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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성주지맥의 장수 추락봉(상여덤, 714.3m)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백 주교가 피난했던 굴을 품은 산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10/12 [10:31]


▲ 연동서 본 추락봉     © 새만금일보

장수덕유산이 남서쪽으로 뻗어 내리며 성주산(깃대봉), 두문산(압곡봉)을 일으키고 지넷날, 삵봉, 불당골, 방서암으로 뻗어 선경을 이룬 뒤에 서쪽으로 추락봉墜落峰을 일으킨다. 다른 한줄기는 장수덕유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문성산, 작은삿갓봉, 솔개고개를 지나 매봉, 구추봉九推峰, 시루봉(부엉덤이, 범딩이)을 일으켰다.

다시 서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금강산을 연상케 하는 매산송대를 연출했다. 


▲ 추락봉(상여덤,중앙),매계삵다리에서 봄     © 새만금일보

 <<장수의 마을과 지명유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추락봉은 비아골 정상을 가르키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봉우리다. 추락봉은 월현마을 큰골 서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7부 능선 쯤에 백주교 피난굴이 있다. 큰골은 산촌 남쪽 골짜기 전체를 이른다. 월현리 743번 도로에서 산촌교를 건너 1.5km, 계북에서 6km의 거리에 있다. 큰골마을은 북쪽 비탈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피난 온 선교 신부나 신도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서쪽 7부 능선에 백주교와 정신부가 피난했던 굴이 있다. 지금은 8가구가 살고 있다.


▲ 백주교가 피난 했던 큰굴     © 새만금일보

  1697년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로 고찰해본 추락봉의 산줄기는 이렇다.

백두산 백두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북한지역의 두류산, 마대산, 백암산, 오봉산, 금강산 등과 남한지역의 향로봉,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추풍령 등을 거쳐 전북 땅의 삼도봉, 대덕산, 덕유산 백암봉, 무룡산, 장수 삿갓봉, 남덕유산을 지나 장수덕유산에 닿는다.

백두대간 장수덕유산에서 서쪽으로 삿갓지맥과 성주지맥으로 갈라지는 문성산 산줄기를 나누고, 남쪽의 할미봉, 육십령, 구시봉, 덕운봉을 지나 영취산으로 뻗어간다.

문성산에서 북서쪽으로 삿갓지맥을 보내고, 성주지맥은 소비재(수비재), 성주산(깃대봉), 두문산(압곡봉), 깁재(19번 도로), 삵봉 갈림길, 수락봉(타락봉)을 지나서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추락봉(성여덤)을 일으킨다. 그리고 시루봉(천천면 용광리)으로 뻗어간다. 물줄기는 북쪽은 계북천, 남쪽은 장계천을 통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장수군 계북면 월현리와 장계면 금곡리의 경계다.

지리적으로 추락봉의 북쪽은 옥녀봉과 동향의 망치봉이 지켜주고, 북동쪽은 구추봉과 매봉 너머로 시루봉이 다가온다. 동쪽은 계북의 체기산과 꽃봉 너머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흰 구름을 머리에 두루고 있다. 동남쪽은 장계의 진산인 성주산(깃대봉)과 사슴뿔 형상의 두문산(압곡봉), 그리고 장군대좌의 한눈에 잡힌다. 동쪽은 추락봉(타락봉) 너머로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이 용틀임한다. 서쪽은 옥녀봉 너머로 진안 마이산이 하늘금을 그린다. 
  
▲ 추락봉(상여덤) 아래 샘물에서 본 장수덕유산     © 새만금일보

<<한국지명총람>>, <<장수의 마을과 지명유래>>, <<장수군지>>, <<계북면지>> 등으로 살펴본 추락봉 주변의 인문지리는 이렇다.

추락봉 자락에 있는 높은 다랏에서 길게 내려온 산줄기를 돌아 400m 쯤 내려가면 월전月田(달앗, 달밭) 마을이 있다. 월전 마을에서 700m를 내려가면 큰골로 가는 큰골교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 1.5km 쯤 들어가면 비탈에 큰골이 있다.

