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넘어 통일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1/03 [16:16]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촉구와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정권은 정치범수용소를 설치해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개 처형, 자유 침해, 불법적인 구금·조사, 외국인 납치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수용시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생지옥 그 자체다. 수감자들은 하루아침에 수용소로 끌려와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갖 강제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간수에 의한 고문과 구타는 말할 것도 없다. 강간과 공개처형 또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베네수엘라의 공산주의자 알리 라메다에 의해서다. 그는 북한의 권유로 입북했다가 사리원교화소에 정치범으로 4년 동안 구금되었고, 국제적인 압력과 석방운동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1988년 아시아감시위원회와 미네소타변호사국제인권위원회가 한·중·일에 있는 망명자와 조총련, 중국 내 조선교포 등 관계인들을 체계적으로 인터뷰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이슈화되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악명은 특히 서구권에 널리 알려졌고 많은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의회가 정치범수용소의 실태에 대하여 직접 탈북자 등 증인들을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강철환의 수기 < 수용소의 노래 >가 < 평양의 어항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등 많은 관심을 끌었다.

북한에는 현재 5개의 정치범수용소가 있다. 당초 6개였으나 2013년 3월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관리소가 폐쇄되어 현재는 5개가 남았다. 현재 함경북도 청진, 명간, 함경남도의 요덕, 평안남도의 개천 등에 15만 명 이상이 감금돼 있다.

이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전 수감자 및 경비대원 등과의 인터뷰에서 실상이 드러났다. 북한 당국은 이를 OO호 관리소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주민들은 '특별독재대상구역', '정치범 집단 수용소', '유배소', '종파굴', '이주구역' 등으로 부른다.

이 가운데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요덕 정치범수용소이다. 규모가 큰 함경남도 영흥군 요덕면의 요덕(耀德) 정치범수용소는 무려 행정구역의 3분의 1이 수용소다. 정식 명칭은 15호 관리소이다. 다른 지역의 수용소에는 석방이 불가능한 완전통제구역(完全統制區域)만이 있다.

반면 요덕수용소에는 '완전통제구역' 외에도 간혹 석방되기도 하는 혁명화구역(革命化區域)이 있다. 따라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크게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이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는 추세다. 심지어 생계형 탈북자조차도 무조건 완전통제구역으로 끌고 간다. '완전통제구역'은 종신수용소로 여기에 한 번 수용되면 일반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수용자는 벌목장, 광산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수용소 내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따라서 완전통제구역의 수용자들은 사상교육을 받지 않고 채광 및 영농기술 등 생산에 필요한 지식을 교육받는다. '혁명화구역'은 가족구역과 독신자구역으로 나뉜다. 이곳에 수감된 자들은 일정기간(1년~10년)이 경과하면 심사를 받아 출소가 가능하다.

출소를 할 때는 수용소의 생활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오는데, 이를 위반하면 재수감 된다. 1990년대에 약 3만 명의 수인(囚人)들이 완전통제구역에 수용되어 있었으며, 약 1만 6천 명의 수인(囚人)들은 혁명화구역에 수용되었다.

혁명화구역에 수용된 수인들의 대부분은 대체로 북송 재일교포와 정치범의 가족들이다. 수용소의 전체는 3~4미터 정도의 높이를 가진 담이 있고, 그 위에 2~3미터 높이의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담을 따라서는 감시탑이 있어, 자동소총과 감시견을 가진 1천 명의 경비대가 순찰하고 있다.

김정일의 집안 사정과 고위층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너무 아는 것도 이 수용소로 가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구였다는 이유로 요덕수용소에 갇혔던 김영순 씨의 증언을 보면 월북한 만담가 신불출이 숙청 후 1976년에 요덕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수감되었던 강철환씨는, 구읍리의 혁명화 구역에서 매년 수인의 4% 가량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대부분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어간다. 한 사람의 이른바 '범죄'로 인해 전 가족(어린이도 포함)이 수감된다.

죄수들 사이의 성교, 성적 행위 및 결혼은 금지되며, 임신할 경우 강제로 낙태되고 만다. 강철환은 수용소에서의 삶을 '수용소의 노래'라는 책에서 묘사한 바 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수감되었던 이영국씨는 대숙리의 혁명화 구역에서 매년 수인의 20% 가량이 사망한다고 추정했다.

매 달마다 새로운 수인들이 들어오는데, 수인들이 거주하는 집에는 난방이 되지 않으므로 겨울이 되면 수인들은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혁명화 구역에서는 탈출을 시도하거나 음식을 "도둑질한" 수인들에 대한 공개처형이 자행된다.

수감자에 대한 통제의 핵심은 도주 방지를 통한 완전한 격리, 수용소 내에서의 관리자에 대한 복종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철저한 격리를 위해 경비대를 배치하고 전기철조망 및 대못을 박은 함정을 설치해 수용소 외곽과 주요 시설에 대한 수감자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수시로 즉결처형과 공개처형 및 비밀처형이 이뤄지며 정치범 교화소로 이감된다. 수용소 내 구류장 구금, 처벌노동 부과 등의 강력한 처벌을 통해 수감자들의 일탈행위를 방지하고 복종을 강제하고 있다. 수감자로 구성된 조장, 작업반장, 총반장, 관리위원장 등의 수감자 관리 체계도 있다.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진 정보체계로 수감자가 서로를 감시하게 한다.

(정복규 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9/01/03 [16:1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