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염전 노예 사건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8/29 [20:20]

어느 염전 노예 사건

새만금일보 | 입력 : 2018/08/29 [20:20]



지난 2014년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 섬에서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터지면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곳에서는 약취∙유인, 인신매매, 임금체납, 중노동, 폭행, 감금 등이 자행되었다. 염전 지역 장애인 인권 침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염전 지역에 근로하는 대부분의 염전 종사자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직업소개소를 통한 경우가 가장 많다. 역전 등지에서 노숙하다가‘돈을 벌러 가자’등의 직업소개소 직원의 권유에 따라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후 직업소개소에서는 염전과 연결되기 전에 연계된 여관 등지에서 머물며 숙식비, 유흥비 등을 과도하게 지출하게 한다.‘선불금’이라는 명목으로 염전주에게 선불금과 소개비를 받아 일부를 넘긴다.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

그 뒤 이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을 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도 없다. 매월 정기적으로 최저 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사람도 없다. 염전일 이외의 추가적인 근로를 제공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근로의 대가는 염전주가 대부분 취득한다.

탈출을 시도한 피해자의 경우 주로 이웃 주민의 신고로 탈출에 실패하게 된다. 염전으로 복귀한 피해자들은 염전주에게 강도 높은 폭행과 협박을 당한다. 염전 장애인들은 하루에 단지 5시간의 수면을 취하며 쉼 없이 노동한다.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도 받지 못한다. 인권 침해는 사소한 실수라는 말로 둔갑한지 오래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대한민국의 염전 노예들은 아주 먼 곳에서‘살려달라’는 절규를 담은 편지 한 통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참상을 알릴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매우 많다. 정미소에서 10여 년간 일한 김모씨(지적장애, 남성)는 정미소의 일과 사장 소유의 밭일, 가축 사육 등 온갖 일을 강요당했다. 정미소 사장은 임금을 주지 않았다. 창문도 깨진 컨테이너에 더러운 매트리스 하나만 달랑 둔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정미소 사장의 아버지는 김씨에게 귓밥이 뭉개지고 이빨과 팔이 부러질 정도로 폭력을 휘둘렀다. 정미소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김씨의 출입을 감시했다.

길을 잃은 박모씨(당시 10대 초반, 지적장애, 남성)를 데리고 온 집주인은 40여 년 동안 집주인의 농사를 강요당해왔다. 집주인은 임금을 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박씨를 다른 집으로 보내 품팔이해서 받은 돈까지 챙겨왔다. 집주인은 40여 년이나 일을 시킨 박씨에게 교육은커녕, 주민등록조차 만들어주지 않았다.

정신질환이 있는 김모씨(정신장애, 여성)는 11년 전 남편 사망 후 신도의 소개로 절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다. 절의 큰 스님은 김씨에게 절의 농사와 집안 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임금도 주지 않고 강요했다. 김씨의 수급비는 큰 스님 명의의 적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성장한 이모씨(지적장애, 남성)는 10대에 보육원에서 나와 일정한 주거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김모씨(여성)를 만나 형수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김씨는 이씨의 정부보조금 통장을 빼앗아 이씨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이 씨에게 하루 최소한 6만 원 이상 구걸해 오도록 시켰으며 6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가지고 오면 여지없이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

도서 지역이나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장애인 착취∙학대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노예 장애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경찰은 주먹구구식 수사에 그친다. 일제 점검과 같은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 그치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무죄 또는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준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을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보살펴주는 선한 사람들이라는 기본 인식이 강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실수’할 수도 있고,‘오죽했으면 때렸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폭행은 훈계 또는 교육 차원으로 행한 것이어서 큰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장애를 이유로 학교 친구나 이웃에게 폭력을 당하고, 노예와 같은 노동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를 이유로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신체적·정서적 폭력과 학대, 비인간적 생활환경에 방치, 노동력 착취, 정부보조금 횡령 등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심지어는 생명에 지장을 줄만큼 심각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12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2개 단체는 대구시청 앞에서 S시설에 대한 법인설립허가 취소는 물론,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촉구했다. 지적장애 3급 거주인 손모씨(1971년생)는 1994년부터 21년간 대구시 북구에 위치한 S시설에서‘노예’로 살아왔다.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총 15시간 동안 죽은 닭 수거 및 폐기, 운동장 청소, 잔반처리 등 강제 노동을 당해온 것이다. 하지만 손씨에게 주어진 급여는 월 1~5만원 내외에 불과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이 같은 내용의 대구 S시설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거주인에 대한 작업 강요, 금전 부당 사용, 무연고 사망 거주인의 유류금품 부당처리, 시설 보조금 유용 등까지 모두 드러났다.‘복지’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장애인 인권 유린이 수면위에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직권 조사 결과를 통해 관할 청장인 북구청장에게 특별지도점검 실시, 업무개선, 행정조치 등을 권고하는데 그쳤다. 앞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S시설에 대한 작업강요, 노동력 착취 등에 관한 제보를 접수해 인권위에 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직권 조사 결과는‘실망’그 자체였다. 심각한 인권 침해와 비리를 확인했는데도 유야무야로 끝을 맺었다. 손씨에 대해 시설 내 보호 작업장으로 근로계약을 맺고 이전시켰다는 점, 금전을 다시 돌려줬다는 점 등을 감안해 어떠한 징계도 없는 권고에 그친 것이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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