매산청풍은 장수팔경 중에서 제1경이다. 매산을 매삼덤, 닭벼슬날, 송대라고도 부르는데 산의 모양이 마치 관을 쓴 닭머리(鷄官) 형국이다. 이 산의 동쪽으로부터 지네 날이 이산으로 향해 뻗었으며 양산의 중간에 삵봉이 높이 솟아 흡사 닭과 지네가 싸우는 것은 살쾡이가 말리는 형상이다. 매산덤 열두 굽이를 매천수梅川水 푸른물이 굽이쳐 흐르는데 용바위골 냇가에는 용이 물을 얻어 승천하는 모양의 용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이곳에 호은 김홍로의 행적이 남아 있다. 그는 봄이 되면 쑥떡을 만들어 인근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굶주림을 면해 주고 배고픈 이, 헐벗은 이, 거지 과객할 것 없이 먹이고 입히고 신기고 재워 보내는 적선지가로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걸인 과객들이 푼푼이 동냥한 돈으로 적선비를 세웠 정도였다. 효심 또한 출중하여 출전대효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가 용바위에 용암龍巖이라 새겨놓고 벗들을 청해다가 용바위 푸른 물에 낚시 드리우고 풍월을 읊어가며 유유자적하던 곳이다.

또한 매산송대 암상에 세연대洗硯臺가 있는데 매촌 김홍기, 김순구 등이 시인묵객들을 모셔다가 벼루에 먹을 갈아 놓고 나무와 바위와 물 등이 어우러진 매산의 자연풍광을 시화로 읊조리며 즐겼던 곳이다. 세연대 위로 깍아지른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매송정梅松亭은 매산청풍의 승경이다. 이 정자는 오규성, 김진홍 등 28명이 뜻을 모아 지었다.

풍욕대와 사성정이 있는 월현리 월전마을 주민 정성열 씨에 의하면 수락봉에서 월전마을 방향으로 갈려 나온 줄기에 추락봉(상여덤)이 있다고 한다.

     
▲ 작은굴     © 새만금일보


<문화유적과 명소>
 [백주교 피난굴] 

  장수군 계북면 월현리 산촌 큰골 추락봉(상여덤) 7부 능선에는 백 주교(백인규, 블랑)와 정신부(정미륵, 두세)의 피난굴이 있다. 이곳은 장계본당이 있는 장계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무주방향으로 4km쯤 가면 신촌마을 큰골 뒷산이다. 1879년 5월5일 드게드(최진승) 신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 주교와 정 신부는 정자골(장현)으로 갔다가 큰골추락봉 상여덤에 있는 굴로 숨었다. 그 뒤부터 이굴을 ‘백주교 피난굴’로 불렀다. 이 때 신부들을 보호해 준 교우는 큰골 회장 이성휘였고 식량을 공급해준 교우는 신촌마을 부엉덤이 월현공소 회장 김학수의 조부였다. 그 뒤 백주교는 용담 양명리 처소로 가고 정 신부는 그곳에 남아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신부도 두 해 여름을 보내고 1881년 이곳을 떠났다. 

▲ 피난굴 아래 샘물     © 새만금일보

<산행안내>

o 1코스 : 월현리 743번도로-큰골교-큰골마을(승합차 이용)-임도(잡초구간)-피난굴-추락봉-피난굴-임도-큰골마을(승용차 이용)-큰골교-743번 도로

o 2코스 : 월현리 743번도로-큰골교-큰골마을(승합차 이용)-임도(찹초구간)-피난굴-추락봉-북능-수락봉-집재(19번 도로)

백주교 피난굴이 있는 산촌마을 큰골에는 나무 몇 그루가 어우러져 있다. 그 중에서 가운데 나무가 돌배나무인데 백주교가 심었다고 해서 백주고 배나무로 불린다. 계북천를 건너 오르막 시멘트 길을 400m쯤 가면 마을 뒷산 숲속에 바위 두 개가 보인다. 위쪽이 큰 피난굴이고 아래쪽이 작은 피난굴이다.

해발 600m쯤 되는 큰 굴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길이는 10여m이고 높이는 3m쯤 된다. 취사할 수 있는 샘물과 4평쯤 되는 방도 있다. 굴 입구는 밖이 보이지 않게 돌담을 쌓았고 밖에 있는 돌무덤 사이의 작은 굴에도 20명 쯤 은신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에는 지방 유지들이 숨어서 변을 면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작은 굴은 큰 굴에서 우측으로 10m 정도 아래에 있다. 이곳도 위험하면 산모롱이를 돌아 오봉리 옥자동 숲속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 추락봉(상여덤) 아래서 본 백두대간 능선     © 새만금일보


<교통안내>

o 익산-포항간고속도로 장수나들목-집재-매계삼거리-743번도로-월현 큰골교-(좌회전)큰골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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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2 [10:3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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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 김정길, 수필가, 숲 해설가, 전통지리연구가 주요약력-전북산악연맹 부회장/숲사랑운동 서부연합단체 대표/모악산지킴이 회장/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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