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옥 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장판 밑 숨은 돈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8/11/30 [08:42]



벌써 30여 년 전의 얘기다. 한 마을에 살던 죽마고우(竹馬故友) 어머니가 젊어 이래 홀로되어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키우느라 손발이 다 닳고, 아궁이에 땔 변산 나무 동을  머리에 이어 날리느라 삼단 같은 검은머리가 다 빠져 비녀도 못 끼우고, 치아도 다 빠진 슬픈 모정의 하얀 할미새가 되었다. 자식들은 객지로 나가 제 살길을 찾았고, 늘그막에 험한 초가3간 옛집을 지키며 홀로 살다가 83세로 한 많은 세상을 뜨셨다.

동네 이웃들이 모여 바람 불면 날아갈 뼈만 남은 깡마른 수족을 거둬 염을 하였다.

밤이 되니 객지에 있던 자녀들이 몰려들었다. 고생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홀어머니가 불쌍하다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슬픈 넋두리와 곡성(哭聲)이 밤이 이슥토록 이어졌다.

3일 장으로 호상이라며 이웃집에서 막걸리 통과 팥죽을 쑤어오는 등 가난한 초상집에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발인 날 졸지에 나도 문상(問喪)객 겸 상여를 메는 난생 처음으로 상두꾼이 되었다. 동네에서 10리 나 되는 공동묘지를 향해가는 버거운 상여 길에 몇 차례나 쉬어갔는데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씻으며 상두꾼들은 큰 주발에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초상을 치른 후 방바닥을 걷어보니 100환짜리 돈이 구석구석마다 겹겹이 싸여 썩어있고 작은 장항아리 밑바닥에 적잖은 돈뭉치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 돈을 당신은 한 푼도 안 쓰고 험상한 옷차림과 하루에 고양이 밥 먹듯 그것도 간장을 찍어 두 끼만 먹는 젊어 이래 이웃과 나눌 줄도 모르는 지독한 자린고비 할머니였다.

자식들은 숨겨진 돈을 먼저 보는 자가 임자라며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황금 보물찾기 쟁탈전이 벌어 졌다는 것이다.  오래 동안 못 본 중학교 동창 K라는 친구를 만났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경치 좋은 호수가 보이는 산 밑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말년을 보내려고 이사를 왔는데 친구가 그립다며 나를 보고서 깜짝 반가워하며 자기 집에 한번 놀러오라는 것이다. 어느 날 그 친구 집 근처를 지나다가 생각이나 전화를 하니 마침 집에 있다기에 들렸다. 춘 3월이라지만 아직은 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불도 안 땐 차가운 방에서 그 친구는 홀로 앉아 TV 시청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몇 마디 주고받았다. 방바닥이 냉방이라 온 몸이 시려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집 구경이나 하자며 양지바른 문밖으로 나갔다. 집을 잘 지었다며 칭찬을 하고서 ‘이 사람아! 나이 들면 몸을 따습게 해야 하네. 밤이면 전기장판에만 의지 말고 불을 지펴 체온유지를 해야 암도 안 생긴다고 하드구만...’ 그 친구는 객지에 나가 열심히 돈을 모아 자식들 집도 마련해 주었고, 노후대책은 충분하다며 은근히 자랑을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돈 한 푼에 10리를 간다는 그 친구는 철저하게 이문만 남길 뿐 쓸 줄 모르는 장사꾼이었다. 남이 놀 때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여 노후대책까지 세웠다는 것에는 칭송할만한 일이지만, 그 친구는 몸도 성치 않는 처지로 친구가 그립다면서 난방비가 아까워 불도 지피지 않고서 쓴 커피 한 잔이라니... 그러니 그 친구 주위에는 친구들이 다가갈 일도 찾을 이유도 없다. 논어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好)’라 했던가. 배우고 때에 익히니 기쁘고,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란 고전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친구를 만나면 따뜻한 추어탕 한 그릇 정도는 먼저 사야 친구와의 사귐이 이뤄진다. 다방이나 식당에 가면 구석 참이나 하고, 택시를 타면 운전석을 서로 피한다거나, 잔돈 100원짜리 있느냐고 손 벌리는 그런 친구는 친구가 있을 리가 없다. 더 늙어 먹지도 못하고 병들어 죽기 전에 아랫목 장판 밑에 숨겨 논 돈을 끄집어내어 이웃 친구와 탁배기 한 잔이라도 나눠 보자. 나이 먹으면 믿는 게 돈 뿐이라며 한 푼도 쓰지 않고 돈뭉치만 끌어안아 봤댔자 다 놓고 갈 뿐이다. 친구와 나누는 한잔 술은 늙어 견디기 어려운 고독이라는 병을 씻어 내주는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청량제로 쓸쓸히 홀로 서있는 제주도의 돌할아방 면을 하리라.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11/30 [08:42]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