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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갈등의 문제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7/11 [17:31]

남남갈등(南南葛藤)은 남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념적 갈등을 말한다. 민주적인 사회에서 의견 차이를 무조건 남남갈등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남갈등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계층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국론 통일'을 목적으로 한 가지 가치만을 강요하면 안 된다. 새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특정 이슈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특정 정치집단이 다른 집단을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안 된다.

남남갈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사회는 단지 정권 야욕을 앞세운 정파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들에게는 보수의 가치도 진보의 가치도 없다. 정파 중심의 내편과 네 편만 존재한다. 생각보다 심각한 남남갈등이다.

보수와 진보는 같은 크기로 존재해야 한다. 때로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그 도를 넘어섰다. 정권 창출과 유지만을 목표로 만들어진 가짜 이념과 사상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통일의 문제 그리고 대북 관련한 문제는 이념과 사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이념과 사상의 덫을 걷어 버려야 한다. 남남갈등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광복 후의 70년 역사만 봐도 남한을 이루는 국민의 색깔은 다양하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친일파, 친미, 국수주의, 독립투사 등 다양하다. 그런 세력들이 지금도 서로 집단을 이루어 죽기 살기로 대립하고 있다. 광복과 더불어 남북이 분단되던 때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흑백논리의 정점이다.

당시 남한에서는 친일파가 처단되지 않고 온전히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북한에 있던 친일파들이 대거 월남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월남한 것이다. 그리고 친소(親蘇)도 고개를 들었다. 결국 많은 공산당원과 남로당원들이 남한에 내려왔다.

친미파와 친일파는 그들을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그 뒤 한국전쟁이 터졌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에서는 극한 갈등과 대립의 사건들이 계속 터졌다. 제주 항쟁과 여순반란 사건 등 모두 이면에는 그런 동기와 배경이 있었다.

남한은 온갖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색깔별로 집단을 만들어 갈등하고 대립했다. 이승만 정부는 그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를 택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민주의 씨앗에 먹칠을 하면서 국가를 불행에 빠뜨린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함께 사는 사회를 건설하지 못하고 승자만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한국식 자유 민주주의」를 만든 것이다.

그 뒤 갈등 구조는 사회 모든 곳에서 나타났다. 영남의 보수, 호남의 진보로 양분화 되어가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지역별 남남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전통과 개혁의 갈등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여건과 조건, 그리고 환경에 의해 이념이 만들어진다. 영남지방에 뿌리를 두고 태어나면 이유도 없이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가지게 된다. 호남지방의 영향을 받아 태어나면 진보적 성향의 이념을 가지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이나 사회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에서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여전히 영남의 보수주의자들이 장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갈등의 요소는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이를 우리 사회에서는 적폐 세력이라 부른다.

언론 적폐, 경제계 적폐, 학계 적폐, 사법 적폐, 정보권력 적폐 등이 대표적이다. 적폐는 대통령이 몇 번 바뀌어도 제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 보수는 사실상 없다는 지적도 많다. 전통과 역사를 지키기 보다는 정권과 우상화 된 개인을 지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기득권 세력을 지키려는 자세로 무장되어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다 보니 변화를 두려워한다. 물론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적폐에 의한 문제는 걷어내야 미래를 보장 할 수 있다. 기득권만 지키다 보니 갈등 요소가 만들어진다.

노사갈등도 마찬가지다. 화이트칼러와 블루칼러의 대립은 자칫 경제를 망칠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친미와 반미의 갈등도 심각하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 갈등도 생겨났다.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종 간의 차별갈등도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관계도 험해지고 있다. 교육 갈등과 분배 갈등,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도 제기된다. 이 밖에도 많은 부분이 내면에서 부딪히며 양극화를 일으킨다. 양극화된 내부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사실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쉽게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여당과 야당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북한이라는 적을 전제로 대치하고 갈등한다. 어느 사회든 어느 나라든 내부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정치 갈등은 매우 흔하다. 여당과 야당의 갈등 혹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혼란한 정치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때로는 내부에서 힘을 합쳐야 외부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한국은 현재 정치구조와 지역구조 그리고 세대구조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이념의 틀에 갇혀 허우적거려서는 안 된다. 사회는 정의와 불의로 재단되어야 한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행태가 올바른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탈이념, 탈종교, 탈지역이 중요하다. 이념이나 개인의 종교 그리고 지역에 볼모로 잡혀서는 안 된다. 남남 갈등에서 벗어나자. 참 보수는 진보를 인정하자. 진보는 참 보수를 인정하자. 갈등구조가 아니라 사회 진화를 위해 서로 보완하고 견제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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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1 [17:3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