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을 진단한다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대법원 사법농단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08/08 [16:54]



사법정의가 바닥까지 추락했다.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실상이 드러난 대법원 공개 196건의 문건은 대한민국의 근간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그들의 실체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문건 속에는 법원행정처가 자신들의 숙원과제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의 재판거래는 물론 국회, 언론에 대해 전방위 로비를 자행한 사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판관으로서의 정의감이나 공명심, 심지어 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재판을 흥정거리쯤으로 여기는 법관들은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사사건건 영장기각으로 맞서고 있다.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심판을 맡겨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당초 이 사건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하면서 청와대와 특정 사건을 두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이런 일을 법원행정처가 앞장서서 조직적으로 했다.

대법원장를 필두로 법원행정처 소위 엘리트 판사라는 자들이 사법부를 통째로 권부에 헌납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헌법 유린이다. 이는 사법부를 둘러싼 사악한 정치 환경이 만들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9년 보수정권이 만들어낸 결과다.

양승태에 의해 제청되는 대법관들은 대부분 법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수십 년 간 사법귀족으로 길들여진 자들로서 자신의 컬러가 없는 자들이다. 간간히 소수자 약자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의외의 인물이 대법관에 발탁되었지만, 그것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그들에게서 그 어떤 가치도, 용기도 바랄 수가 없었다. 원래 대법원은 하급심과 다르다. 전원합의체 13명, 소부 4명의 대법관들 모두가 완벽하게 독립된 지혜의 기둥이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을‘지혜의 9개 기둥’이라 부른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에선 그것을 바랄 수가 없었다.

양승태의 제청에 의해 대법관이 된 사람들은 독립한 대법관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지휘 감독을 받는 부하 판관들이었다. 대법원장과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것을 바랄 수 없었다. 양승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급심의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만일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임명된 대법관 중 단 몇 명이라도 대법원장의 그런 의도를 간파하고 내부적으로 반대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대법관들은 이번 사법농단의 공범들이다.

민주주의, 권력분립 및 법관의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는 대법원장이 임명된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는 경우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헌법은 아예 대법원을 대법원장과 대법관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그 수직적 서열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법원장은 그냥 대법원의 수장이 아닌 제왕적 대법원장이다. 전원합의체는 이론상 누구나 지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법원은 그렇지 못하다.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없다.

헌법을 바꾸어 대법원장을 대법관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대법원장에게는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 대법원을 수평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법행정권은 법관들의 관여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순수 사법 지원조직으로 전면적 개편을 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책임자에 대한 수사·처벌, 피해자 구제를 위한 '사법농단 특별법' 발의가 준비되고 있다. KTX 승무원 해고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 사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법원행정처 문건에 사법부의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제시된 소송들과 법원행정처가 판사 모임 등에 대해 사찰한 의혹 등이 대상이다.

한편 대한민국에는 대법원장 2명에 국무총리 1명, 대법관 17명, 헌법재판관 3명을 배출한 엄청난‘서클’이 있다. 바로‘민사판례연구회’(민판련)다. 이 서클은 애초 순수 학술 모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세력으로 변모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 14명 가운데 무려 8명이 이 모임의 전·현 회원으로 채워진 적도 있다.‘사법 농단’의혹의 중심에 이 모임 전·현직 회원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 사태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당 기간 민판련 회원으로 있다가 탈퇴했다.

당시 양 대법원장을 비롯해 8명의 현직 대법관이 민판련 전·현 회원이었다. 전원합의체에 참여하는 대법관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다. 판결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숫자가 민판련 회원들로 채워졌던 셈이다. 법원행정처는‘민판련=대법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국의 사법행정을 책임져야 할 법원행정처는 특정 연구모임의 운영 방식을 대신 검토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대법관·감사원장을 지낸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모두 회원이었다. 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김앤장의 대표변호사, 전 국제형사재판소장도 모두 민판련 회원들로 꼽힌다. 민판련은 1977년 한국 민법학계의 대부로 평가받는 고 곽윤직 서울대 법대 교수와 그 제자들이 만들었다. 꾸준히 발간해온 학술지 <민사판례연구>는 올해 제40집을 낼 정도로 질과 양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명단을 처음 공개한 2010년 이전에는 폐쇄적으로 모임을 운영한 탓에‘사법부의 하나회’로 불리기도 했다. 신입회원은‘서울대 법대·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성적 최상위권’을 동시에 충족하는 현직 법관 가운데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 선별 입회시켰다. 이 인맥이 사법부 요직에 두루 자리 잡으면서 막강한‘파워 블록’을 형성했다.

(정복규 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8/08 [16:54]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