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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준 행복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10/02 [10:28]


  해마다 여름이면 폭염, 열대야, 무더위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원한 산과 바다를 찾는다. 헌데 올 여름에는 산과 바다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를 이겨내지 못했다. 불덩이가 대지를 달구니 속수무책이었다. 기상관측 이래 ‘111년만의 폭염'이라며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과 과일로 수분을 보충하라고 날마다 방송했다. 111년이라면 내가 태어나기 전이 아닌가?
 그때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을 텐데 선조들은 어떻게 폭염을 이겼을까? 선조들의 지혜가 궁금했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도 온열 질환자가 3천4백 명이 넘고 사망자는 42명이라는데 말이다. 닭 350만 마리를 비롯해서 373만 마리의 가축이 최악의 폭염에 속절없이 죽었다고 뉴스는 전했다.
 8월 들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세상은 온통 폭염과의 전쟁이다. 대지가 찜질방 같다. 나는 모자를 쓰고 양산을 받으며 단단히 햇빛을 차단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도 금방 얼굴이 익을 것 같았다. 등줄기에서 땀이 고랑을 타고 흘렀다. 허리가 활처럼 굽은 할아버지가 우산을 받고 길을 걷고 있었다. 뒷모습을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할아버지, 비가 오지 않아요.”
 “하늘에서 비보다 무서운 불이 쏟아집니다.”
 이런 여름 더위는 처음 본다며 조심하라고 일러주셨다.
  그 뒤로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내가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선배시민대학, 인문학 강좌, 시․수필 강좌를 포기했다. 나는 동창회 모임 등 5곳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처음에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노년이 되니 글을 쓰는 나에게 총무 직책을 맡겼다. 사상 최악의 폭염에 이달은 쉬자고 하니 서슴없이 따라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가족나들이 여름행사도 폭염으로 자녀들만 떠났다. 충남 태안군에 ‘솔푸른향기펜션에 여장을 풀었다.’며 베베와 포리를 안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정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스마트폰 사진을 영상으로 보내준다.  사람과 개가 함께 여름피서를 즐기는 모습을 보노라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변하는 세상에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살인적인 가마솥더위가 내발을 묶어놓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조용한 침묵,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 수많은 사연들이 가슴을 적신다. 하늘이 열리고 햇빛이 쬐인다. 덥다 더워!  
 에어컨과 선풍기의 시원함에 세상사 다 잊어버리고 거실에서 큰대자로 누워있다. 역시 집이 최고 피서지다. 참 좋다. 그때 카톡 카톡 소리가 났다. 부모 직장 따라 홍콩에 사는 5살 된 손녀 아린이가 ‘한국은 불볕더위라면서요?’하며 스마트 폰에 물총을 쏘아준다. ‘고모할머니 시원해? 응 시원해!’ 참 예쁘고 귀엽다. 고모할머니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벌써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도 33년이 되었다. 자녀들은 새 둥지를 찾아 떠났다. 오랜만에 자녀들이 쓰던 방에 들어갔다. 한때는 귀염을 받던 흔들의자, 발마사지, 유산소운동 기구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모퉁이에서 나를 보고 있다. 깨끗이 닦아 거실에 놓았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라 했던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년의 외로움은 암보다 무섭다고 했다. 집에서 운동하며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폈다. 나는 늦깎이로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자식들이 떠난 방에는 문우님들이 보낸 수필집으로 가득하다. 젊었을 때 갖고 싶었던 서재에 들어서면 배가 부르다. 그동안 수필집을 보낸 문우들에게 수필을 읽고 독후감도 보내며 정을 나누었다. 하느님을 만난 지 반백년이 넘었건만 구약․신약 필사는 이수현 신부님의 부임 숙제로 4년 만에 마무리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성서 통독을 마음먹고 시작했다. 모든 잡념을 잊고 하느님과 함께하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남편은 ‘건강이 제일이다.’며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주었다. 저녁 무렵에는 동네놀이터를 거닐며 더위를 식히는 호사도 누렸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왜 하필이면 당신일까? 귀엽게 자란 외동딸이 가난한 9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와서 고생을 했다.”며 손을 잡는다. 번갯불처럼 지나간 시간이 펼쳐진다. 살다보니 한 순간인 것을…. 남편에게서 위로의 말을 듣는데 50년이 걸렸다. 모기도 폭염이 무서운가 보이지 않는다.
 성서 완독이 끝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남편과 모악산에 올랐다. 언제 이사를 왔는지 활짝 핀 상사화가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기쁨이 샘았다. 나는 모악산에 올라
“폭염아, 고맙다. 아자!”
가을바람이 내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주었다. 성서를 마칠 수 있도록 밤낮으로 함께해준 에어컨, 선풍기, 흔들의자 에게도 수고했다며 푹 쉬고 내년 여름에 만나자며 덥개를 씌워 주었다. 이번 여름은 불볕더위가 나를 뒤돌아 볼 수 있게 했으며 하느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갈수록 여름철 기온이 크게 오르고 있다. 지구온난화현상일까? 후손들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연구해야할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금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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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02 [10:28]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