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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비빔밥정신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10/17 [09:47]





 “마음 쓰는 공부는 비빔밥 정신으로 해야 한다. 내 생각만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도 비벼야한다. 내 마음과 맞지 않아 화가 날 때면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자.“

 

 이 말은 지난 10월 6,7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국제마음 훈련원에서, 그곳 원장님 강의시간에 들은 말씀 중의 한 구절이다. 훈련원은 원불교에서 운영하지만 원불교 교도의 훈련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이름에 걸맞게 세계인 누구나 이곳에 와서 비빔밥 정신의 공부와 정신수양을 하는 곳이다.

 

 비빔밥이 맛있다는 것은 있었지만 비빔밥 정신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한 일이 없었다. 비빔밥은 참 맛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다. 어린 시절 시래기나 콩나물밥에 달래 간장으로 비벼먹던 것이 내가 먹어본 최초의 비빔밥이었다. 그땐 어머니께서 큰 함지박에 밥을 퍼담고 달래간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한 그릇씩 퍼주었다.

 

 이런 비빔밥의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같이 먹기 위해서 비볐다는 설, 농부들이 새참으로 쉽게 먹기 위해서 비볐다는 설, 신년을 맞이하여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하여 비볐다는 설 등이 있다. 어떤 설이든 비빔밥은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먹기 위해서 비빈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성싶다. 여러 반찬이 어우러지고 같이 먹는다는 공동체의정신이 비빔밥 정신이 아닐까 싶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거나 허기를 달래려고 먹던 비빔밥이 언젠가부터는 전주의 대표적 음식이 되었다. 1990년경에 처음으로 대한항공의 기내식에 오르더니 이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이 되었다. 오색고명에 반숙된 계란 한 개를 살짝 얹어 유기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비빔밥은 오감(五感)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비빔밥의 원료인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나물 등 30여 가지가 서로 어울려 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빔밥 정신이 세계로 뻗어 나갈 차례인 성싶다. 비빔밥의 원조가 전주라면 도덕정신을 신앙으로 하는 원불교의 원조가 전북 익산에 있지 않는가? 비빔밥 정신이라면 여러 사람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독선이요 비빔밥으로 말하면 콩나물 하나일 뿐이다. 30여 가지의 재료가 어울려야 하는데 콩나물 하나만 넣으면 무슨 맛이 나겠는가?

 

 내 가정은 물론 형제자매, 사회, 국가도 비빔밥의 정신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예전엔 농경사회요 삼강오륜의 수직적 삶이 지표였다면, 지금은 서로의 의사가 원만하게 소통되는 수평적인 삶이 진정한 비빔밥 정신이 아닐까?

 

 비빔밥 정신이 되지 못하면 화합할 수 없음은 물론 가족 간에도 원수가 되는 세상이다.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 나도 때로는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어떤 형제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에서 싸우는가 하면, 사회는 빈부와 지역적 갈등으로 싸우고, 국가는 여당과 야당이 자기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싸운다. 이 모든 것들이 비비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은 옳고 남의 생각은 그르다는 생각과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생각 때문이다. 시이소(어린이놀이기구)가 왜 항상 중심을 잡고 있으며, 저울이 왜 항상 0을 가리키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의 맛을 사로잡는 비빔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지만, 수많은 세월동안 연구하고 체험으로 얻은 것을 실천하여 얻어진 것이 지금의 세계적인 비빔밥이다. 하물며 보이지도 않는 비빔밥의정신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성싶다. 내 마음과 맞지 않아 화가 날 때면 '사정이 있겠지!'라는 배려가 비빔밥 정신이란 훈련원 원장님의 말씀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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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7 [09:47]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