의 초계함「천안함」이 격침되었다.

미국은「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동지나해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센카쿠쇼토우(尖閣諸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이 격돌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곳을 방위하기 위해 대규모 미일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군사 예산을 해군에 집중했다. 항공모함의 건조를 서두르는 한편 외교 전술을 구사해 미국에 대항했다. 이 문제는 일본에 있어서 단순한 일중간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지나해의 이권을 둘러싼「미중 양대국의 국가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는 다시 남지나해로 이동했다.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남지나해의 영유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가 지속적으로 발발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대 중국」의 국제 문제로 발전시키고자 계획했다. 실제로 발리 섬에서 있었던 ASEAN 외상 회담에서「중국은 ASEAN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다」라는 분위기 조성에 성공했다.

원래 ASEAN은 1961년에「공산권의 확대 방지」를 목적으로 미국이 주선자로서 만들어진 것이 시작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 → 중국 → 베트남으로 넓어지는 공산화를 막기 위해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의「친미 3개국」을 모아「반공산권동맹」을 만들었다.

미국이 베트남과「공동 군사 훈련」을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미군은 필리핀에서도 1992년에 철수했다. 그러나 다시 합동 군사 훈련을 부활시켰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이 ASEAN을 방문하면서 선언한「아시아에의 회귀」라는 것은 바로「중국 포위망」인 셈이다.

중국은 군사력이 아닌 주변국가에『경제 포위망』을 만들어 대항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주변 국가는 거의『중국이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다. 경제적인『중국 의존도』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ASEAN과는 2010년에 FTA(자유무역협정)을 발효시켰다.

이는 주변 국가에 대해 중국이 미국보다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부시 대통령 이후, 달라이 라마를 백악관에 초대하면 그 후 6개월간 미중관계가 악화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미국은 신장 위구르 독립이나, 내몽골의 분란도 모두 중국이 뒤에서 조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 중국은 유럽보다 경제력이 강했다. 중국은 당시의 세계 수준으로 생각하면 대 선진국이었다. 그 때문에 서구에서 중국은 잠재력이 있는 사자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자고 있기 때문에 약하지만, 깨어나게 되면 대단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을 "잠자는 사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굴욕의 100년」을 경험한다. 중국은 19세기 청나라 말기부터 2차 대전 후(중공 성립)까지 매우 약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열강에게 지배되는 나라였다. 중국은 1949년 중공이 들어선 후 한국전쟁, 중소 대립, 대약진 운동 실패, 문화 대혁명 등 국력을 소모시키는 사건이 연속 이어진다.

그 뒤 1972년 닉슨 방중(미중 화해), 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와 개혁 개방정책의 시작을 거쳐 경제 발전의 궤도에 올랐다.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몇 년 간 선진국에게 경제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1997-19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는 위안화의 폐쇄적인 환율제도 덕분에 이를 잘 극복했다.

2007년 이후에는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에 휩쓸리자 미국 국채를 계속 매입해 최대 보유국이 되었다. 중국은 앞으로 미국을 대체해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대소비국이 될 수 있다. 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 경제력의 원천은 채권이나 파생상품 등과 같은 금융의 힘이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의 금융 위기로 미국과 영국형 금융 시스템은 파탄에 이르렀다. 부활할 가능성도 낮다. 양적 완화로 연명할 뿐이다. 중국 등 경제 신흥 국가들은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경제력을 키우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역전이 진행되는 일이다. 잠자는 사자가 드디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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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09 [06:45]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